무척 추운 겨울밤이었다. 동네 슈퍼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한 아이가 다가왔다. “아저씨, 100원만 주세요.”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추워서 이를 달그락거리며 말했다. 희미한 가게 불빛에 그 아이가 입은 하얀 점퍼에 묻은 시커먼 때가 보였다. 나는 이 아이가 전화를 걸려고 동전이 필요한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 아이 대답은 엉뚱했다. “배가 고파서요.”
예상 밖의 말.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말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행색으로 보아 가출한 아이이거나 슈퍼에서 나오는 사람들한테 동전을 얻어 게임을 하는 아이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집에 가도 밥이 없다고 했다. 집에는 할머니 혼자뿐이고 할머니도 제대로 못 먹는다는 것이다. 내 가슴이 아려왔다. 추워서일까? 내 몸도 떨렸다. 그러나 난 계속 이 아이가 상습범으로 남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아이와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숨졌고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가출해 할머니와 둘이 산다고 했다. 연탄도 없어 추운 방에서 그냥 자고, 휴대용 버너로 밥을 지어 먹는다고 했다. 난 속는 셈 치고 남은 거스름돈을 다 줬다. “고맙습니다.” 그 아이는 내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돈을 받아 들고 달려갔다.
난 그 아이가 어디로 가는지 몰래 뒤를 따라가 봤다. 신호등도 무시하고 신나게 달려 가로등 아래 멈추더니 돈을 살펴봤다. 얼마인가를 확인하더니 곧장 옆에 있는 만홧가게 문을 힘차게 열고 들어갔다. 난 속았다고 생각했다. 속이 상해 돌아서려고 하는데 그 아이가 금방 나왔다. 다시 옆에 있는 슈퍼로 들어갔다. 가게 문을 잘못 열고 들어간 것이다. 조금 뒤 그 아이는 커다란 라면 봉지를 들고 겨울밤 쌀쌀한 거리를 펄쩍거리며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힘없는 목소리, 때에 전 점퍼, 가로등 불빛에 돈을 비춰보던 모습, 라면 봉지를 들고 뛰어가는 모습 등이 애써 잊고 싶어도 찰거머리처럼 달려들었다. 선생이며 문학을 하는 나에게 저 아이는 무엇인가? 저 아이에게 학교나 문학이 무슨 힘이 될 수 있을까? 난 돈을 넉넉하게 주지 못했고, 더 알아보고 어떻게라도 보호했어야 한다는 자책감에 한참을 시달렸다.
기초생활 수급자 어린이 23만4000명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결식아동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 수급자인 유아와 초등학생이 약 23만4000명에 이른다.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16년 3분기까지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는 약 2만5000건으로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느는 추세다. 전국의 한부모 가정은 178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9.5%를 차지한다. 서울시 통계를 보면 2014년 저소득 한부모 가정은 서울시 전체 가구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서울시에서 조부모와 미혼 손자녀가 함께 사는 ‘조손 가족’이 1995년 3875가구에서 2013년 2만3344가구로 18년 새 6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계층은 아이들만이 아니겠지만, 아이들에 대한 투자 없이 우리 미래가 건강할 수 없다. 당장 유럽과 같은 복지 시스템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에 대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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