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주아무개씨(45)는 박지만 EG 회장의 수행비서였다. 박 회장의 회사에서 18년하고 10년 동안 비서실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주씨의 자살이나 타살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1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의혹을 가질 만한 사안이 아니다. 지금까지 보기에는 심근경색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지만 회장의 매형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1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아무개씨가) 자살 또는 타살이면 내 사건과의 개연성은 99%다”라는 글을 남겼다.

신씨가 말하는 ‘내 사건’의 뿌리는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영재단 강탈 사건’ ‘중국 청도(칭다오) 납치 사건’과 같은 일을 당했다는 신 씨가, 박지만 회장을 고소하자 박 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이 신동욱 총재를 맞고소한 사건을 말한다. 이 소송으로 신동욱씨는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2010년 기소되었다. 2년에 걸쳐 재판이 진행됐고, 그는 징역 1년6개월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시사IN 이명익신동욱 공화동 총재는 1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아무개씨가) 자살 또는 타살이면 내 사건과의 개연성은 99%다”라는 글을 남겼다.

이 사건 관련 당시 1심 재판부는 “박근혜가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을 묵인했다거나 신동욱을 중국 청도로 납치해 테러를 조종했다는 내용은 여러 증거로 볼 때 허위 사실이 명백하다. 지속적으로 박근혜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비방 글을 올려 중형이 불가피하다”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는 “박지만이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을 지시했다는 부분은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허위라는 점에 대해서도 검찰이 입증을 다하지 않았다”라며 일부 무죄 판단을 했다(시사IN 232호 ‘엄마없는 하늘아래… 싸우는 남매들’ 기사 참조).

이 사건으로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던 2010년 6월18일 5회 공판 당시, 숨진 주아무개씨도 박지만 회장 쪽 증인으로 출석했다. 〈시사IN〉이 입수한 당시 공판 조서를 보면, 주아무개씨가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공판 조서를 보면, 주씨는 신동욱씨가 중국 청도에서 귀국한 2007년 7월5일 해당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를 육영재단 직원 오아무개 실장에게 전하기도 했다.


신동욱 변호인: 2007년 7월5일 10시경 EG를 찾아와 박지만에게 신동욱 중국 사건 관련 문건을 전달해 달라고 한 적이 있나?

증인 주○○: 없다. 기관원을 사칭하는 사람을 회장과 만나게 하지 않는 것이 임무다.

신동욱 변호인: 7월5일은 귀국한 날인데 짧은 기간에 이미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았다면 위에서 누군가 지시해 (육영재단 직원) 오○○를 만나라고 한 것이 아닌가?

증인 주○○: 지시 받은 적이 없다.


주씨는 법정에서 육영재단 직원 오 실장을 “그나마 어린이회관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그런 그를 근무시간에 따로 만나 말을 옮겼다는 의미다. 신씨는 이 모든 행동이 박지만 회장 쪽의 지시라고 의심한다.

2007년 중국 청도 사건 이후, 신동욱씨는 박 회장이 이를 지시했다고 판단하고 서울 청담동 박 회장 집으로 찾아가기도 했다. 2007년 11월29일 아침 박 회장 집 앞에서 그런 신씨를 두 사람이 막아섰다. 지난 1월1일 숨진 채 발견된 주 아무개씨와, 2011년 숨진 박 대통령 5촌 박용철씨다. 두 사람 다 ‘박지만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재판 당시 주아무개씨는 법정에서 박용철씨를 처음 봤다고 진술했다. 어떻게 그 사람이 박 회장 집 앞으로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취지였다.


주○○: (2007년 11월29일 경 신동욱이 박지만의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내가 신동욱에게 “어떻게 오셨냐”라고 하니 “회장님 뵈러왔다”라고 해서, 내가 “회장님은 업무시간에 사무실에서 약속을 잡아서 하십시오”라고 했더니 신동욱이 회장을 만나고 가야되겠다고 했고, 그 후 5~10분도 되지 않아서 박용철 일행이 와서 강제로 떼어냈다.


박 회장의 측근이었던 주아무개씨는 ‘육영재단 폭력 사건 등’을 둘러싼 박 회장 집안일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동욱씨는 〈시사IN〉과 전화통화에서 “청도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 메신저로 이춘상 보좌관(문고리 4인방으로 불렸지만 2012년 대선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숨짐), 박지만 회장 메신저로 주○○ 과장이 나를 만났다. 그때 내가 청도 사건이 가까운 사람 소행같다며 박근혜 대통령 박지만 회장 두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씨의 주장은 증거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박지만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박용철씨가 말을 바꾸면서 사건의 흐름이 달라졌다. 2010년 7월 박용철씨는 이 아무개 전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에게 ‘사건의 실체’라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전 부장이 2010년 9월1일 법정에 나와 증언한 내용이다. “박용철씨가 ‘신 교수(신동욱)를 죽이라고 박지만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 있고, 통장으로 비용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 나 혼자 그냥 죽을 수 없다(2010.7.28)’라고 말했다.”

ⓒ시사IN 이명익박지만 EG 회장의 비서 주아무개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경찰은 심근경색이 사망원인이라고 밝혔다.

박용철씨가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는 얘기가 신동욱씨 귀에 들어갔다. 신씨는 자기 재판의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불렀다. 2010년 9월1일 박용철씨는 법정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박지만 회장의) 정용희 비서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증인이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테이프라고 할 것도 없고 증인이 핸드폰에 녹음해놓은 것이 핸드폰을 바꾸면서 캐나다에 가져다놓았다.” 정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박씨의 이야기가 다 소설이라고 맞섰다.

신동욱씨 주장에 따르면, 그리고 1년 후 박용철씨는 증인으로 다시 법정에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2011년 9월6일 박씨가 피살되면서 법정에 설 수 없게 됐다. 바로 ‘박근혜 5촌간 살인 사건’으로 숨지면서다. 사건 당시 신동욱씨는 박용철씨가 죽은 시점이 묘하다고 지적했다. 신동욱씨 쪽 조성래 변호사는 “오는 9월27일 박용철씨를 증인으로 신청해놨는데, 그 전에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누가 반사이익을 볼지 생각해봐라. 석연찮은 죽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시사IN 273호〉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 3대 의혹’ 기사 참조).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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