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주진우·천관율·김은지·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부산 해운대 엘시티(LCT) 사업 자금 조달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사업비만 2조7000억원에 달하는 엘시티 사업 비리와 관련해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된 바 있다. 현 전 수석은 엘시티 사업에 포스코건설을 시공사로 끌어들이고, 엘시티 시행사가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받는 데 도움을 주며 그 대가로 이영복 회장에게 4억3000여만 원대 금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부산지검 특수부는 정기룡 전 부산시장 경제특보도 이영복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시키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시사IN〉이 입수한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아래 그림)을 보면, 2015년 7월19일에서 28일까지 기록한 수첩의 맨 뒷장에 ‘해운대 LCT fund POSCO’라고 적었다. ‘해운대 LCT’ 부분에 밑줄을 친 뒤 ‘중국 X’라고 적어 놓았다. ‘fund’에도 역시 밑줄을 친 뒤 화살표(→) 옆에 ‘하나은행 김정태’라고 썼다. POSCO에도 역시 밑줄이 그어져 있다. 당시 안종범 전 수석은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다.

ⓒ시사IN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담긴 엘시티 관련 민원 메모.

안 전 수석은 업무수첩을 쓰는 데 그만의 규칙이 있다. 맨 앞장에는 업무수첩을 사용한 시기를 적어놓았다. 앞쪽부터 시간 순서대로 각종 메모를 했고, 이 메모 가운데 대통령(VIP) 지시만 같은 수첩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따로 날짜별로 적어두었다. 특히 맨 마지막 장에는 인사와 관련한 메모가 많다. 엘시티 메모도 바로 이 마지막 장에 기록되어있다. 이는 누군가로부터 민원을 받아 적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엘시티 사업의 시행사인 엘시티PFV는 2013년 10월 중국건축(CSCEC)과 시공계약을 체결했으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5년 4월 중국건축이 갈등 끝에 손을 털고 나가면서 시공계약이 해지됐다. 그런데 계약 해지 11일 만인 4월17일 포스코건설이 엘시티PFV와 공사도급 약정서를 체결했다고 4월20일 밝혔다. 7월3일 포스코건설이 시공계약을 체결하면서 표류 위기에 처했던 엘시티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일부 건설사는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시공을 포기했지만 포스코건설은 이례적으로 ‘책임준공(시공사가 어떤 상황이 발생해도 공사를 완료한다는 일종의 약정)’까지 보증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엘시티는 같은 해 9월 1조78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성사시켰다. 부산은행 등 15개 금융기관이 대주단에 참여했다. 부산지검은 이 과정에 현 전 수석 등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15년 7월 안종범 업무수첩의 ‘fund’ 옆에 적힌 ‘하나은행 김정태’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지주의 고위 관계자는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김정태 회장은 이 건으로 안종범 당시 수석이나 다른 (청와대·정치권) 인사와 연락하거나 만난 적이 없다. 그런 제안이 오더라도 은행으로 와야지 지주로 온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이영복 회장 쪽에서 전 은행에 (참여 제안을) 돌려서 하나은행 실무진이 제안을 받았는데 사업성이 없어 지점장 선에서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엘시티에 자금을 댄 15개 금융기관에 하나은행은 포함되지 않았다.

ⓒ연합뉴스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2016년 12월1일 법원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부산지법에 들어가고 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적힌 시점과 내용을 보면,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한 민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수사를 벌이고 있는 부산지검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안종범 업무수첩에 적힌 엘시티 민원의 발화자가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정무수석(현기환)이 당시 경제수석(안종범)에게 엘시티 사업과 관련한 지역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현 전 수석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혐의를 일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2016년 11월 “엘시티 비리사건에 대해 가능한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신속,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할 것”을 김현웅 당시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엘시티 비리 핵심 인물인 시행사 실질 소유주 이영복 회장이 최순실·순득 자매와 같은 친목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검찰 수사 결과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 연루되면서 박 대통령의 지시는 부메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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