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14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수상한 깃발 하나가 휘날렸다. 검은 장수풍뎅이의 몸통 아래 궁서체로 단체 이름을 새긴 이 깃발은 예고도 없이 광장에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누리꾼들에게 영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민주묘총, 전견련, 국경없는어항회, 범야옹연대, 국제햄네스티, 얼룩말연구회, 한국고산지발기부전연구회…. 장수풍뎅이연구회를 벤치마킹한 패러디 단체명이 인터넷에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이 말장난을 퍼 나르며 함께 웃었다.

트친(트위터 친구)들과 이를 리트윗하며 낄낄대던 대학생이자 자칭 트잉여(트위터에서 한가로이 노는 사람)인 이동주씨(19·오른쪽 사진 앞줄 가운데)도 마침 할 일이 없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딱히 공부가 되지 않던 참이었다. ‘민주묘총? 재미있네. 로고 디자인이나 한번 만들어볼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세 사람의 얼굴 윤곽을 겹쳐놓은 민주노총 로고 디자인을 살펴본 뒤, 이미지 제작 프로그램 ‘일러스트레이터’를 열었다. 고양이 얼굴 세 개를 겹치고 ‘민주노총’과 비슷한 폰트를 찾아 ‘민주묘총’을 입력했다. 내친김에 전견련 로고 디자인까지, 30분 만에 완성했다. 트위터에 올렸더니 반응이 좋았다. 널리 퍼진 민주묘총 로고는 방송 뉴스에도 나왔다.

ⓒ시사IN 이명익
그러던 어느 날 한 트친이 말했다. “우리 이거 진짜 만들어서 나가볼까?” 트친이 민주묘총 도안을 들고 서울 을지로 현수막 프린트 업체에 갔다. 사장이 추천하는, 깃대가 긴 프리미엄 깃발은 11만원. 또래 트친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는 부족했다. 1.8m 길이의 깃대가 포함된 3만5000원짜리 ‘베이직 상품’을 골라, 11월19일 제4차 촛불집회 때 거리로 나섰다. 난생처음 깃발을 들고 나선 집회였다. 쭈뼛쭈뼛 깃발을 들고 걷는 이씨와 친구들을 보고 지나던 촛불 시민들은 “우와, 민주묘총이다!”라며 반겼다. 원조 민주노총 깃발을 든 아저씨도 “묘총 파이팅!”이라며 웃었다.

이후 매주 촛불집회가 벌어지면서 이씨와 친구들은 스스로 ‘전문 시위꾼’으로 거듭났다고 말한다. 그냥 소리 지르니 목이 아파서 메가폰을 마련하고 가방에는 핫팩을 든든히 챙겼다. 충무로에서 새로 구입한 5만5000원짜리 5m 깃대를 민주묘총 깃발에 장착한 12월17일 제8차 촛불집회 때는 여러 깃발 ‘동지’들을 만났다. 전고조(전국고양이조합) 깃발을 발견하고 달려간 곳에는 말로만 듣던 장수풍뎅이연구회, 얼룩말연구회, 범야옹연대, 하야츄 등 패러디 깃발 12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반갑다며 인사를 나눈 뒤 신나게 구호를 외치며 함께 행진했다. 바야흐로 ‘아무 깃발 대잔치’ 절정의 순간이었다.

광장에 펼쳐진 ‘아무 깃발 대잔치’

장수풍뎅이연구회가 곤충과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민주묘총 역시 고양이와 하등 관련이 없다. 전견련도, 햄네스티도, 얼룩말연구회도, 뒤이어 나타난 보노보노 캐릭터나 ‘으어~’라는 글씨가 그려진 깃발도 마찬가지다. 의미 없는 이 ‘아무’ 깃발을 굳이 설명하자면 ‘패시브 효과(적들의 혼란)’를 노리는 ‘부유하는 기표(장수풍뎅이연구회 트윗에서 인용)’이다. 의미 없는 깃발 아래 선 사람들은 그러나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집회에 나섰다. 민주묘총 깃발을 든 이씨에게 ‘왜’를 물었더니 얼굴에 웃음기를 거두고 대답했다. “세월호요.”

2014년 4월16일, 이씨는 그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 오전 영어 수업 시간 직전이었다. 책상 속에 몰래 넣어둔 스마트폰으로 포털에 접속했다.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한 척이 침몰 중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 배에 타고 있었다는 소식도 봤다. 동갑내기들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스마트폰을 켰다. 점심을 먹고, 오후 수업이 지나고,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될 때까지 구조자는 늘지 않았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내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날 함께 슬퍼한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점차 변해가는 걸 보며 남은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정부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을 방해하고 일베 회원들은 곡기를 끊은 유가족 앞에서 햄버거를 먹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바쁜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 생활 중에도 가끔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천막을 찾았다. 그때 얻은 노란 리본을 지금도 가방에 달고 다닌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이씨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뭐 그만할 때도 안 됐어?” 그때 이씨는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또 한 해가 지나 대학생이 된 해 겨울 이씨는 다시 광화문광장을 찾아 목이 터져라 외쳤다. “세월호를 기억하라!” “7시간 밝혀내라!”

12월17일 이씨는 민주묘총 깃발을 들고 시민들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여전히 대통령은 답이 없다”라는 세월호 유가족의 말에, 웃기는 깃발을 들고 선 이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짓던 한 세월호 유가족은 이씨와 친구들이 든 깃발을 보고 웃으며 핫팩을 건넸다.  

이 겨울 광화문은 희로애락의 광장이다. 시민들은 ‘아무’ 깃발의 기발한 문구에 웃음을 터뜨리고, 무대 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기도 하고,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화도 내보다가, 별이 된 아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거리의 시민들은 웃음과 눈물, 그리고 온기를 나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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