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삼성이라는 이름의 역설적 시스템

삼성그룹 이건희 일가는 독특한 ‘금융자산가’다. 보통의 금융자산가들은 기업의 배당률과 주가 상승에 집중하지만 그룹의 경영자이기도 한 이들은 위험한 장기 투자를 감행한다. 그런 과감한 투자 덕에 삼성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2017년 01월 20일 금요일 제488호
댓글 0
삼성그룹 이건희 가족은 기본적으로 금융자산가다. 일가(이건희 직계)가 그룹의 3대 축인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등에 직접 보유한 주식만 현금으로 25조원에 이른다. 시가배당률을 단지 1%로만 가정해도, 일가에겐 3대 회사로부터 한 해 2500억원 규모의 소득이 발생하는 셈이다. 다른 계열사에도 만만찮은 주식 지분을 갖고 있다. 일가는 금융자산가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건희·이재용·이부진 등 일가의 대표자들은 각각 핵심 계열 기업의 최고 경영 책임자다. ‘금융자산가 겸 경영자’인 것이다.

ⓒ삼성전자 제공
2010년 1월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가전전시회(CES 2010)를 찾아 가족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전업(專業)적 금융자산가라면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배당률 인상과 주가 상승을 기대할 뿐이다. 금융자산가에게 기업은 ‘현금 주머니’에 불과하다. 고용된 경영자라면, 높은 보수를 받으며 임기를 무사히 마치면 된다. 그러려면 주주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주주들에게 수익을 나눠줄 수 있는 ‘위험 장기 투자’나 새로운 첨단산업으로 해당 기업을 몰아갈 필요가 없다. 이에 비해 ‘금융자산가 겸 경영자’인 이건희 일가는 매우 독특한 행태를 나타내왔다. 2014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지금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통해 ‘금융자산가 겸 경영자’의 ‘빛과 어둠’을 살펴보기로 하자.

‘위기 경영’의 시작,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병철 삼성그룹 창립자의 셋째 아들인 이건희가 경영권을 상속받은 것은 1987년이다. 6월 항쟁으로 개발독재의 시대가 종료되기 시작할 때다. 그가 물려받은 삼성은 국내에서 명실상부한 1위 그룹이었다. 그러나 세계시장에서는 2~3류 가전제품 업체로 통했다. 상속자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삼성그룹의 매출 실적이 1988~1993년 다섯 해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마침 1987년 7~9월에 절정을 이뤘던 노동자 대투쟁으로 평균임금 수준이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수요 주도 호황’이 한창 진행되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건희의 야망은 국내 최고 기업집단의 수장이 아니었다. 그는 삼성을 미국의 GE나 IBM, 독일의 폭스바겐 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발전시켜 아버지(삼성그룹 창립자 이병철)를 뛰어넘고 싶었다. 1942년생인 이건희는, 한국이 세계 최저 빈곤국에서 야심만만한 개도국으로 성장하는 기간에 청·장년기를 보냈다. 이 세대의 공통 의식 가운데 하나는 미국 등 서방세계에 대한 열등감과 부채의식이다. 그중 일부는 지금도 미국과 박정희, 그 딸을 숭상한다. 도심으로 뛰쳐나와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들며 ‘종북 세력 척결’을 외친다. 이건희는 이런 세대 의식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쟁과 극복의 대상을 국내 기업이 아니라 선진국 기업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선진국 기업을 이기려면 삼성 제품의 질을 대폭 개선해야 했다.

ⓒ삼성 제공
1993년 6월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룹 경영진 200여 명을 긴급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했다.

