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7일 제8회 대학기자상 수상자가 모이니 〈시사IN〉 회의실이 꽉 찼다. 역대 최다 인원이다. 총 265편이 접수된 이번 대학기자상에서 눈에 띈 것은 단체 출품작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여러 명이 모인 차원이 아니었다. 올해 대상을 받은 ‘20대, 가난을 팝니다’는 덕성여대·서울여대·성공회대 3개 대학의 학보·방송사 기자들이 공동취재단을 꾸려 완성한 기사다. 대학 언론에 새 바람을 일으킨 기자들에게 주는, 신설된 뉴커런츠상을 받은 ‘학내 성폭력’ 기사 또한 대학언론협동조합 깃발 아래 모인 4개 대학(세종대·성공회대·이화여대·한국외대) 학생들이 협동해 취재했다. 


독립 언론의 자양분이 될 대학 언론을 응원하기 위해 〈시사IN〉이 대학기자상을 제정한 것은 지난 2010년. 그러나 그 뒤로도 대학 언론이 위기가 아닌 적은 없었다. 대학 언론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은 갈수록 줄었고, 대학 당국은 재정 지원을 미끼로 학내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하려 들었다. 그 와중에 대학 언론은 연대라는 방식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었다. 

 

ⓒ시사IN 윤무영


지난 1월10일 대학기자상 후보작들을 검토한 심사위원단은 이 같은 현상에 주목하는 한편 영상 부문 출품작들의 약진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특종성·참신성·독립성·공정성·지역성이 구체적인 심사 기준이 되었다. 6개 부문(대상, 취재보도, 사진·그래픽, 방송·영상, 뉴커런츠, 특별상)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 및 심사위원을 맡은 정규성 기자협회 회장, 오기현 한국PD연합회 회장,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부문별 심사평을 함께 싣는다. 고제규 〈시사IN〉 편집국장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시사IN〉은 오는 3월 말 이번 대학기자상 수상자들과 함께 토크콘서트 형식의 ‘대학언론포럼’(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대상/대학문제공동취재단

‘20대, 가난을 팝니다’

‘대학문제공동취재단’이라는 이름 아래 3개 대학 학생들이 모인 것은 지난해 여름.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주최한 ‘대학언론사 지원 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민언련에 따르면, 이 프로젝트는 날로 쇠락해가는 대학 언론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각 대학 학보사·방송사 기자를 상대로 기사 작성 등 언론 실무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성공회대 학보사 기자인 송다혜씨는 이를 보자마자 학내 미디어센터에 속한 다른 기자들과 함께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덕성여대신문〉 기자인 김유빈씨도 마찬가지였다. “학내 언론에 대한 대학 차원의 지원이 줄고 기자 교육도 축소되면서 갈수록 취재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외부 교육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사IN 윤무영대상을 받은 대학문제공동취재단이 각 대학 매체에 발행한 기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렇게 모인 것이 덕성여대 신문사·서울여대 학보사·성공회대 미디어센터에 속한 대학 언론인들이었다. 현직 기자(김경욱 〈한겨레〉 기자)가 이들의 멘토가 되어 두 달 동안 교육을 맡았다. 의욕은 좋았지만 처음 만난 이들이 호흡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공동으로 취재할 아이템을 정하는 데만 3주가 걸렸다. “총장 업무추진비, 과밀 기숙사, 채플 강제이수 등 대학가에서 제기할 수 있는 문제는 다 나왔던 것 같다”라고 서울여대 학보사 이슬기 기자는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공회대 방송국 조수영 기자가 “장학금 문제를 다뤄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했다. 대학에 다니면서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은 한국장학재단에 국가 장학금을 신청해야 한다. 그러면 재단에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등에 의거해 신청자의 소득분위를 산출하는데, 그 근거가 너무 불투명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친구들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올라서였다. 그러자 다른 기자들도 맞장구를 쳤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장학금을 둘러싼 불만은 차고 넘쳤다.

공동 아이템을 정한 이들은 곧 취재 분담에 들어갔다. 각자가 관련 사례를 3개 이상 취재해오기로 했다.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국가 장학금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여대 같은 경우는 학내 장학금을 신청하기 위해 사연을 300자 이상 적게끔 하고 있었다. “300자를 채우려면 자기 처지를 구구절절 설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가난을 스스로 증명하라는 얘기다.”

이들은 내친김에 다른 나라 장학금 실태도 취재했다. 독일·일본·스웨덴 출신 유학생이나 현지에 있는 친구들을 총동원했다. 결과는 안타까웠다. 유럽 등지에서는 교육받을 권리를 사회가 보장하고 있었다. 설사 자부담이 원칙인 국가라 해도 학생에게 ‘가난 증명’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오직 한국에서만 유별나게 ‘가난을 말하지 않을 권리’가 박탈되어 있었다.

