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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약한 ‘닭 공장’을 조류독감이 덮치다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7년 01월 13일 금요일 제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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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생각하게 만드는 동물이다. 횃대에 올라앉은 수탉이 새벽을 깨우면 시인은 역사가 시작된 태곳적의 광야를 떠올리곤 했다. 잠깐의 허기를 메워줄 간식거리로만 여겼던 달걀에서 생명이 뛰쳐나오는 걸 처음 봤을 때 누구라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태양을 닮은 노른자를 품은 알은 우리의 감성을 우주가 시작된 그 혼란한 어둠 속으로 이끈다. 이집트의 ‘사자의 서’, 인도의 ‘리그베다’, 그리스의 ‘오르페우스 신화’, 고려의 <삼국유사>를 써내려간 옛 현인들이 모두 그처럼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강렬한 영감에 사로잡혔음에 틀림없다. 수많은 신화가 인간은 알의 자손이라고 말하는 게 신기하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이 질문 역시 근본에 닿아 있다. 생명의 기원을 놓고 지금도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가지 견해, 즉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의 창조론(혹은 지적 설계론)은 결국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답이다. 중세의 교회 사제들은 성서의 ‘창세기’에 따르면 신이 먼저 생명체를 창조했지 번식장치를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닭의 손을 들어주었다. 진화론을 신봉하는 학자들은 알은 이미 닭이 출현하기 10억 년 전에 있었다고 말한다. 다세포 생물이 진화해 단순한 방법으로는 DNA를 교환하기 힘들어 만들어낸 장치가 바로 알이다. 알은 유성생식, 즉 성의 발명이 낳은 필연의 결과다. 어류·파충류·조류는 나중에 이 시스템을 선택했을 뿐이다.

ⓒ한성원 그림
닭은 조류 중에서도 유성생식, 즉 번식에 특별한 재능이 있다. A4 용지보다 좁은 공간에 갇혀 하루에 거의 1개씩 달걀을 생산해내는 공장형 사육 닭은 물론이고 야생 닭도 알 낳는 기계나 다름없다. 인도의 야생 닭은 한 번에 12개씩 1년에도 몇 차례나 알을 낳는다. 포식자가 훔쳐 가면 열불이 나 도둑맞은 것보다 더욱 많은 알을 낳는다. 닭은 섭취한 에너지의 4분의 1을 알을 만드는 데 쓴다. 보통 동물의 번식력은 그 동물의 체중에서 자식을 위해 비축한 양분의 양으로 측정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암탉의 자식욕은 인간 엄마의 100배이다. 모성애에 관한 한 인간은 닭에게 명함도 못 내민다.

이맘때 철원평야에 두루미를 구경하러 가면 시민단체에서 나온 가이드가 신신당부를 한다. 두루미를 놀라게 해 날아오르게 만들지 말라고. 두루미가 그 큰 덩치로 급하게 이륙을 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면 어렵사리 논에서 한나절 먹이 활동을 한 게 허사가 되고 만다. 철새 도래지에서 일제히 철새가 날아오르는 걸 보거나 사진을 찍으려고 소리 지르며 돌진하는 짓은 대표적인 ‘해새’ 행위이다. 긴 거리를 날아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야 하는 두루미는 1년에 새끼 두 마리를 키우기도 벅차다. 번식지 사정이 좋지 않으면 새끼가 달랑 한 마리뿐이거나 새끼가 아예 없는 두루미 가족을 만나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지금 닭의 조상인 ‘갈루스 갈루스 도메스티쿠스종’은 800만 년 전 나타났으리라 추정되는데 아마도 어느 순간 중대한 결정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새의 정체성인 날기를 포기할 것인가, 번식욕을 억누를 것인가.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병행하기는 힘겨웠을 터이다. 결국 닭은 전자를 택했다. 창공을 날아오르는 꿈을 버리고 위급한 순간에 고작 몇 미터를 뛰어오르는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대신 원 없이 알을 낳아 정글 바닥 곳곳에 숨겨놓는 기술을 익혔다. 그렇게 타이와 인도의 숲속에서 수백만 년을 별일 없이 살던 닭은 8000년 전쯤 인간에게 사로잡혀 가축이 되었다. 그때부터 닭은 신화의 주인공에서 개와 고양이에게 쫓겨 다니며 농가의 뒤뜰을 배회하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했다. 어느덧 꿩 대신 닭이니, 닭 잡아먹고 오리발을 내미느니, 닭대가리니 하는 모욕적인 말들을 예사로 듣게 되었다.

미국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하는 육식 수요를 충족하려고 궁리하게 된 것은 이 위대한 새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미국인은 이 새를 포드 자동차의 자동화 시스템을 연상케 하는 생산라인에 올려놓겠다는 발상을 했다. 번식력을 극대화하려고 새의 정체성마저 포기한 이 날지 못하는 새는 생명을 가진 공산품으로 변하는 수모를 당했다.