이건희의 이런 기질이 폭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1993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그해 봄 월드 투어에 오른 이건희는 미국 캘리포니아 전자상가를 방문했다가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다. 상점 진열대에는 소니, 파나소닉 등 일제 가전제품들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삼성 제품은 먼지로 덮인 채 구석 선반의 아래쪽에 처박혀 있었다. 이건희는 다음 행선지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켐핀스키 호텔에서 삼성 방송팀이 제작한 30분짜리 비디오테이프를 본다. 삼성 세탁기 덮개가 닫히지 않아 그 가장자리를 직원들이 깎아내고 있었다. 그는 삼성그룹의 핵심 경영진 200여 명을 켐핀스키 호텔로 부른다. 6월7일 시작된 3일 동안의 연설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윽박질렀다. ‘다 바꿔야’ 제품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0년까지 월드 클래스의 기업이 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데, 지금대로라면) 삼성전자는 망한 회사나 다름없다. (…)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 이제 7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후부터 ‘위기’는 이건희의 말버릇이 된다. 삼성전자가 기록적 실적을 거둘 때도 ‘위기’라고 부르짖었다. 해외 언론들이 그의 경영 행태를 ‘영구적 위기론(perpetual crisis)’으로 부를 정도다.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위기론이 폭력적이고 노골적으로, 또한 가장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니며 실현된 것은 2년 뒤(1995년 3월) ‘애니콜 화형식’ 사건이다. 당시 이건희는 직원들에게 선물로 지급한 애니콜 휴대전화 중 다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격노했다. 삼성 구미공장 운동장에 직원 2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니콜 휴대전화 등 불량 제품 15만 대를 쌓았다. 곧이어 장정 몇 명이 해머를 휘둘러 애니콜들을 부수고 불구덩이에 처넣었다. 남은 제품은 불도저로 깔아뭉갰다. ‘행사’ 직후 이건희는 ‘다시 불량품이 나온다면 같은 일을 되풀이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질(을 개선하는) 경영’이 당시의 삼성 직원들과 한국 경제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경제 시스템을 중저가 제품 대량생산에서 고부가가치 고급 제품 생산으로 혁신하자는 것이다. 주력 시장을 국내에서 해외로 옮기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추적자’인 삼성이, 이미 선진국 기업들의 고급 제품들이 점유하고 있는 세계시장에 도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선진국 기업보다 더 많은 자금을 더욱 선도적이고 효율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2~3류의 텔레비전 제조업체에 불과했던 삼성전자가 불과 20년 만에 매출액 기준 세계 최대 전자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대규모 투자로 전자산업 생태계의 상층으로


이건희가 경영권을 상속한 이후 삼성은 대규모 투자를 여러 차례 감행했다. 장기적으로 큰 수익을 기대하지만 자칫 회사를 거덜 낼 수도 있는 규모의 자금이었다. 그 덕분에 1990년대 초·중반 이미 LCD 패널과 플래시메모리(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메모리에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6~7년 뒤인 2002년에는 ‘낸드 플래시메모리(하드디스크를 대체할 정도의 고집적 성능으로 휴대형 기기에 적합한 메모리)’를 개발해서 세계시장을 석권했다. 2000년부터는 이차전지(노트북·휴대전화 등 고기능 디지털 기기에 장착 가능한 가볍고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전원)를 양산하게 되었다.

ⓒ연합뉴스
2011년 9월22일 이건희 회장이 ‘메모리 16라인 가동식 및 20나노 D램·플래시 양산’ 행사에서 시제품을 전달받고 있다.

당시 삼성의 투자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단 수억~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개발할 수 있는 ‘부품’들이다. 워낙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국내외 다른 기업들은 설사 자금력이 있다 해도 투자하지 않았다. 이런 부품들이 결국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삼성이 평판 LCD TV 부문에서 세계 1위로 떠오른 것은 2000년대 중반이지만, 그 핵심 부품인 LCD 패널은 1990년대 초반에 양산되었다. 이차전지와 플래시메모리는 이후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이 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에 대한 구상을 현실로 옮기는 데 쓰인 필수적 기술이었다. 2012년 삼성전자는 핀란드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모바일폰 생산업체로 떠오른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감행한 대규모 부품 투자들이 10~20년 뒤, 삼성이 완제품(TV·스마트폰 등) 시장에 뛰어들면서 천문학적 수익으로 꽃피게 되었던 것이다.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2013년 3월28일)의 샘 그로발트 기자가 설명한 삼성의 사업 전략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전자가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경우, 처음엔 해당 산업에서 핵심적이지만 엄청난 자금이 필요한 부품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예컨대 마이크로프로세스나 메모리칩이다. 그 부품을 다른 완제품 생산 기업에 판매한다. 이런 과정에서 삼성은 해당 산업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을 잡게 된다. 이후 삼성은 완제품으로 생산 영역을 확장하면서, 관련 플랜트와 기술에 (다른 기업이 삼성에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판매에서 세계 1위로 부상한 직후인 2012년, 자본 지출로 215억 달러를 썼다. 같은 기간 애플의 두 배다. 삼성은 기술에 크게 베팅한다.”