“방학 두 달간 진짜 기자처럼 살았다”라는 이들이 공동 작성한 기사는 개강 직후 각자가 몸담은 매체에 실렸다. 3개 학교 매체가 나란히 똑같은 기사를 싣는 ‘파격’을 감행한 셈이다. 방송기자가 찍은 취재 영상도 함께 유튜브에 올렸다. 다만 아쉬움은 있었다. 취재를 해놓고도 쓰지 못한 내용이 특히 그랬다. “취재원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려다 보니 기사 자체가 취재원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는 모순이 생기더라”고 서울여대 학보사 유경민 기자는 말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결과는 만족스러운 편이다. “학교 단위 언론사로는 이렇게 막강한 취재팀을 꾸리기 어렵다. 취재 과정에서 시너지를 내는 데도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조수영).” “무엇보다 공통된 주제를 다루면서 이것이 우리 세대의 보편적 이야기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이슬기).” 학보가 비 오는 날 우산 대용으로나 쓰이게 된 시대, 이들이 실험한 ‘언론 연대’는 대학 언론의 위기를 타개할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취재보도 부문/〈서울대저널〉 송재인

‘로켓처럼 빠른 배송에 총알처럼 잊혀지는 것들’

수습기자가 ‘사고’를 쳤다. ‘로켓처럼 빠른 배송에 총알처럼 잊혀지는 것들’은 송재인 기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4년)가 학내 자치언론인 〈서울대저널〉에 들어간 뒤 처음 쓴 기사다. 그런 만큼 그녀는 대학기자상 수상 소식이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취재보도 부문 수상자 〈서울대저널〉 송재인 기자.

 


다만 수습기자라고 세상 경험이 일천하지는 않았다. 대학 입학 이후 학생회 일을 주로 해왔다는 송 기자는 지난해 교환학생으로 네덜란드를 다녀왔다. 그 1년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어린 동양인 여성’으로 살아본 경험이 소수자로 사는 감각을 일깨웠다.

사회문화적 충격도 컸다. 한국 유학생들은 오후 6시면 마트나 카페가 문을 닫는 네덜란드 문화에 불편함을 호소하곤 했다. 택배를 신청하면 집에 배달되기까지 2주는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에 대해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싸고 빠르고 편한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종전의 사고방식에 균열이 인 것은 이때부터다. 돌이켜보면 이런 시장 논리가 가능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회적 합의가 어떻게 형성돼 있느냐에 따라 인간을 보는 눈, 노동을 보는 눈 따위가 모두 달라지는 것이었다.

 

 

 

 

 


〈서울대저널〉 수습기자가 된 뒤 첫 아이템으로 택배기사 문제를 발제한 것은 그래서다. ‘로켓 배송’을 내건 택배업체의 마케팅 이면에는 갈수록 낮아지는 택배 단가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내세운 거대 자본은 택배 단가를 절반 가까이 후려치며 이들을 장시간 고강도 노동으로 내몰고 있었다. 개중에는 비정규직 택배기사의 정규직 전환 비율을 높이겠다고 해서 브랜드 이미지가 급상승했으되, 실상은 직원들의 이직률이 오히려 높아진 회사도 있었다.

이런 모순을 차분하게 파고든 결과 취재보도 부문 수상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지만, 송재인 기자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섭외에 공을 들였건만 택배기사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기가 너무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어렵게 연락이 닿았던 취재원의 발언을 충분히 제대로 전달했는지 또한 혼란스럽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과거에는 완결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컸다. 지금은 나만의 관심사가 뚜렷해지면서 시행착오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라고 이 늦깎이 학생 기자는 말했다.

 

 

사진·그래픽 부문/〈성공회대학보〉 김명진

‘상실의 시대’

사진·그래픽 부문상을 수상한 김명진 기자(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3년)는 성공회대 미디어센터의 터줏대감이다. 학보사와 방송사를 통합한 기구가 미디어센터인데, 이곳에서 벌써 햇수로 4년째 활동 중이다. 지난해에는 97% 득표율로 미디어센터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시사IN 윤무영〈성공회대학보〉의 김명진 기자.


