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일반인들에게 과학 이야기를 할 때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지만 그중 요즘 내 머릿속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 단어가 ‘동시대성’이다. 현대 과학의 수많은 성과들을 어떻게 일반인들과 시차 없이 공유하고 그들이 그 아이템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도록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는 과학 이야기를 대중에게 하면 그만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현대 과학이 너무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위즈덤하우스 제공〈게놈 익스프레스〉는 현대성과 가독성을 두루 갖췄다.
결과를 현상학적으로 나열하고 설명을 한다면 그저 제품을 보여줄 뿐 그 제품의 의미나 효용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하면 과학적 원리와 그 결과가 갖는 과학적 및 역사적 의미를 장황하게 늘어놓아야 한다. 일반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미디어를 통해서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하고,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해야 한다. 이처럼 모순된 것 같은 작업을 이루어낸 책이 있다. 조진호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게놈 익스프레스〉가 바로 그런 책이다.

‘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게놈’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게놈’을 (아마도) 미국식 발음으로 ‘지놈’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게놈이든 지놈이든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논쟁이 일었다는 것 자체가 ‘게놈’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그런데 도대체 ‘게놈’이란 무엇일까.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것도 같은 알쏭달쏭한 말이다.

〈게놈 익스프레스〉는 현재 이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게놈’을 둘러싼 논쟁을 진보적으로 수행해서 이야기한다. 게놈이 단지 유전체만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과감히 보여준다. 동시대성을 만끽할 수 있는 최신 생명과학의 성과를 고스란히 이 책에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당황스러워할 독자들을 위해서 ‘왜’ 그리고 ‘어떻게’ 게놈이라는 개념과 실체가 이루어졌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가장 최신의 현상을 보여주지만 그 바탕에 깔린 과학적 논쟁과 과학사적 맥락을 균형감 있게 제공한다. 그런 줄타기를 통해 다소 낯선 현대적인 게놈 해석에 대해 조금은 위안하면서 접근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 현직 과학교사이기도 한 지은이가 자신이 몸으로 체득한 현대 생명과학의 내용을 독자 처지에서 다시 정리해서 쏟아놓기 때문에 가독성이 높다. 〈게놈 익스프레스〉는 동시대성과 현대성과 가독성을 두루 갖춘 좋은 교양과학책이다. 꼼꼼하게 정리하면서 진행하는 설명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게놈 익스프레스〉
조진호 글·그림
위즈덤하우스 펴냄
완성도 높은 과학 그래픽노블의 탄생

〈게놈 익스프레스〉의 또 다른 미덕은 역시 그 형식에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그래픽노블이다. 만화라는 형식이 갖는 장점을 바탕으로 과학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돋보인다. 과학에 대한 선입관을 갖고 있거나 과학의 문턱을 선뜻 넘어서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독자들에게 만화라는 통로는 반갑기 그지없을 것이다. 너무 엄숙하지 않은 태도로, 그리고 만화적 서사와 유머의 힘으로 망설이는 독자를 끌어들이기에 만화만큼 친숙한 매체도 없을 것이다.

이 책 못지않은 역작이었던 조진호의 전작 〈어메이징 그래비티〉(궁리 펴냄)는 마무리 부분에서 지은이의 힘이 좀 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게놈 익스프레스〉는 오히려 끝으로 갈수록 더 힘차게 뻗어가는 모습을 보여서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벌써 조진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고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기자명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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