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만들면서도, 쉽지 않은 요리가 몇 가지 있다. 라면과 달걀 요리다. 누가,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라면과 달걀은 그 자체로 서로 어울리기도 한다. 달걀의 풍미가 밀가루 냄새를 없애거니와 노른자가 라면에서 나온 기름을 물과 결합시켜 국물이 깔끔해진다.

나만의 라면 끓이기 방법이 있다. 나는 면이 좀 꼬들꼬들하다 싶을 때 달걀 하나를 넣고 불을 끈다. 그런 후 뚜껑을 닫고 1분 정도 뜸을 들인다. 밥도 아닌 라면에 무슨 뜸을 들이느냐고 할 수 있다. 한번 해보시라. 어떤 브랜드의 라면도 다 먹을 때까지 면이 불지 않은 상태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냄비에 남아 있는 잔열로 반쯤 익힌 반숙 달걀은 덤이다. 반숙 노른자와 라면 국물의 궁합이 그만이다.

요리사 박찬일은 달걀 요리가 100가지도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건 프라이, 말이, 찜 정도다. 윤희는 달걀찜을 가장 좋아한다. 그다음으로 달걀 프라이, 달걀말이 순이다. 달걀말이나 오믈렛을 해주면 “찜은?” 하며 입을 삐죽거린다.

달걀찜의 첫 번째 관건은 달걀노른자와 흰자를 섞는 일이다. 보통은 휘핑기를 사용해 섞는다. 휘핑기가 없을 때는 젓가락 두 개로 하기도 하는데 잘 안 섞인다. 그럴 때는 왼손으로 젓가락을 세워놓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휘저으면 휘핑기로 하는 것만큼 잘 섞인다.

ⓒ김진영 제공

한 번은 더 맛있게 한다고 체에 달걀을 걸러 찜기에다 쪄준 적이 있다. 부들부들한 것이 내가 봐도 일식집의 달걀찜 못지않았다. 찜 상태가 좋으니 윤희가 잘 먹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윤희는 한 입 맛보고는 다른 반찬에만 젓가락을 댔다. “왜 안 먹어?” “부들부들해서 낯설어. 전에 만들어준 달걀찜이 더 좋아.”

윤희가 찾는 것은 옛날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셨던 그것이었다. 달걀과 물, 그리고 소금(가끔 새우젓을 다져서 넣는다. 윤희가 새우를 안 먹기 때문에 잘 다져야 한다)을 넣고 뚝배기에서 직화로 굽듯이 찐 것 말이다. “그게 더 좋아?” “응, 이번에 만든 건 푸딩 느낌이어서 반찬 같지 않아. 구수한 맛도 없어.”

직화 달걀찜은 불 조절이 관건이다. 뚝배기가 열을 받을 때까지는 중불, 뚝배기 주변부가 익기 시작하면 불을 최대한 약하게 하고 뚜껑을 덮는다. 뚜껑에서 김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면 윤희가 말하는 구수한 냄새가 주방에 퍼진다. 그때 불을 끈다. 바닥에 누룽지처럼 달걀이 붙어 있어서 긁어 먹는 맛이 좋다. 가끔 명란을 바닥에 깔고 누룽지처럼 만들기도 한다. 새우젓을 넣는다는 건 이야기했지만, 명란은 아직 비밀이다. 바닥에 깔린 명란을 밥에 비벼먹으면 알밥 먹듯 톡톡 터진다. 윤희는 그게 명란인 줄 모른다. 알면 안 된다.

놓아기른 닭이 낳은 토종란으로

집에서 먹는 달걀은 토종란이다. 다른 달걀에 비해 두세 배가량 비싸다. 일반 닭보다 알도 적게 낳거니와 햇빛과 공기가 자유롭게 드나드는 방사 공간에 키워 비싸다. 보통 닭은 이른바 ‘무창계사’ 즉 창이 없는 어둡고 탁한 닭장에서 달걀만 낳는다. ‘저비용 고효율’이란 경제 논리의 결정판이다.

이 비좁은 아파트식 케이지에서 닭의 생명력은 바닥이다. 면역 대책은 항생제가 유일하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폐사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올해는 어수선한 시국까지 겹쳐 가축 농가는 시름이 더욱 깊을 것이다. 촛불 들었던 마음으로 달걀 하나, 닭 한 마리 더 사먹는다.

윤희가 고열이라 학교를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어서 한시름 놨다. 고열로 입맛을 잃은 윤희를 위해 내일 아침엔 달걀찜을 해야겠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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