그가 사진기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6년이다. 당시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해 벌어진 주민 시위 뉴스를 접했다. 사진기자 한 명이 경찰 방패에 찍혀 부상을 입었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도 전율이 느껴졌다. 위험한 순간에도 현장에 뛰어들어 셔터를 누를 수 있는 용기라니, 기록자에 대한 선망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가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그 이듬해인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카메라를 만진 지 올해로 10년째. 그는 현장의 사진가들 사이에 나름 유명인사로 통한다. 시국이 어지러울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선 덕분이다.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는 이튿날 곧바로 진도로 내려갔다. 글 쓰는 친구 한 명, 사진 찍는 친구 한 명과 함께였다. 교통비와 숙식비는 어머니 통장을 깨서 마련했다. 당시 참사 현장을 다녀와 찍은 사진들로 서울 충무로의 한 갤러리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나름 전시 경력까지 있는 ‘프로’ 사진가인 셈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에 분노한 촛불이 타오르기 시작할 때도 그는 주저 없이 광화문으로 향했다. 집회 장면을 풀샷으로 담기 위해 좋은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인근 고층빌딩에 근무하는 선배를 통해 건물에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본인 작품이 마음에 드는지 질문하자 그는 대번에 “마음에 든다”라고 답했다. 지난 한 해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사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작품이 학보에 실려 보도된 이후 학내에서도 사진 한 장으로 2016년을 정리해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다만 이 작품을 찍은 뒤 바로 지면을 마감해야 해서 촛불집회에 자주 나가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요즘 대학 언론 전반이 위기라지만 사진 부문은 특히 더하다. 사진기자가 되겠다는 후배도 드물거니와 학교에서 사진·영상 관련 기자재를 따로 지원하지 않는 만큼 스스로 장비를 마련해야 하는 데 따른 부담이 크다. 올해 출품작이 크게 신선하지는 않다는 일부 비판이 있었음에도 심사위원 전원이 사진·그래픽 부문에서 수상작을 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힘든 환경에서 분투하는 이들을 응원하려는 의미가 컸다.

앞으로 더 열심히 현장을 뛰라는 의미로 알고 상을 받겠다는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상명대 대학원에 진학해 포토저널리즘 과정을 공부할 예정이다. 사진기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본격적으로 내딛는 셈이다. 그는 학내 미디어센터장으로서의 목표 또한 잊지 않았다. 비판할 일은 확실히 비판할 수 있는 언론 환경을 만드는 일,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대학 언론의 미래다.

방송·영상 부문/〈서울대저널 TV〉 문주은

‘분리수거가 당신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

수상 소감을 묻자 “운이 좋았던 것 같다”라고 했다. 인터뷰 내내 질문을 하면 바로 대답하는 법이 없이 한동안 입속에서 말을 곱씹었다. 방송·영상 부문상을 수상한 〈서울대저널 TV〉 문주은 PD는 말이건 행동이건 신중한 유형이다. ‘5학년’이 되고야 비로소 대학 언론 활동을 시작했다(4학년까지는 아카펠라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서울대저널 TV〉는 학내 자치언론인 〈서울대저널〉이 2013년부터 별도로 운영해온 영상 제작 부서. 역사가 짧은 만큼 제작 시스템이나 노하우가 단단하게 다져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자기가 관심 있는 주제를 마음껏 다뤄볼 수 있다는 것이 자치언론다운 매력이었다. 영상 취재 아이템을 궁리하던 문씨가 분리수거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데스크는 “그래? 한번 해봐” 하고 짧게 답했을 뿐이다.

 

 

 

 

ⓒ시사IN 윤무영방송·영상 부문 수상자인 〈서울대저널 TV〉 문주은 PD.

 


쓰레기 분리수거는 친구의 제보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주제였다. 서울대에는 분리배출용 쓰레기통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학생들도 이를 잘 지키는 편이다. 그런데도 청소 노동자들은 이렇게 버려진 쓰레기를 손으로 일일이 재분류하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왜?’ 예비 취재를 해본즉 사실이었다. 분리배출용 쓰레기통에 버려진 폐기물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일반 폐기물로 처리되고 있었다. 일례로 음료수 페트병의 경우는 색을 넣기 위해 첨가하는 색소 때문에 재활용이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이 음료를 마신 뒤 버리는 테이크아웃 투명 컵 또한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재활용이 가능하려면 단일 원료로 만들어진 컵이어야 하는데, 요즘 커피숍 등지에서 쓰는 컵은 비용 절감과 모양새를 위해 여러 원료를 섞어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현실을 영상에 담았다. 학생과 청소 노동자들 인터뷰를 따는 것은 기본이었다. 관련 논문과 해외 사례도 힘닿는 데까지 뒤졌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분리배출 업체(재활용 업체)를 섭외하는 일이었다. 뭔가 약점을 잡으려는 건 아닌가 싶어 퇴짜를 놓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럴 때면 문제점만 폭로하려는 게 아니라 대안까지 함께 제시하려는 것이라며 취재원을 설득했다. 그렇게 영상을 기획해 완성하기까지 4개월이 걸렸다.

대학 방송국 PD가 되고 처음으로 만든 영상으로 상을 받게 된 그녀는 촬영을 도와준 김대현, 내레이션에 참여해준 안미혜씨 등 친구들 덕분에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주변에 고마움의 뜻을 전했다. “계속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사람, 나아가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것이 이미 학교를 졸업하고 시사·교양 PD가 되기 위해 ‘언론고시’를 준비 중인 그녀의 말이다.

 

 

 

 

기자명 〈시사IN〉 대학기자상 팀 (김은남·송지혜 기자, 윤원선)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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