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소추된 사항만이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할 이유는 아니다. 스스로 사임하지 않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탄핵 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1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발언한 내용을 보면 대통령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도 의식세계나 사고 수준, 몰염치 등 수준 미달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난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됨됨이를 수십 년간 관계하면서 완벽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었다.

박근혜 게이트는 비록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실상을 보여주었지만 전화위복 기회로 삼는다면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10차에 걸친 촛불집회는 시민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대통령에 의해 실추된 국격을 시민이 회복해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정치행위였다.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가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감시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므로 앞으로도 촛불처럼 지속되어야 한다. 정치적 무관심은 집권세력에 의한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촛불집회를 통해 이룩한 성과는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먼저 박근혜 정권 탄생과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가능하게 한 정치세력은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책임의 당연한 귀결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최순실 국정 농단의 ‘부역자’들을 임명직에서 배제하고 공적 활동 역시 감시해야 한다.

정책으로는 독점적인 정치권력의 작동 방식, 재벌 중심의 경제정책, 양극화를 방치하는 정책과 경쟁만을 추구하는 승자 독식의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교육 역시 인간 가치의 구현보다는 입시 위주의 점수 경쟁을 벌이는 치열한 투쟁터로 변질된 현실을 혁명적인 수단과 사고의 전환을 통해 바꾸어야 한다.

정권 교체만으로 이러한 현실이 자동으로 개선되지는 않는다. 기득권층의 지속적인 반대와 정치적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 분명하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이를 관철하기 위한 노련한 정치적 소통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연합뉴스이주영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장이 5일 오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첫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17.1.5

현재 논의되는 뜨거운 이슈는 개헌이다. 현실적으로는 대선 이후에나 가능한 논의이다. 대선에 대비한 세력 재편을 목적으로 개헌을 이슈화하는 것은 정치적 책략이다. 권력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하는 헌법 개정 논의는 선거법 개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정권 쟁취를 위한 정치인들의 게임에 불과하다. 권력독점적인 현행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의회는 과연 유권자의 지지도를 정확하게 반영되는 의석 배분을 내용으로 하는가. 소선거구제에서 패배한 측 유권자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는다. 비례대표 의원을 배분한다고 하지만 300명 중 총 47명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권력 독점을 방지할 장치로서 의회 권력이라도 유권자의 의사가 정확하게 반영된다면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제왕적이지 못할 것이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할 경우 선거제도의 개혁을 수반할 것이지만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는 국회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덮고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정치에 대한 시민의 감시는 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필수 조건

박근혜 게이트는 재벌과 권력의 유착이라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을 드러냈다. 보유 지분에 비해 무한 권력을 행사하는 재벌가의 경영 행태와 이들의 탈법적 세습을 유지하기 위한 권력과의 유착은 정치를 부패하게 하고 절대 권력의 행사를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 민주적 소통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 경영의 창의성은 발휘되기 어렵다.

검찰 개혁 역시 필수다. 검찰이 정치권력과 유착해 검찰권을 편파적·정치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검찰 불신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일시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검찰총장만이라도 대통령이 아닌 국회가 임명하는 것으로 검찰청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고위공직자비리수서처의 신설을 추진해야 한다. 검찰권의 독립성과 함께 검찰에 대한 보완적 조직도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박두한 대통령 선거에만 몰두해 5년간의 권력 독점을 향한 정치 선전에 나선다면 국가적 불행은 반복될 것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적 가치에 대한 대안 제시도 없이 토건국가적 선거공약이나 남발하고 선거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정치공학적 세력의 등장을 봉쇄해야 한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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