이 새가 가진 능력은 처음 농장을 공장화하겠다는 생각을 한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어째서 날기를 포기하면서까지 자기가 가진 재주를 지키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닭들은 밤이나 낮이나 전등불을 밝혀놓은 비좁은 케이지의 전선줄에 앉아 달걀을 1년에 250~290개 생산해냈다. 사료 3㎏을 먹이면 달걀 1㎏을 내줬다. 사료 10㎏으로 살코기 5㎏을 만들었다. 사료 10㎏으로 쇠고기는 1㎏, 돼지고기는 3㎏을 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전 세계로 값싼 육류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곳곳이 미국식 공장형 양계 방식에 경악하고 열광했다. 세계 각국에 역량에 맞는 규모의 양계장이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솟았다. 이즈음 한국에서도 군사독재에 맞서느라 먹고살기 힘들었던 김수영 시인이 양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조선일보>에서 쫓겨난 리영희 기자도 양계 사업을 해볼까 궁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영어에 능통했는데, 아마 미국에서 공장형 양계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음이 분명하다.

1965년이 되자 미국에서는 하루에 병아리 4만 마리를 생산하는 양계 시설을 단 한 명이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양계장은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커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남아시아, 인도, 중국, 유럽, 아메리카 대륙의 농가에서 힘차게 뛰놀던 각양각색의 닭 변종은 멸종의 시계가 재깍거리기 시작했다는 걸 몰랐다. 병을 이기는 특성은 무시하고 적은 사료만 먹고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종으로 개량하는 인간 선택이 누적됐다. 밀집·효율·약물·떼돈이라는 사두마차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식용 육지동물 10마리 중 9마리는 닭이며 그 대부분의 유전적 형질은 같다. 공장형 사육 시설의 규모가 얼마나 커졌냐면, 2015년 조류독감이 미국 전역을 휩쓸었을 때 아이오와 북서쪽의 농가 한 곳에서만 400만 마리 가금을 죽인 일이 있을 정도였다. 값싼 닭을 팔아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를 쌓게 된 세계 각국의 거대 자본은 조류독감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주범이다.

조류독감이 이 허약한 닭장을 덮치기 전 불길한 조짐이 잇달았다. 멀쩡하던 닭이 하루아침에 수천 마리씩 떼죽음한 것이다. 콕시디아증, 뉴캐슬병 같은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공장형 사육 시설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였고, 닭 사육업자만의 고민이었다. 업자들은 닭에게 항생제, 백신, 약물 조제된 사료를 배터지게 먹였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모진 인간이 있어야 닭고기가 부드러워진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매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야생 오리와 기러기 수백만 마리가 정기적인 이동을 위해 캐나다와 시베리아의 호수에 집결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이때 번성한다. 바이러스는 어린 새의 창자에서 왕성하게 복제돼 물속에 배설된다. 이 바이러스는 다시 섭취돼 철새 3분의 1의 몸에 자리 잡는다. 변종도 많이 발생하지만 이 바이러스는 숙주를 해치지 않는다. “최적으로 적응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이런 상태는 수백만 년간 계속됐고, 그동안 이 물새들은 나는 법을 잊어버리고 땅에 뿌리를 내린 사촌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 간혹 이 새들의 이동 경로에서 가금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눈에 띄게 확산되는 일은 없었다.

홍콩의 마이포 습지는 잘 보존된 조류 서식지이다. 시민들은 마천루 옆에서 이런 천혜의 서식지를 가꿨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시민 수천명이 열심히 새를 관찰하고 길렀다. 주룽에는 온갖 종류의 진기한 새들을 거래하는 유명한 시장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비극이 시작됐다는 것은 공교로운 일이다. 1997년 3월 웬룽과 마이포 습지 인근의 농가에서 닭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뇌·위·폐·눈에서 과다 출혈이 일어났다. 볏과 발톱까지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전형적인 고병원성 조류독감 증상이었다. 물새의 이동 경로에서 일어난 폐사에서 확인했듯이 물새에게는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이 바이러스 H5N1은 가금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동안 모두 15차례 국지적인 발병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이 병이 인간에게 점프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인간 앞에 놓인 조류독감이라는 무시무시한 시한폭탄

병이 진정되는 듯 보였던 1997년 4월 세 살 난 남자아이 한 명이 퀸엘리자베스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의료진은 일련의 증상이 아이의 몸을 가차 없이 망가뜨리는 걸 보면서 기겁했다. 아이는 5월21일 사망했다. 의료진은 사망자에게서 채취한 샘플을 인간 및 돼지 인플루엔자와 확인하는 작업을 벌였으나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아이를 죽인 살인자의 신원을 밝혀낸 것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연구팀이었다. H5N1이었다. 믿기 힘들어 표본이 오염됐는지 수차례 확인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물새가 다시 사촌(닭)과 깊은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인간과도 아주 나쁜 방향으로 관계를 트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97년은 H5N1이 불가능해 보였던 종 도약에 성공한 해로 공인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전염병 발병을 국가 기밀로 분류하곤 하는 중국에서 이미 오래전에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의심한다.

조류독감을 둘러싼 논쟁은 기후변화를 둘러싼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거대 자본과 그 자본의 영향력 아래 있던 정치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기후변화가 인간의 작품이 아닐 수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위한 국제 공조 노력에 반대했다. 남극과 에베레스트, 알프스의 빙하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걸 보고 나서야 이런 억지는 힘을 잃었다. 마찬가지로 바이러스가 종간의 장벽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축산 메이저 업체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초대형 공장형 닭 사육 시설이 인간을 멸종으로 몰아넣을 바이러스를 배양하는 훌륭한 실험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 1997년을 계기로 바이러스 대유행 회의론도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매년 각국이 연례행사처럼 닭을 학살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해결책은 ‘무자비한 격리’라는 아주 오래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인간에게 침투한 H5N1이 다른 인간의 유전자와 재배열하려 한 흔적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제488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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