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8일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수의를 입은 채 박영수 특별검사팀(특검)에 소환됐다. 그는 전날 참고인 신분으로 양복을 입고 출석했다. 조사 도중 문 전 장관은 긴급체포됐다. 그는 12월3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되었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하 삼성 합병) 당시, 국민연금에 합병을 찬성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특검은 시작부터 삼성 합병 의혹을 정조준했다. 공식 수사 개시 첫날인 12월21일, 국민연금관리공단과 보건복지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박영수 특검과 특검보 등이 현판식을 하는 사이 100여 명에 달하는 수사팀이 압수수색에 투입됐다. 특검은 이어 12월26일에는 문형표 전 장관과 김진수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연합뉴스특검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삼성 합병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밝혀낼 핵심 고리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대가로 삼성이 최씨 관련 재단과 회사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평가해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유리하고,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국민연금은 최소 700억원에서 최대 4900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특검은 이 과정을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순실씨→박근혜 대통령→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문형표 전 장관을 거쳐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을 압박해 찬성 의결을 이끌어낸 것으로 특검은 의심한다. 삼성은 최씨가 독일에 세운 회사인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에 전지훈련 지원을 명분으로 2015년 8월 계약을 맺고 약 36억원을 송금하는 등 최씨 모녀에게 총 80억원을 지원했다. 또 삼성은 최순실씨가 관여한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만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이하 동계영재센터)에는 16억원을 지원했다. 모두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의 일이다.

실제로 특검은 출범 초기부터 복지부 관계자들을 조사한 결과 문 전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는 공통된 진술을 확보했다. 문 전 장관이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국민연금 합병 찬성을 어떻게든 유도하겠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들의 성향을 사전에 파악하게 하는 등 구체적인 개입 정황도 확인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외부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내부 인사들만 있는 투자위원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찬성을 의결했다. 문 전 장관은 국정조사에 이어 특검 수사 초기에는 압력 행사를 부인했다. 하지만 12월28일 새벽 긴급체포 이후 말을 바꿨다. 이규철 특검보는 12월28일 기자 브리핑에서 “문 전 장관이 국민연금에 삼성 합병을 찬성하도록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에서 합병 찬성을 주도한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도 특검 조사에서 “삼성 합병에 복지부의 압력이 있었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홍 전 본부장을 배임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이 삼성 합병 과정에 보건복지부가 개입한 점을 인정함에 따라 특검 수사는 박근혜 대통령으로 곧장 향하고 있다. 특검은 12월30일 박 대통령의 ‘깨알 지시’를 업무일지에 기록한 안종범 전 수석을 재소환해 조사했다. 안 전 수석은 12월26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구치소로 찾아온 여야 의원들에게 “모든 것은 대통령이 결정하고 나는 이행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전방위 수사 벌이며 청와대 포위 중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의혹을 밝힐 특검의 카드는 또 있다. 바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만든 동계영재센터에 대한 삼성전자의 지원이다. 특검은 12월29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위인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을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했다. 김 사장은 동계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한 의혹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특별수사본부에서 수사를 받은 바 있다.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김 사장 소환조사에 대해 “보충 수사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 향후 조사에 의해 신분은 변동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다음 날 새벽 4시40분까지 수사를 받은 후 일단 귀가했다. 동계영재센터 지원에 박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면, 이 역시 제3자 뇌물수수죄가 인정된다.

 

 

 

ⓒ시사IN 윤무영박영수 특검(가운데)은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특검은 지난 12월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출국금지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제3자 뇌물수수 혐의가 적용된다면 돈을 준 삼성은 뇌물공여 혐의를 받게 된다.

이 외에도 특검은 전방위 수사를 벌이며 청와대를 포위하고 있다. 특검은 12월26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휴대전화 등을 확보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관철하기 위해 문체부를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특검은 유 전 장관을 접촉해 블랙리스트 작성과 문체부 전달 과정 등에 관한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이 밖에도 조윤선 문체부 장관(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만들어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문체부에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모철민 주 프랑스 대사(전 교육문화수석),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 등 관련자를 소환조사했다.

특검은 또 ‘세월호 7시간’과 ‘비선 의료’ 의혹 관련해서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12월24일과 29일, 세월호 참사 당시 간호장교로 청와대에서 근무한 조여옥 대위를 참고인으로 소환조사했다. 12월28일에는 의료법 위반으로 김상만 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과 김영재의원 김영재 원장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의 휴대전화에서 ‘주사 아줌마 들어가십니다’ ‘기 치료 아줌마 들어가십니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확보했다. 이는 이영선 행정관이 2013년 4~5월 정 전 비서관에게 보낸 것으로, 또 다른 불법 시술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검은 검찰로부터 이를 넘겨받아 조사 중이다.

한편 특검은 정유라씨를 소환하기 위해 인터폴에 적색 수배를 요청했다. 이화여대도 압수수색했다.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는 정씨는 독일에서 변호사를 선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규철 특검보는 브리핑에서 “변호인이 선임됐다는 이야기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독일에 있는 정유라씨 쪽 변호사와 특별히 접촉한 사실은 없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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