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9월이다. 8년 전, 미국 전역이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9월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희대의 외교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에서 열릴 예정인 밀레니엄 유엔총회 참석차 아메리칸 항공으로 갈아타려던 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에 대해 항공사 측이 무리하게 몸수색을 강행한 것이다. 북한 대표단이 신분을 밝히고 강력히 항의했건만, 항공사 직원들은 ‘모처의 미국 정부 당국’에 연락한 뒤 오히려 검색을 더욱 강화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김영남 위원장 일행은 결국 미국행을 포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버렸다.

결과론적이지만, 2000년 10월 긴박하게 전개되던 북·미 간 정상 외교는 사실 이 9월의 해프닝 때문에 이미 엉뚱한 방향으로 꼬였던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예정대로 유엔총회에 참석해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더라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은 10월 말이 아닌 10월 초에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10월 말에는 올브라이트가 아닌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트는 대역사가 진행됐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해프닝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북·미 관계 진전을 원치 않던 미국 내 특정 세력의 치밀한 방해 공작이었고, 그들 의도대로 일이 뒤틀려버렸다.
그 뒤 8년이 지난 2008년 9월. 북·미 관계 패턴이 그때와 참 비슷하다. 북한과 관계 개선을 추진해온 미국 국무부와 그것을 가로막고 나선  네오콘 간의 창과 방패 싸움이 여전히 계속된다. 4·8 싱가포르 합의 이후 냉각탑 폭파와 핵 신고서 제출 등 쾌속으로 전개되던 북·미 관계는, 미국 전역이 대선 열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또다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특히 공화당 매케인 후보의 보수 결집 전략에 따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네오콘이 이번에는 북한 핵 검증 문제를 물고 늘어졌다. 특히 북한 전역 어디나 미국 측이 의심스러운 곳은 다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검증 대상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단단히 쐐기를 박아둔 상태다.

또다시 찾아온 9월의 악몽이다. 과연 돌파구는 있을까. 지금 워싱턴의 모든 시선은 성김 국무부 북핵 대사에게 집중됐다. 레임덕에 빠진 부시 대통령이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는 네오콘의 요구를 한편으로는 들어주면서, 거의 동시에 성김 과장을 북핵 대사로 승진 발령해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마지막이자 ‘유일한’ 외교 업적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부시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역사의 평가가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뉴시스성김 미국 국무부 북핵 대사(맨 앞).
북·미 관계 운명 짊어진 성김 북핵 대사 행보

성김은 과연 ‘9월 징크스’를 깨고 북·미 관계 연착륙에 성공할 것인가.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아직까지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10여 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했고 다양한 정보 소스를 통해 북한 핵시설 위치를 파악한 그가 ‘모든 곳’을 보여달라는 미국과 ‘지정한 곳’만 보라는 북한 사이에서 타협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9월 중순의 의회 인준청문회가 끝나면 그의  담판이 시작된다. 다행히, 성공하면 부시 행정부는 행정부 재량권을 발동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곧바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2단계 절차에 착수한다. 8년 전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장관의 뒤를 이어 라이스의 평양행이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언제 어떤 돌발상황이 터질지 알 수 없다. 멀리서 비치는 희미한 등불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앞날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9월과 10월, 두 달 안에 뭔가 이뤄져야 한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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