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뒤 30년 세월이 흘렀다. 억울하고 안타까운 그의 죽음은 1987년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되었고, 이후에도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의 보루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1월14일, 경찰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509호로 박종철을 끌고 가 두 손과 두 발을 묶고 무자비하게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했다. 학교 선배의 행방을 대라고 닦달했지만 박종철은 끝까지 버텼다. 경찰의 거친 손아귀가 그의 머리를 욕조 속으로 수차례 짓누르고, 결국 박종철은 욕조 턱에 목이 눌려 절명하고 만다.

수년 전,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이름 붙여진 그곳, 남영동 대공분실을 찾아가본 적이 있는데 건축물 전체가 처음부터 고문을 염두에 두고 설계돼 있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비명을 질러본들 달려올 이 아무도 없는 외롭고 공포스러운 고문실에서 박종철은 홀로 몸부림치다 숨이 끊어졌던 것이다.

전두환 독재정권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역대급 거짓말로 사건을 덮으려 했다. 그러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고 거짓은 진실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은 고귀한 역사의 교훈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세상에 묻힐 뻔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추악한 거짓과 어둠을 뚫고 한줄기 빛처럼 세상에 그 진상이 드러난다. 직업윤리와 양심에 충실했던 의사·검사·기자·교도관·성직자들의 충실한 소명의식 덕분이었다.

가장 먼저 사고 현장으로 불려간 의사 오연상은 물고문을 직감하고 기자들에게 에둘러 발언함으로써 고문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다른 의사 황적준은 경찰의 끈질긴 압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고문 흔적이 있다는 부검 결과를 발표한다.

정권의 수족처럼 여겨지는 검찰 내에도 양심적인 검사가 있었다. 경찰은 박종철의 시신을 화장함으로써 진실을 영원히 땅 속에 묻으려 했다. 경찰이 당시 공안부장이던 최환 검사에게 시신 화장을 요청했으나 그는 사체 보존 명령을 내린다. 또 다른 검사 이홍규는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에게 박종철의 사망 사실을 귀띔한다. 언론사의 사전 검열이 엄혹하던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한 그는 2단짜리 특종기사로 이를 세상에 알렸다.

전국은 한순간에 들끓었다. 박종철이 지핀 민주화의 불씨가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로 속을 끓이던 시민들을 순식간에 타오르게 했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악한 정권은 고문치사를 은폐 축소했으나 이 또한 양심적인 교도관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또다시 폭로된다.

 

ⓒ연합뉴스‘박종철 사건’은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집회가 이어졌다.

 


이처럼 중요한 역사의 분기점에서 길목을 지켜선 전문가들이 권력에 굴복해 진실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뒤틀린 역사의 격랑 속에서 얼마나 더 많은 시민들이 희생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의사로서의 당연한 본분(오연상)” “직업윤리에 따라 행동한 것일 뿐(황적준)” “직(職)을 걸고(최환)” “눈을 감을 수 없어(이홍규)”라고 당시를 회고했다(〈중앙일보〉 참조). 그들은 비범한 용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직업적 양심과 소명에 따라, 진실하게 직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이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소임을 해낸 덕분에 이 땅의 민주주의는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갈 수 있었다.

“안 됩니다. 규정 위반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못하고

다시 최근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30년 전 물고문을 자행했던 경찰은 지난해 물대포로 한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를 두고 서울대병원의 한 의사는 사인을 ‘병사’라고 기재해 공분을 샀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부터 학사 과정 전반에 걸친 특혜에는 관련 단과대학 학장과 교수가 연루돼 있었다. 가장 공정해야 할 입시와 학사 관리에 권력이 부정과 특혜를 요구했지만 그들은 “안 됩니다. 규정 위반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정유라의 시험 답안을 대신 작성해주고 학점까지 주는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이 제구실만 했어도 결정적 타락과 범죄를 막아낼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 사회 전체가 권력 농단과 부패로 뒤덮이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목사인 프레드릭 비크너는 “소명은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것”이라 했다. 전문가로서의 자부심과 기쁨, 그리고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무엇인지, 어떤 경우에도 견지해야 할 전문가의 소명과 양심이 무엇인지, 한 해를 시작하면서 모두가 진지하게 새길 일이다.

 

 

기자명 문경란 (서울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서울시 인권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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