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헌법 제7조 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규정한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만큼 이 조항과 거리가 먼 정부를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중대한 장면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적’과 ‘우리 편’을 설정하고, 어떻게 ‘적’을 물리칠까를 논의했다. 그런 식의 통치가 한계에 부딪히자 헌법 자체를 국면 전환 카드로 만지작거리기에 이르렀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나온 ‘10-24-15 교과서’는 2015년 10월24일 국정교과서 관련 회의 메모다. 그가 경제수석이던 시기지만 교과서 관련 회의에도 참석했다. 메모는 ‘공격’과 ‘수비’라는 표현을 쓴다. ‘공격’ 측에는 교육부·당(새누리당을 뜻함)·학계·시민단체가 적혀 있다. ‘수비’ 측에는 야당·학계·전교조·시민단체가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공격→대응 예상→재공격’이라는 메모도 보인다. 청와대가 국정교과서 찬반 논란을 공격과 수비로 보고, 야당과 학계를 더 잘 ‘공격’할 전략을 모의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그림 1).

 

 

청와대는 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찬성하는 ‘공격’ 측과 반대하는 ‘수비’ 측을 나누었다.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전쟁으로 보는 인식은 박근혜 대통령이 원조였다. 안 전 수석의 메모 ‘10-20-15 VIP’는 2015년 10월20일 대통령(VIP) 지시 사항이라는 의미다. 이날 메모는 이렇다. ‘국정교과서. 대기업-좌파 싸움. 내용 뽑아서 보이기-기업 참여 유발 위해. 전경련, 한경연, 자유경제원.’ 국정교과서 문제를 대기업 대 좌파의 구도로 끌고 가야 하며, 교과서 내용 중에 친기업적 서술을 뽑아 보여서 기업이 논쟁에 참여하도록 유발하고, 전경련 등 기업단체들을 끌어들이라는 대통령 지시로 해석된다. 이는 이후 청와대의 교과서 국정화 ‘공격’ 전략 기조가 된다.

 

 

 

2015년 12월10일 메모(‘12-10-15 원로 역사학자’)에는 ‘선동과 선전’ ‘역사 뒤집기 중’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1994 역사교육 파동’ ‘서중석’이라는 메모도 있다. 1994년은 6차 교과서 준거안 시안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는 이유로 보수 블록이 격렬한 공세를 펼쳤던 해다. 당시 시안 중 현대사 분야 책임자가 서중석 교수였다. 교과서 국정화를 ‘선동과 선전을 동원한 역사 뒤집기’에 맞선 20년 넘는 성전으로 보는 대결적 정서가 드러난다.

교과서 국정화에, ‘공격→대응 예상→재공격’
 

2015년 7월28일 대통령 지시 사항에 ‘국회의원 응징하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교과서 문제를 벗어나서도 적과 아군을 나누는 통치 기조는 일관되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사회단체들은 낙인이 찍혔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협상 타결 이후 반대 여론이 들끓던 시기인 2016년 1월4일 티타임에는 ‘정대협 실체’라는 메모가 등장한다(‘1-4-16 티타임’). 이 시기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싸움의 명분만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보수 블록의 맹공을 받던 때다. 같은 해 1월24일 티타임에는 ‘노총 비리 압박’이라는 메모도 나온다(‘1-24-16 티타임’). 임금피크제에 이어 성과연봉제 등 노동 이슈로 청와대와 노동계의 긴장이 높았던 시기다.

입법부는 청와대의 주적이나 다름없었다. 여당이 과반 의석을 갖고 있던 19대 국회 때도 그랬다. 2015년 7월28일 대통령 지시 사항은 아주 공격적이다(‘7-28-15 VIP’). ‘중소·중견기업 국회 압박’ ‘선진화법 문제’ ‘국회의원 응징하겠다’ ‘하반기 규제는 BH(청와대)가 푼다-노동개혁, 규제개혁, 국회 압박’(그림 2). 같은 날 열린 서별관 회의 기조가 차라리 부드럽다(‘7-28-15 서별관-노동개혁’). ‘개혁대상과 타협보다 국민 입장서 개혁→홍보가 key(열쇠)!’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입법부에서의 타협은 애초에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2015년 7월20일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7-20-15 실수비’) 메모는 이렇다. ‘여야 협상 시 Deal(거래) 지양.’ 입법부에서의 타협을 죄악으로 보는 정서가 청와대를 지배했다.

