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열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3차 청문회’는 ‘세월호 7시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였다. 이날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현 주중 대사)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10시 최초 서면보고를 포함해, 대통령에게 서면과 유선으로 수차례 보고했다고 주장하는 당사자 중 한 명이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의 증언은 청와대의 보고 체계가 근본부터 무너져 있음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김 전 실장은 최초 보고 당시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시사IN 이명익12월14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맨 오른쪽)이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서 특위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용주 의원:서면보고를 관저하고 집무실 두 군데 보낸 게 맞습니까?

김장수 전 실장:제 기억에 그렇습니다. 제 보좌관중에 육군 중령이 있습니다. 그 보좌관이 직접 집무실하고 관저에 보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용주 의원:당시에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는지 관저에 있는지 여부도 확인이 안 됐죠?

김장수 전 실장:저는 확인을 하지도 않았고 관저 아니면 거기(집무실)에 계실 것이라고 추정을 했습니다.

김 전 실장은 평소에도 서면보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통령님이 어디 계신지 잘 모를 때는 관저하고 집무실하고 같이 보냈다”라고 증언했다. 참사 당일 외에도 소재를 모른 채 보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의 보좌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본관 집무실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에게, 관저는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최초 서면보고를 전달했으며, “‘(본관) 집무실에는 안 계신 것 같다’는 말을 보좌관으로부터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김 전 실장이 증언한 서면보고 방식은 믿기 힘들 만큼 원시적이었다.

정유섭 의원:서면보고는 어떻게 합니까? 중령이 가지고 뛰어갑니까, 아니면 팩스로 보냅니까?

김장수 전 실장:자전거를 타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냥 뛰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렇습니다.

국가안보실장이 있는 비서동에서 본관 집무실이나 관저까지의 거리는 약 500m로 도보로는 5~10분 걸린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 중간 쉬는 시간에 〈시사IN〉과 만나 “차로 가기도 한다”라며 한 가지 방식을 더 추가했다. 그러나 팩스나 ‘위민’(청와대 내 온라인 업무보고 시스템), 이메일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대면보고를 하지 않은 이유는 “정신이 없어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대통령이 분초를 다투는 상황실을 일부러 고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청문회에서 김 전 실장은 서면보고를 대통령이 받았는지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10시15분에 서면보고를 보고 대통령이 전화했기 때문에 서면은 보고된 것으로 확신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최초 서면보고 15분 뒤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게 했다는 전화를 포함해 참사 당일 서면·유선보고가 실제로 있었는지,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 입증할 증거는 없다. 청와대는 유선보고는 기록이 없고, 서면은 공개하면 업무에 지장이 초래돼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날 내내 김 전 실장은 청와대가 홈페이지에 올린 ‘이것이 팩트다’에 의존해 답변했다. 대통령과 통화했다면 통화기록을 제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김 전 실장은 “저는 전화기를 안 가지고 있고 청와대에서 안보실장 전화를 갖고 있는지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청문회 2주 전 자신이 했던 말도 뒤집었다. 지난 11월28일 현 주중 대사인 김 전 실장은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정례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이 통화 중에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는 말씀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어제(12월13일) 와가지고 청와대에 한번 물어봤는데 워딩이 없다고 한다. 아마 ‘샅샅이 뒤져서 철저히 구조하라’ 그 말에 제가 착각을 한 것인지, 아니면 말씀이 있는데 워딩이 안 된 것인지 그걸 제가 지금 확답을 확정을 못하고 있다”라고 말을 바꿨다. 발언 중 ‘청와대에 물어봤다’는 대목 때문에 청문회 출석 전 청와대와 말을 맞췄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청와대 ‘이것이 팩트다’에 맞춰서 답변

결과적으로 김 전 실장의 증언은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관한 의혹을 더 키웠다. 김 전 실장은 “10시15분 유선전화가 왔을 때 ‘YTN 중계되고 있으니 같이 보면서 상황 판단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라고 말해, 대통령이 세월호가 거의 침몰해가던 10시15분까지도 침몰 상황을 보지 않고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미 청와대 수석급 참모진에 문자로 상황 전파가 된 9시24분으로부터도 51분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 전 실장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가서 현장을 보는 게 좋겠다’고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은 오후 2시57분 단 한 번이었다. 박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보고받은 지 2시간여가 지나서야 중대본에 도착한 것이 ‘머리 손질’ 때문이었다는 최근 의혹에 대해 김 전 실장은 “(그렇게) 생각하기가 싫다. 생각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받고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와 관련해 가장 주목받은 인물 중 하나가 최순실씨 단골 성형의원인 김영재의원의 김영재 원장이다. 최순실씨는 ‘최보정’이라는 가명으로 김영재의원에서 3년간 136차례 보톡스, 필러 등 시술을 받았다. 진료기록부에 적힌 최보정의 생일은 박 대통령의 생일인 2월2일(생년은 최순실씨 것이다)이어서 대리 진료 의혹도 제기됐다.

