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대통령이다. 그다음 권력 순위는, 대통령의 일정 관리는 물론 백악관 직원 수백명을 지휘하는 비서실장이다. 하지만 1월20일 출범하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한 사람 때문에 이런 권력 서열이 바뀔 조짐이다. 이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영향력 측면에서도 비서실장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장관보다 입김이 셀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때 드러나지 않은 최측근 정치 자문역이자 캠프 내 최대 실세로 트럼프 당선에 크게 공헌한 그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36)다.

쿠슈너가 맡게 될 공식 직함은 ‘백악관 선임고문’이다. 1993년에 생긴 이 직책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고위직이다. 그 영향력은 대통령과의 친밀도에 비례한다. 쿠슈너 외에 극우 성향으로 논란을 빚은 스티브 배넌도 이 직책으로 백악관에 입성할 예정이다. 오바마도 대통령 재임 중 선임고문 7명을 두었다. 그 가운데 ‘실세’로 통한 사람은 1990년대 초부터 오바마 부부와 친하게 지낸 밸러리 재럿이었다. 국내 문제에 치중한 재럿과 달리 쿠슈너는 향후 ‘내치’는 물론 ‘외치’에까지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여 역대 최강의 백악관 실세가 되리라 관측된다.

ⓒAFP PHOTO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오른쪽)과 스티브 배넌 차기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왼쪽).
트럼프가 일가친척의 연방기관 등용을 금지한 법까지 위배하면서, 국정 경험이 없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쿠슈너를 기용한 것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쿠슈너의 아내이자 트럼프의 큰딸 이방카 역시 향후 백악관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쿠슈너, 중동 평화 협상 및 대외무역 관할

트럼프가 사위 쿠슈너를 백악관 요직에 기용할 것이라는 신호는 지난해 11월 대선 승리 직후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하는 도중 나왔다. 당시 트럼프는 중동 평화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쿠슈너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동 특사로라도 임명할 기세였다. 법률 전문가 대부분은 1967년 발효한 ‘친족등용금지법’을 들어 쿠슈너의 기용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런데 기존 관례와 전통을 파기하는 데 익숙한 트럼프가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당초 쿠슈너는 대선이 끝나는 대로 본업인 부동산계로 복귀할 계획이었다. 부동산 재벌 2세인 쿠슈너는 뉴욕 중심가 고층건물 등의 소유자이며 개인 순자산만 3억 달러(약 35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장인의 강력한 권고에 백악관으로 궤도를 바꾼 것이다.

ⓒAP Photo1967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은 동생 로버트 F. 케네디(왼쪽)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가 정치적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문제는 쿠슈너가 대통령 친인척의 연방기관 기용을 원천 금지한 법규를 피해갈 수 있느냐이다. 미국 의회는 1967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기용하자 친족등용금지법(미국 대통령이 친인척을 연방기관에 취직시키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트럼프의 사위인 쿠슈너는 어떤 백악관 공직도 맡을 수 없다. 트럼프는 이 법률을 우회할 방법을 찾아내려고 전전긍긍했다. 예컨대 쿠슈너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부동산 회사 대표 자리도 포기하는 방법이다. 공직자 신분으로 민간 기업의 대표를 겸하는 경우, 정치권력을 자신의 사업에 이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다. 또한 쿠슈너는 백악관에서 보수도 일절 받지 않기로 했다. 법률 조언도 받았다. 쿠슈너의 고문 변호사인 제이미 고렐릭은 “친족등용금지법이 규제하는 것은 대통령 친인척의 연방기관 기용이다. 백악관은 연방기관이 아니므로 쿠슈너의 선임고문 취임에는 어떤 문제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조지 W. 부시 전 공화당 대통령의 법률고문을 지낸 리처드 페인터 변호사는 부시 행정부 때 고위 관리가 자기 아들을 백악관 인턴으로 불러들이려다 거부된 사례를 들며 ‘쿠슈너 불가론’을 폈다. 워싱턴 대학 법대 캐서린 클라크 교수는 〈월스트리트 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쿠슈너가 보수를 받지 않더라도 면죄부를 받는 건 아니다. 트럼프 당선자가 친족등용금지법을 어긴 뒤 빠져나갈 수 있나 시험해보려는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쿠슈너로서는 이런 현실이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누가 봐도 그는 공화당 기본 노선과 거리가 먼 돌출 언행과 성추문 등으로 대선 내내 정치적 위기에 빠진 장인을 구해내 승리로 이끈 일등 공신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도 혹독한 정치적 곤경 상황에서 자신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버팀돌 구실을 해온 사위를 가까이 두고 싶은 건 당연할지 모른다.

이 같은 위법 논란을 무릅쓰고 트럼프는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고문에 임명해버렸다. 의회도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 일각에서 이의를 제기했지만 상·하 양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입을 다물고 있다.

역대 행정부의 비슷한 선례를 감안할 때, 쿠슈너가 백악관에 입성해도 긍정적 효과보다는 트럼프의 국정 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세기 들어 미국 대통령이 친인척을 백악관 공직에 기용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친족등용금지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인 1940년대 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아내 엘리너 루스벨트를 백악관 직속 민방위청 부청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엘리너 여사는 ‘전시(戰時) 미국인의 삶 향상’이라는 목표 아래 보수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친구 무용가를 몰래 백악관으로 끌어들여 어린이들에게 춤을 가르친 일이 드러나 의회를 격분케 했다. 루스벨트의 전시 지도력에도 큰 흠집을 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동생 로버트를 법무장관에 기용했다가 정치적 곤욕을 치렀다. 로버트가 민권 정책 등 소관 업무를 벗어나 대(對)쿠바 및 베트남 정책 같은 외교 사안에 개입하면서 ‘보조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샀다. 바로 친족등용금지법 제정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도 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자신의 대선 공약인 ‘건강보험 개혁 백악관 태스크포스’ 책임자로 기용했다가 정치적 된서리를 맞았다. 클린턴은 힐러리 주도로 만든 건강보험 개혁법을 내놓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쿠슈너는 이 같은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그가 백악관 선임고문 자격으로 할 일은 세 가지 정도다. 정부와 민간 부문 간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업무는 전문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중동 평화 협상 및 대외무역 협상 등은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영역이다. 국정 경험과 협상 경험이 전무한 쿠슈너가 이 일을 맡게 되면 소관 부처인 국무부·무역대표부 업무와 겹치는 만큼 마찰이 불가피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쿠슈너의 업무가 해당 장관들과 긴장 관계를 조성할 것이고 텃밭 싸움을 야기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소관 부처 장관보다는 쿠슈너의 의견을 경청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쿠슈너는 트럼프 대통령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특권까지 쥐게 될 것이다. 자칫 ‘소통령’이란 말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전통적으로 백악관 비서실장은 외부 인사의 대통령 접견 요청과 관련해 승인 여부를 가리는 게이트키퍼, 즉 수문장 구실을 해왔다. 하지만 공화당 전국위원장 출신으로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된 라인스 프리버스가 쿠슈너의 백악관 출입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의 눈과 귀를 독차지한 쿠슈너가 전횡을 일삼을 경우 엘리너 루스벨트, 로버트 F. 케네디, 힐러리 클린턴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기자명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