삼성전자는 매출 기준으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1인자이지만 그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 플래시메모리, 마이크로프로세스, 카메라 등에서도 세계 최고다. 심지어 스마트폰 완제품 부문에서 삼성의 경쟁자인 애플은 마이크로프로세스 등 삼성에서 만든 부품을 매입하는 데 총비용 중 15% 내외를 쓴다.

이런 부품 생산능력은 엄청난 비교우위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 스마트폰 업체로 떠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생산 기종이 제한된 애플이나 다른 회사와 달리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제품을 시장의 수요에 맞춰 유연하고 신속하게 내놓았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이 디스플레이나 플래시메모리 등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형편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같은 부품 공급 능력은, 삼성이 글로벌 차원에서 이뤄지는 생산의 피라미드에서 상층으로 올라섰음을 의미한다. 이 글로벌 피라미드의 하부에는 개발도상국의 조립공장들이 있다. 바로 위에는 만들기 크게 어렵지 않은 부품을 개발·생산하는 중·선진국의 각종 기업이 활동한다. 최상부에는 대규모 투자와 고도의 기술력을 겸비해야 양산 가능한 부품 생산능력을 무기로 전체 생산을 글로벌 차원에서 기획·지휘하는 소수의 초국적 기업이 존재한다. 그 대열에 삼성이 들어갔다.

ⓒ사진공동취재단
2015년 7월17일 최치훈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 통과를 선언했다.

한국이 지금까지도 일본에 무역적자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대다수 산업에서 일본이 기초 기술과 부품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미 수출품을 생산하려면, 일본만이 만들 수 있는 중간재(부품)를 수입해야 한다. 말하자면 일본은 글로벌 생산 피라미드에서 한국보다 상위에 있다. 이를 극복하기는 매우 힘들다. ‘종속 자본주의’ 같은 살벌한 용어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삼성은 적어도 일부 첨단산업 부문에서 ‘종속’을 극복해낸 것이다.

‘인내하는 자본’이라는 재벌의 역설


이처럼 삼성이 세계적 거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력적인 ‘투자 베팅’의 결과다. 더욱이 남들이 ‘삼성의 발전 단계’에 맞지 않는다고 했던 새로운 산업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삼성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삼성이 LCD 패널, 플래시메모리, 이차전지 등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때 세계의 다른 기업들은 해당 기술들의 잠재력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선진국 기업 경영자들은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에 단번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는 모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플래시메모리 등에 거금을 투자해봤자, 해당 시점에서는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본격적으로 수익을 회수할 때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삼성만 해도, LCD 패널에 투자해서 평판 LCD TV로 성공할 때까지 15년 정도가 걸렸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플래시메모리와 이차전지에 투자한 돈도 2000년대 후반에야 갤럭시 시리즈로 대박을 쳤다. 영국·미국처럼 주주의 힘이 강한 국가에서라면, 대규모 자금을 장기 투자하고 수익이 나올 때까지 ‘인내’하는 경영자는 주주에 대한 배신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간주되어 직위를 상실하기 일쑤다. ‘고용된 경영자’라면, 10년 넘게 걸리는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성과가 나올 때쯤이면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2011년 10월1일)는 이건희의 삼성을 ‘인내하는(patient) 자본’이라고 불렀다. “삼성은 인내심이 강하다. 삼성의 경영자들은 단기 이윤보다 장기 성장에 더 관심이 많다. 피고용인들에 대한 동기부여(고임금)도 잘 한다. 삼성그룹은 전략적으로 사고한다.” 그렇다면 삼성이 ‘인내하는 자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이코노미스트>는, 진보 성향의 한국인들에겐 납득할 수 없는 답변을 내놓는다. “이건희를 중심으로 형성된 컬트(a cult of personality around Mr. Lee) 덕분이었다. (…) 삼성의 인내와 대담성은, 이건희 일가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건희 일가의 삼성그룹 통제는, 계열사들이 서로의 지분을 보유하는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에 의해 지탱된다.”

