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M〉
감독 : 이명세
주연 : 강동원·이연희·공효진

이명세 감독이 말했다. “한국인이 한국말로 얘기하듯 영화감독은 영화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나에게 이미지는 모국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모국어를 열심히 썼더니 난해하다고 손가락질당한다. 스타일은 ‘간지’나는 데 스토리에 ‘요지’가 없다는 게 이유다. 부당하다. 영화 100년사에 ‘나올 얘기는 이미 다 나왔다’는 게 중론이거늘, 사랑하고 헤어지고 배신하고 복수하는 이야기 말고 또 무슨 기발한 이야기가 있단 말인가. 재미없다는 비판이야 취향의 차이라 치자.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영화를 보고 난해하다며 손사래를 친다면, 미안하지만 그자의 이해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막말로 이게 난해한 영화면 데이비드 린치는 나가죽으란 얘기다.

낯선 것을 표현하는 가장 악랄한 단어가 ‘난해함’이다. 〈M〉은 조금 낯선 영화일 뿐 난해한 영화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배척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그것이 위험하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M〉은 새로운 시도를 한 영화일 뿐 위험한 만용을 부리는 게 아니다. 이명세 감독은 스토리의 진부함을 극복하는 스타일, 이야기의 한계를 확장하는 이미지로 ‘서술어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형용사 영화’의 신기한 매력을 선사해왔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최연소 신춘문예 당선에 빛나는 천재 소설가 한민우(강동원)가 잃어버린 첫사랑의 기억을 되찾는 혼돈의 여정은 그를 미스터 엠(Mr. M)이라고 부르는 의문의 목소리에서 출발한다.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지만 정작 자기 삶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한민우. 어느 날 문득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끼고 또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꿈인가 싶으면 어느새 현실을 살고, 있고, 현실이다 싶으면 어느새 꿈속을 배회하는 하루하루. 이윽고 11년 전 스쳐간 첫사랑 그녀 미미(이연희)가 조금씩 민우의 기억 속에서 그 지워진 윤곽을 다시 그려낸다.

꿈꾸는 자들에게 '발견의 기쁨' 선사

우리의 기대와 달리 세상은 ‘설운도 가르마’처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어디까지가 이마이고 어디부터가 머리인지 구분하기 힘든 전두환의 ‘마빡’에 가깝다. 악은 선의 뒷모습이고 거짓은 때로 진실의 샴쌍둥이, 현실은 종종 꿈처럼 몽롱하고 꿈은 때때로 현실처럼 생생하다. 영화 〈M〉은 늘 ‘차이’로 구분되던 두 세계를 이렇게 ‘사이’로 끌어당겨 뒤섞는 영화다. 이른 아침 당신이 잠에서 깬 직후, 그러니까 꿈이 미처 달아나기 직전이면서 아직 현실이 들이닥치기 이전, 침대 맡에 걸터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하품 하는 바로 그때, 머릿속에 잠시 두 차원이 공존하는 그 멍한 바통 터치의 순간을 떠올리면 된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의 거리에서 주인공을 굳이 짙은 가로수 그늘 밑으로 숨기는 영화. 거대한 판화를 찍어내듯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여백을 새까만 어둠으로 지워내는 영화. 감독이 “빛나는 어둠”이라고 표현한 모순 형용의 ‘모국어’가 어떻게 구현되는지 눈을 반짝이며 들여다보면 문득 ‘마빡’을 탁 치게 만드는 발견의 기쁨을 주는 영화. 〈M〉은 강동원 얼굴 말고도 사랑스러운 구석이 많은 영화다. 단, 당신이 꿈을 꿀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이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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