입법부의 본질적 기능에 대한 공격도 보였다. 2015년 11월3일 고위당정청 회의는 국회 예산정책처를 집중 성토했다(‘11-3-15 고위당정청’). ‘예산정책처 문제’를 ‘당 차원 문제제기’하고 ‘(국회) 운영위가 예산정책처와 국회사무처 심사 철저’히 하자는 내용이다.

예산정책처는 독립성을 보장받는 국회 산하 예산정책 연구 기관이다. 정부 재정에 대한 자료 요구권을 가지고 있으며, 100명이 넘는 연구 인력이 방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발행한다. 한정된 인력으로 정부 예산을 검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예산정책처 보고서를 즐겨 인용한다. 그만큼 정부에게는 눈엣가시다. 정부 예산 감시는 입법부 본연의 기능에 해당하는데, 청와대는 그 본연의 기능을 제약할 방법을 논의했다.

협상 가능성은 스스로 봉쇄했다. 압박을 통한 굴복이 사실상 유일한 대입법부 전략이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는 유난히 ‘홍보’를 강조하게 된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박 대통령의 ‘홍보 지시’로 가득 차 있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임기 반환점 홍보-경제민주화 용어 쓸 것인가?(2015년 7월19일)’ ‘지방 창조경제센터 홍보 부족(2015년 7월22일)’ ‘연말정산 정책, 기획기사 칼럼, 홍보(2015년 12월12일)’ ‘보육대란 홍보(2016년 1월9일)’ ‘(해외)순방 경제효과 홍보-기자간담회, 사절단, K-TV 아리랑티비 순방 다큐(2016년 4월9일)’ ‘성과 홍보 철저-사례 위주로 거부감 안 느끼게(2016년 7월23일)’ 등 홍보 요구를 쏟아냈다. ‘VIP’ 메모에서만 추려낸 것이다.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 회의와 티타임 등을 합치면 더 늘어난다. 대국민 홍보를 국정의 축으로 삼는 통치는, 입법부부터 사회단체까지 그 어떤 논의 파트너도 인정하지 않는 권력이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태도다.

 

ⓒ연합뉴스11월8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하기 위해 국회에 입장하는 길목에서 정의당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라고 쓴 피켓을 들고 있다.

 


국면 전환 대책, ‘개각+개헌+사면’

반대하는 국민을 적대하는 정부의 지지기반은 총력 홍보에도 불구하고 붕괴했다. 2016년 4월 총선 참패는 청와대를 곤경에 빠뜨렸다. 총선 패배 이후 청와대는 국면 전환 대책을 분주히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반(反)헌법적 태도의 절정이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는 개헌을 국면 전환책의 하나로, 일종의 술책으로 검토한다.

2016년 7월20일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서 나온 메모(‘7-20-16 실장님 회의’)는, ‘국면 전환 대책’이라는 소제목 아래 몇 가지 대책을 나열한다. ‘보수대연합-MB 만나기, 종교계’ ‘협치-김종인 박지원’ 등이 열거된 후, 마지막 줄의 메모가 이렇다. ‘개각+개헌+사면.’ 청와대에서 헌법은 여러 국면 전환 카드 중 하나로 취급받았다. 10월22일 티타임 메모에서도 ‘1. 국면 전환 대책 2. 시정연설-개헌’이라는 메모가 등장한다. 그로부터 이틀 후인 10월24일 시정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개헌 제안을 던진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서 개헌 메모는 어김없이 국면 전환 논의 와중에 나왔다. 개헌의 방향과 목적을 두고 논의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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