김 원장은 자신이 청와대 관저에 2014년 2월을 시작으로 다섯 번 전후로 갔다고 청문회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그간 김 원장 측은 “박근혜 대통령을 진료한 적은 없다”라고 〈시사IN〉 등 언론에 해명해왔는데 이를 뒤집었다. 자문의 등으로 위촉된 바 없는 김 원장은 관저 입구에서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고 통과하는 이른바 ‘보안손님’ 방식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김 원장은 피부과 전문의가 아니면서도 대통령의 흉터 부위 경련, (자신의 가족회사 화장품과 관련된) 피부 트러블 등을 봐주러 들어갔으며 매번 아내와 동행했다고 했다. 아내 박채윤씨는 각종 특혜 의혹의 중심에 있는 의료기기 회사 와이제이콥스메디컬 대표다. 다만 김 원장은 단골 고객인 최순실씨가 대통령과 가깝다는 건 몰랐고, 박 대통령에게 필러 등 시술을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김 원장의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사실을 그간 숨겨왔기 때문이다. 당초 ‘참사 당일(2014년 4월16일)인 수요일은 휴진이어서 골프를 치러 갔다’고 해명했다가, 프로포폴 처방 기록이 드러나자 “오전 9시께 장모에게 시술을 했다”라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여기에 골프를 쳤다며 제시한 통행료 왕복 증빙 영수증, 하이패스 영수증 등을 위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골프장 갈 때 하이패스로 낸 통행료 영수증은 7600원이고, 서울로 돌아올 때 현금으로 낸 통행료 영수증은 6600원짜리였다.

 

 

 

 

ⓒ연합뉴스12월16일 특위 소속 의원들이 최순실씨의 단골이었던 김영재의원에서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박영선 의원:(하이패스 영수증이) 둘 중에 하나가 가짜인데요, 그 당시엔 7600원이 맞았대요. 그런데 2015년 9월1일부터인지 6600원으로 요금이 내렸다더라고요. 이 영수증은 2014년 4월16일 것 아니에요?

김영재 원장:그건 끊어준 데다 물어보면… 저희는 잘 모르고. (중략) 확인했는데 톨게이트에서 국회실에 지금 가격으로 보내줬다고.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12월16일 김영재의원을 현장 방문한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장모 시술 기록의 김 원장 사인이 다른 날짜 시술 기록의 사인과 다른 것을 확인했다. 김영재의원 측이 해당 자료 제출을 거부하자 박영수 특검 소속 검사와 수사관이 출동하기도 했다. 김영재의원 측은 박 대통령 대리 진료를 부인하지만, 최순실씨에게 수술 시 처방했다는 프로포폴의 양이나 행방에 대한 의혹은 여전한 상태다. 김 원장은 프로포폴 관리대장을 이중으로 작성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모종의 주사를 맞았거나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3차 청문회에 출석한 신보라 전 간호장교는 자신은 주사 처치를 한 적이 없으며, 참사 당일 대통령을 보지 못했고 자신이 아는 한 진료는 없었다는 종전의 주장을 유지했다. 그녀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점심시간 전에 의료용 가글을 관저 부속실에 전달한 당사자다. ‘혹시 대통령이 그때 일어나 세수와 가글을 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신 전 장교는 “그건 추측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건넨 가글이 필러 시술 의혹과 연결되기도 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형외과 의사에 따르면 코나 입 주위에 필러를 넣었을 때는 모양이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반나절 내지 이틀 동안 칫솔질을 하지 말라고 제안한다고 한다. 그래서 의료용 가글을 쓴다고 한다”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대통령의 필러 시술 의혹은 세월호 유가족 면담을 하던 2014년 5월13일 등 일부 사진에서 박 대통령의 입가에 피멍 자국이 보인다는 의혹을 〈한국일보〉가 보도하면서 청문회에서도 제기됐다. 특히 보톡스, 필러, 페이스리프팅 등을 전문으로 하는 김영재 원장도 이 2014년 5월13일 사진을 보고 “이것은 필러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을 비롯해 청문회에 출석한 의료진 등 누구도 명시적으로 필러 등 대통령 안면 시술을 인정한 사람은 없었다. 김영재 원장 등이 거짓말을 하거나, ‘제3의 비선 의료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대통령에게 각종 주사를 처방한 김상만 전 자문의 역시 2013년 7월25일 대통령 자문의 임명장을 받기 전에도 ‘보안손님’ 형태로 관저 파우더룸에 들어가 두세 차례 태반주사를 놓았다고 증언했다. 김 전 자문의는 또 “그분 손에 쥐여줬습니다. 그 주사를 어떻게 맞아야 되는지 다 확인하고 설명 다 해드리고…”라며 각종 주사제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고 밝혔다. 주사제를 놔줄 수 있는 사람이 조여옥 전 간호장교나 신보라 전 간호장교냐는 물음에는 “그렇게 알고 있다”라고만 말했다. 대통령에게 주사 처치를 한 적 있다고 말한 조여옥 전 청와대 간호장교는 미국 연수를 이유로 12월22일 5차 청문회에 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명 전혜원·신한슬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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