결국 ‘재벌 시스템’ 덕분이라는 이야기다. 이건희 일가가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총지분 중 실제로 보유한 몫은 5% 내외에 불과하다. 그러나 계열사가 계열사를 소유하는 복잡한 지분 구조 덕분에, 이건희 일가는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다. 이 같은 재벌 시스템은, 주주들이 원해도 이건희를 삼성에서 쫓아내기 힘들 정도로 굳건하다. 이건희 일가가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삼성전자의 장기 성장을 위해 대규모 자금을 불투명한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시사IN 신선영
1월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되어 피의자 신분으로 뇌물 공여 및 위증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물론 이건희의 목적은 일가의 영광, 공명심, 상속, 야수적인 승부욕, 애국심, 일자리 창출 가운데 하나이거나 모두일 수 있다. 금융자산가인 이건희가 금융 수익보다 삼성전자 자체를 키우려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이 회사를 자신과 일가의 소유물처럼 생각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정경유착과 다양한 불법·탈법적인 수법을 동원한 경영권 상속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기가 어떠했든 이건희는 선진국 기업 경영자들이 엄두를 낼 수 없는 모험적 장기 투자를 지속해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글로벌 대기업 삼성전자다.

‘주주 가치 제고 선언’의 덫


이건희의 마지막 모험은 2010년 ‘5대 신수종 사업’ 발표다.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삼성도 어찌될지 모른다.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이건희는 위기론을 천명하면서 “다시 시작할” 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발광다이오드(LED),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을 제시했다. 모두 삼성이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갖지 못했으며 막대한 자금 투자가 필요한 신산업이다. 2020년까지 200억 달러(약 24조원)를 투자할 계획이었다.

이런 와중에 2014년 5월 이건희는 쓰러지고 만다. 일가는 3세(이재용)로의 상속을 위한 그룹구조 개편을 본격화한다. 2015년 7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삼성물산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은 이건희 일가의 손을 들어줬다. 2016년 하반기, 삼성은 다시 치명적인 위기를 맞는다. 합병 당시 국민연금공단의 결정에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삼성 측이 그 대가로 최순실씨의 딸인 승마 선수 정유라씨에게 수백억원대 자금을 지원한 혐의도 포착되었다. 엘리엇은 이를 틈타 삼성의 경영 체질을 바꿔놓으려 하고 있다. 경영권 상속을 도와주는 대신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과 앞으로 벌어들일 잉여현금흐름(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가운데 세금·영업비용·설비투자액 등을 제외한 현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주주에게 내놓으라는 것이다. 지난해 11월29일 삼성전자 이사회는 ‘주주 가치 제고 선언’을 통해 엘리엇의 제안을 상당 부분 수용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대세’에 맞춰 주주 가치를 중시하는 기업으로 변화해갈 수 있다. 국내외 수많은 개혁적 경제학자들과 금융투자 업체들이 갈망하던 흐름이다. 그러나 투자보다 주주 가치를 중시하는 삼성이 일반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삼성은 앞으로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새로운 산업 영역에 진출해서 글로벌 1위로 치고 올라가던 발전 패턴을 지속할 수 있을까. 글로벌 경제에서 한국은 지금도 선진국이라기보다 ‘추적자’ 지위에 머물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IN (http://www.sisai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