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누차 강조했다. ‘저의 가족은 오직 국민 여러분’이라고. ‘대한민국 여家長’으로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해 세계 영향력 1위 여성, 퇴임 때 지지율 90% 대통령이기를 기대한다.” 어느 한 보수 논객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 쓴 글이다. 특히 한국의 보수 인사들은 박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최초 여성 총리를 지낸 골다 메이어와 닮기를 원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을 방문 중 필자가 탐문한 골다 메이어의 행적은 박 대통령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철의 여인’으로 숭앙받았던 골다 메이어.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세상을 바꾼 25인 중 한 명이다.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라 불리는 골다 메이어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초기 취약한 재정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제대로 무장하지 못하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 유대인 사회로부터 거금 5000만 달러를 모금해 이를 타개했다.

메이어는 1949년에서 1956년까지 7년간 노동장관으로 있으면서 이스라엘의 노동·복지 정책의 기반을 다졌고 1954년에는 강력한 정치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험법 제정을 통해 국민연금을 실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1956년부터 10년간 외무장관에 재직하면서 2차 중동전쟁(수에즈 운하 위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이스라엘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드높였다. 또한 소련 및 동구권 국가로부터 유대인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귀환(알리야)시키는 데도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다.

외교장관을 끝으로 메이어는 공직에서 은퇴했지만 레비 에슈콜 총리가 심장마비로 서거하면서 1969년 2월26일 일흔 살이 넘은 나이로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재임 중에도 메이어의 업적은 눈부셨다. 1970년 중동 평화 구상을 최초로 내놓아 이집트와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한편,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단에 테러 공격을 가한 ‘검은 9월단’을 끝까지 추적해 제거하라고 모사드에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골다 메이어는 성공한 정치인이자 유능한 외교관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욤 키푸르’ 전쟁은 커다란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1973년 10월6일 욤 키푸르 유대교 축제일을 기해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그리고 시리아는 골란 고원에 대한 기습 공격을 동시에 가해왔다.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가 이러한 동향을 사전에 파악해 메이어 총리에게 보고했지만 이는 무시되었고, 오히려 이집트·시리아 모두 기습 공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국방정보본부 아만의 보고서가 주목을 받았다. 이집트 기습 공격에 대한 내각 대책회의가 열렸고 메이어의 망연자실한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생방송으로 전 이스라엘에 퍼져 나갔다. 국민의 실망은 컸다. 이스라엘 전사자 2800명, 부상자 8800명, 그리고 포로 239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희생자 규모 때문에 더욱 그랬다.

 

ⓒAP/비젠탈 센터 나치 부역자 추적단체인 '비젠탈 센터' 영화제작부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총리들'의 한 장면.

1973년 10월전쟁('욤 키푸르'〈속죄일〉 전쟁) 당시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오른쪽)와 모셰 다얀 국방장관(가운데) 등이 골란 고원을 순시하는 모습이다.

 


메이어는 전쟁이 끝나자 총리직에서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아그라나트 조사위원회가 메이어에게는 전쟁 실패의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1978년 사망할 때까지 욤 키푸르 전쟁은 그녀를 계속 짓눌렀다. 그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 병사들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을 기리는 그 어떤 것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했다. 물론 이스라엘 국민들은 메이어의 공적을 기려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10셰켈짜리 지폐도 발행했고(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녀의 이름을 딴 도로와 예술센터도 만들었다. 그러나 아랍의 기습 공격에 적절하게 대비하지 못해 수많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희생된 점에 대해 삶을 마감할 때까지 통한과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삶을 마감할 때까지 참회했던 골다 메이어

박근혜 대통령과는 너무 달라 보인다. 박근혜의 ‘국민행복’ 시대는 ‘국민불행’ 시대로, ‘창조 경제’는 ‘파탄 경제’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불신 프로세스’로, 그리고 ‘균형 외교’는 ‘파행 외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박근혜 게이트는 “저의 가족은 오로지 국민 여러분뿐”이라는 발언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대미문의 국정 농단에도 불구하고 “탄핵에는 이유가 없으며 (국회의 탄핵 청구는) 기각되어야 한다”라고 대리인을 통해 밝히는가 하면 “뇌물죄는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대통령.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대통령의 직접 책임이 아니며, 대통령이 (국민의) 생명권을 직접 침해한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다”라는 대통령. ‘어떤 잘못도 없고, 억울하고, 떳떳하다’는 그녀의 태도에 모두가 분노와 절망을 금치 못하고 있다. ‘동양의 골다 메이어’라는 환상을 가지고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이들에게 묻고 싶다. “어찌 그런 대통령을 선출했는가?”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