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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가 임꺽정도 울렸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17년 02월 01일 수요일 제4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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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의 김태희 팀장은 2014년 가을 이상한 경험을 했다. 출판사와 충북작가회의가 함께 주관하는 제19회 홍명희 문학제를 준비하는 중에 숱한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하소설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의 문학 세계를 조명하는 이 문학제는 1996년부터 그의 고향인 충북 괴산 등지에서 매년 10월께 열렸다.

벽초의 월북 이력 때문에 지역 보훈단체 등이 문학제 개최 반대 시위를 벌이는 따위 일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2014년은 아주 특이했다. 그해에는 경기도 파주에서 열린 ‘북소리 축제’라는 책 관련 축제에 홍명희 문학제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북소리 축제는 파주시청이 주관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이 후원한다.

ⓒ홍명희문학제 제공
2015년 제20회 홍명희 문학제에 참석한 박재동(만화가), 조정래(소설가), 도종환 의원(왼쪽부터).

행사를 치르기 며칠 전, 파주시청 공무원이 찾아와 문학제 개최를 말렸다. ‘홍명희 문학제가 친북 문학제’라는 보훈단체들의 항의 민원이 쇄도한다는 이유였다. 파주경찰서 정보보안과 경위도 찾아와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북소리 축제 관계자도 “북소리 자체가 곤란해지니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뜻을 밝혔다. 김 팀장은 “그간 일부 문학 마니아들만 찾던 우리 문학제가 왜 이토록 요주의 대상이 됐는지 그때 몹시 의아했다. ‘국정원이 우릴 찍었나’ 하는 이야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누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사실 홍명희 문학제는 국정원보다 더 높은 곳에서 ‘찍혀’ 있었다. 2014년 9월30일 작성된 김영한 당시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를 보면, ‘홍명희 문학제(괴산→파주) 예산 支援(지원) 문제’(위 사진 참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날은 파주시청 담당 공무원이 김 팀장에게 밤늦게 전화해 행사 취소를 사정했던 날이다.

이틀 뒤인 10월2일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 사항을 적어놓은 김 전 수석의 수첩에는 ‘문화예술계의 좌파 주동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 ex)다이빙벨, 파주, 김현’(위 사진 참조)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파주에서 계획된 홍명희 문학제 개최를 ‘문화예술계 좌파 주동 책동’으로 보고 압박을 지시한 것이다. 청와대가 ‘투쟁적으로 대응’한 결과 실제 10월11일 열린 홍명희 문학제는 예정된 곳에서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그다음 해부터는 그간 충북에서 지원되던 문학제 지원 예산도 끊겼다. 김 팀장은 “청와대가 이런 사소한 문학 행사까지 꼼꼼하게 압박했을 정도면 문화계 다른 부분에는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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