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 정부는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해결하자는 합의를 했다. 당일 오후 텔레비전으로 기자회견을 지켜본 피해 생존자들은 당사자인 자신들과 상의는커녕 사전 연락도 없었던 합의에 분노했다. 일본의 ‘위안부’ 문제 관계자들은 바로 이 합의에 대한 견해를 내놓았지만 고심도 적지 않았다. 회담에서 ‘도의적’이라는 수식어 없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사죄(한국 정부는 사죄라고 표기하지만, 일본 외무성은 사과에 가까운 ‘お詫び·오와비’로 표기)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표현 때문이었다. 피해자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어느 정도 “해결”되기를 염원해온 이들에게 정부의 책임 인정과 총리의 사죄와 반성은 25년 이상 요구해온 일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합의를 무색하게 하는 언행을 시작했다. 2015년 12월28일 오후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은 일본 정부가 일괄 출연하기로 한 10억 엔은 “배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한국이 ‘위안부’ 자료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위안부’ 제도의 실태를 후세에 전하는 “책임”은 ‘합의’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사IN 조남진지난 12월28일, 1263번째 수요시위를 마친 참가자들이 2016년 사망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정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게다가 아베 신조 총리는 기시다 외무장관의 입을 빌려서 한 사과도 부정했다. 2016년 1월 중의원 본회의와 예산위원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아베 총리에게 본인의 입으로 직접 공개적·공식적인 사죄를 하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아베 총리는 끝까지 ‘사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후손들에게 사죄하는 숙명을 계속 지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합의는 그 결의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결단”으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에서 직접 전했다고만 답변했다.

한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아베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뜻을 재차 직접 언급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의 ‘한·일 정상 전화회담’ 페이지에는 아베 총리가 “1965년 한·일 청구권, 경제협력협정으로 (‘위안부’ 배상 문제는) 최종적 그리고 완전하게 해결되었다”라고 말한 내용을 재차 강조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 발언에는 아무 반론 없이 “최종 합의를 평가”했다고만 밝혀져 있다. 문서로 남아 있지 않은 이번 ‘합의’에 양국 정상이 어떤 말을 나누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번 합의의 중요 목적으로 한국 외교부는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명예 회복을 들었지만, 아베 총리의 목적은 자신의 후세들에게 사과할 책임을 덜어주는 것인 듯하다.

ⓒ연합뉴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는 끝까지 ‘사죄’를 하지 않았다.
어떤 행위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있는지도 모호하다. 2016년 1월15일 기시다 외무장관은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성노예라는 말은 사실에 반하는 것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라고 답변했고, 아베 총리는 1월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번 합의로 예를 들면 전쟁범죄에 해당되는 것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정부 발견 자료에 군이나 관헌에 의한 소위 강제연행을 직접 드러내는 기술은 없었다”라며 종전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유엔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언행은 일본 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외에서도 이어졌다. 일본 외무성은 2월16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이하 철폐위원회) 심의에서 강제 동원의 증거는 없고,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것은 잘못된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의 문서를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재해 적극적인 ‘광고 활동’을 하고 있다.

3월7일 열린 철폐위원회는 지난 25년간 유엔 인권기구가 일본 정부에 내린 권고 중 가장 강도 높은 내용을 발표했다. 철폐위원회는 최종 권고 발표에서 한·일 합의가 “피해자 중심의 접근 방식을 충분히 취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하며 “위안부 문제는 한·일 합의에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라고 밝혔다. 더불어 피해자나 생존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진실과 정의에 입각한 책임 있는 배상을 하고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객관적으로 가르치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했다. 그러나 이 최종 권고에 일본 정부는 반발했다.

국제기관의 이러한 권고가 처음은 아니다. 유엔 인권위원회, 자유권규약위원회, 사회권규약위원회, 고문금지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이 문제의 제대로 된 해결을 계속 요구해왔다. 이러한 권고들은 지난 25년 동안 이뤄진 조사와 토론, 연구를 통해 명백해진 사실, 즉 ‘위안부’ 문제가 전시 성폭력으로 국제법에 위반되는 중대한 인권침해이며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점,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피해 회복이 없으면 오늘날의 인권침해도 방지할 수 없다는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이 개척한 국제 인권의 지평을 반영한 결과다.

철폐위원회는 권고와 함께 일본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회피 언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가해국의 지도자가 책임을 가볍게 보고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은 피해자들에게 다시 한번 심적 치욕과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16년 8월31일 합의한 출연금 10억 엔을 송금한 이후, 일본 정부의 태도는 더욱 과감해졌다. 마치 한국 정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권리’를 손에 넣은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9월7일 라오스에서 열린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는 합의에 따라 이미 10억 엔을 거출했다”라며 “한국 정부도 ‘소녀상’ 문제를 포함해 착실하게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10월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열린 문답 과정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 편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라고 일축했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 문제로 국한하려는 일본 정부의 태도도 다시 명백히 드러났다. ‘합의’ 직후 네덜란드 피해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에 자신들에게도 동등한 사죄를 하라고 촉구했고, 타이완은 외교부가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식민지였던 조선·타이완 이외에도 중국·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 반도·인도네시아 등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역의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했지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과의 합의 타결 이후 다른 국가와 다시 ‘위안부’ 문제를 협의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로 모든 걸 종식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필리핀·동티모르·한국의 피해자와 10개국의 활동가들은 한·일 ‘합의’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11월 초 일본에서 첫 공개 증언을 한 인도네시아의 틴다 렌게 피해자는 일본 정부에 공식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70년이 지나서야 침묵을 깨고 피해를 고발하는 생존자들이 아직 있다. 피해의 정도를 떠나 모든 피해자들에게 동일한 배상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국적에 따라 다른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 ‘합의’ 이후 일본 정부는 합의 이행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폄하하고 책임을 회피하는데, 한국 정부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 이러한 무책임한 태도가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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