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A1월29일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이 오는 9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맞설, 당의 총리 후보로 결정되었다.

지난 1월21일 독일의 코블렌츠에서 유럽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자리에는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여성 대표인 프라우케 페트리, 프랑스 국민전선(FN)의 대표 마린 르펜, 네덜란드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외 유럽 각국의 극우 정당들을 대표하는 주요 정치인들이 참여했다. 가장 먼저 연단에 오른 네덜란드 자유당의 빌더르스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새로운 미국이 탄생한 것처럼 내일은 새로운 유럽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우고 유럽연합(EU)의 해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트럼프의 당선은 유럽의 극우주의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이어 트럼프의 승리는 서구 사회가 다시 민족국가로 회귀할 수 있다는 징후로 비춰진다.

이날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은 연설을 통해 “지난 세계의 끝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경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민족국가로의 회귀”가 새로운 희망임을 선포했다. 르펜은 자신이 올해 치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프렉시트(Frexit: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르펜은 다음과 같은 발언도 했다. “연방 총리 메르켈은 독일인의 의지에 반해 수십만 난민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무책임한 정치다. 독일의 대형 회사들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길 원했을지 모르지만, 작은 회사들과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르펜은 난민 문제에서 이민자 문제로 자연스럽게 주제를 옮겼다. 유럽 우파 정당의 대표들은 유럽연합이라는 억압적 거대 기구로부터 각국 국민들의 주권을 다시 회복시켜야 한다는 것을 공동의 목표로 내세웠다. 그리고 메르켈로 대변되는 유럽연합의 이민자 정책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비판 대상이다. 이날 청중은 환호하며 “메르켈의 퇴장”을 함께 외치기도 했다.

기민당·기사당 연정 vs 적적녹 연정

2017년은 유럽연합의 미래에서 매우 중요한 해이다. 우파 포퓰리즘이 세력을 확장하는 가운데 여러 국가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독일 또한 9월 연방정부 선거를 앞두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약 10% 지지를 보이며 처음으로 독일 연방의회 진출이 유력한 극우 정당 AfD도 주목을 끌고 있지만, 역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4선에 도전하는 기독민주당(기민당) 출신 메르켈 총리의 연임이다. 메르켈은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 체제를 상징하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독일 사회민주당(사민당)이 총리 후보로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을 지명한 후 높은 인기를 얻고 있어 메르켈의 연임은 순조롭지 않아 보인다.

지난 2월6일 독일 신문 〈빌트〉의 여론조사에서 사민당은 31%의 지지를 받아 2006년 이후 처음으로 기민당·기사당(CDU·CSU, 30%) 연합을 앞질렀다. 지난 선거에 비해 정권 교체의 목소리가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이 결과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권 교체라는 점에서 슐츠의 등장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일명 ‘적적녹 연정(R2G:Rot ·적색-Rot·적색-Grun·녹색,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이 실현될 수 있는가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독일은 한 정당이 다수당으로 뽑히지 않을 경우 연정을 구상하게 된다.
 

ⓒAFP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9월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기독민주당과 연정 파트너인 기독사회당의 총리 후보로 연임에 나선다.

적적녹 연정은 그동안 좌파당과 다른 두 정당 간의 차이 때문에 가능한 대안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튀링겐 주에서 적적녹 연정이 탄생한 이후, 연방정부에서도 대좌파 연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수도 베를린에서 적적녹 연정이 탄생하여 그 기대감은 더 커진 상태이다. 이 선거를 통해 기존 연립정부를 구성하던 사민당(SPD, 21.6%)과 기민당(CDU, 17.6%)은 기록적으로 낮은 득표를 했다. 따라서 2개 정당으로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없게 되었고 최소 3개의 당이 연정을 구성해야만 하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연립정부가 첫 업무를 시작하자 독일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사민당의 지휘 아래 있는 이른바 R2G 동맹은 아마도 가을에 있을 연방의회 선거 이후 연합을 위한 모델로서 기능할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적적녹 연정의 가능성은 메르켈 정부와 메르켈 정부의 난민정책에 대한 반감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R2G에 대한 기대는 새로운 사회적 통합에 대한 기대이기도 하다. 베를린과 함께 또 다른 적적녹 연정이 있는 튀링겐 주의 총리 보도 라멜로브(좌파당)는 이 연정의 과제를 “약자의 편에 서는 사회적 국가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표명했다. 그는 메르켈 정권 동안 사회적 국가가 부재했던 것이 극우 정당 AfD에게 많은 표를 안겨줬다고 진단했다. AfD의 세력 확장은 메르켈 정부뿐 아니라, 적적녹 연정의 지지자들에도 우려할 만한 현실이다. 메르켈 정부의 인기 하락과 AfD의 인기 상승에는 기존 난민정책에 대한 불신과 테러에 대한 사회적 공포의 증가도 한몫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베를린 트럭 테러 이후 독일 사회에서는 안보정책의 강화와 난민 수용의 제약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공포의 증가는 대좌파연정의 탄생에 장애가 된다. 보수 언론에서는 이미 독일 사회의 좌클릭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29일 독일 주간지 〈차이트〉는 ‘적·적 근본주의’라는 기사를 통해 대좌파연정이 지금 독일 사회에 가장 필요한 중도적 입장을 손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기민당·기사당 연합이 올해 선거의 목표로 적적녹 연정 저지를 이야기한 것도 이런 흐름 중 하나이다.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적적녹 연정의 불안정성이 강조되고 지금과 같은 독일의 흐름을 유지하려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또 사민당이 다수당이 되더라도 적적녹 연정이 아닌, 기민당·기사당과의 연정을 택할 수도 있다. 2017년 독일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유럽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유럽연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자명 프랑크푸르트·김인건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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