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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무엇’을 고민한다

장일호 기자 ilhostyle@sisain.co.kr 2017년 01월 06일 금요일 제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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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 돌베개 편집주간의 지적처럼 번역 분야는 일정 정도 작업 목록이 쌓여야 추천이 가능한 영역이다. 올해의 번역자를 뽑아달라는 질문에 김명남·노승영씨가 많이 언급된 까닭이기도 했다(두 번역자는 2014년과 2015년 ‘행복한 책꽂이’에서 소개했다).

올해는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바로 홍한별씨다. 홍씨는 올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반비),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착한책가게), <반갑다! 이슬람>(서해문집)을 번역했다. 특히 주목받았던 책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였다. 한 편집자는 “저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라며 홍씨의 번역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했다는 평을 남겼다. 앞으로 함께 일하고 싶은 번역가로 홍씨를 꼽은 출판사 대표도 있었다.

번역은 저자와 ‘동일시’의 과정을 겪는 일


영문학을 전공했고, 번역을 시작한 지는 20년 가까이 되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책을 좋아했다. 물론 읽는 것보다 모으는 걸 더 좋아하는 건 ‘애서가’들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학 때는 학교 앞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외서를 검토하는 일이었는데, 종종 본격 번역을 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번역자’라는 개념이 아직 없을 때였다. 홍씨가 번역한 결과물이 대학교수의 이름을 달고 책이 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시사IN 조남진
번역가 홍한별씨는 “번역 논쟁은 인상 비평보다 구체적인 논쟁으로 진행되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다.

“안정효 선생이 번역한 <백년 동안의 고독>과 이윤기 선생이 번역한 <장미의 이름>을 읽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분들 이전의 번역이 마치 출판의 부속품 취급을 받았다면, 이분들을 보면서 번역가도 하나의 훌륭한 직업이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졸업 후에는 번역 회사에서 일했다. 프로그램 소프트웨어 같은 기술 번역을 주로 했다.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했던 출판사에서 알고 지낸 편집자로부터 출판 번역을 해보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2003년 ‘홍한별 옮김’이라는 글자를 단 첫 책 <권력과 테러>(양철북, 절판)를 시작으로 번역 일을 시작했다. 매년 서너 권씩 꾸준히 작업한 결과 현재까지 약 40권이 홍씨의 손을 거쳐갔다.

번역은 외로운 일이다. 어떤 날은 온종일 아무 말 안 하고 보냈다. 그나마 올해는 양철북출판사 2층 사무실 한쪽에 실비를 내고 책상을 얻었다. 프리랜서인 번역자는 원하는 책만 번역할 수 없다. 책을 고를 수 있는 건 ‘네임드’가 아닌 이상 힘들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홍씨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제가 번역한 책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운 좋게도 다 좋은 책이었다. ‘아, 이건 좀 창피하다’ 이런 책이 전혀 없었고(웃음).”

그래도 역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책은 올해 번역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이다. 두 달 반 만에 끝내야 하는 빠듯한 번역 일정도 한몫했지만 책의 주제가 가진 무게 탓에 무엇보다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갑자기 멀쩡히 학교에 가 있는 아이들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서 원고를 보다 말고 허둥지둥 하굣길로 달려가기도 했다. 꿈에서 아들과 폭력적인 싸움을 벌였던 밤에는 이 작업을 계속해도 되는 걸까 회의하기도 했다.

“번역이 어느 정도는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 작가의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무슨 심리로 이 글을 썼을까? 이 말은 무슨 뜻으로 하는 걸까? 그런 ‘동일시’ 과정을 겪는데, 이 책은 굉장히 독특했다. 저자와 동일시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나는 이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피폐해지더라. 부모라면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을 건드리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번역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저자와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부모 되기란 누구에게나 행복한 형벌이다. 불행과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넓힐수록 아이들의 삶이 안전해진다고 믿게 되었다. 독자들의 성숙한 반응도 홍씨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세월호 참사처럼 많은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는 슬픈 일을 경험했기 때문일까. 책이 보여준 일상의 불안에 많은 이들이 함께 공명했다.

보통 ‘일’이라는 건 하면 할수록 손에 붙고 그만큼 속도도 빨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홍씨는 번역은 하면 할수록 손이 느려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기준이 엄격해지기도 하고, 독자들이 보여주는 번역 비평에도 신경을 쓴다. ‘번역이 별로다’는 식의 말보다는 구체적인 논쟁이 더 낫다. 다만 번역 관련 논쟁이 언제나 오역 논쟁으로 불거지는 부분은 안타깝다. 맨부커 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도 국내에서 같은 논쟁에 휘말렸다. 원문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분위기 탓에 논쟁은 언제나 제자리다.

“물론 저는 번역자의 문체와 개성이 두드러지는 번역보다는 투명한 번역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번역자들이 오역 문제에만 매달리다가 대체 불가능한 번역자만의 능력과 기술을 인정받지 못하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과 위기감이 있다. 번역하다 보면 때때로 국내 상황 등을 고려해 ‘의도적 오역’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오역이 하나도 없다는 건 그만큼 독자들에게 불친절한 번역이 되기도 한다. 출판 번역이 자기 자리를 확보하려면 번역자의 개성과 창조적 역량을 좀 더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판에서 번역은 ‘대체 가능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공공연하게 “번역 에이전시에 일을 맡기면 비용도 적게 들고, 따로 계약 절차도 필요 없고, 시간도 적게 든다”라고 말하는 출판인도 있는 게 현실이다. 기계 번역의 품질도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홍씨의 말마따나 “번역가의 존재가 투명하다 못해 없어질 지경”으로 몰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할 뿐이다. 홍씨가 번역만큼이나 좋아하는 일은 미스터리 소설 읽기다.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2011, 강)을 번역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역시 애거사 크리스티. 격월간지 <미스테리아>의 고정 꼭지 ‘미러’의 필진으로도 참여한다. 허구 속 인물과 사건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이야기를 살펴보는 코너다. MBC 예능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의 책 버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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