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18일 프랑스 북부 도시 생드니의 한 아파트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경찰은 그곳에서 시신 2구를 발견했는데 그중에서 온몸에 총알이 박힌 남자의 시신을 주목했다. 그는 최악의 파리 연쇄 테러를 일으킨 IS(이슬람국가) 총책 압델하미드 아바우드(27)였다.  헤인스 벨기에 법무장관은 아바우드에 대해 조직망을 중심에서 총괄하는 ‘거미’라고 표현했다.

모로코계 벨기에인인 아바우드는 2014년 시리아로 건너가 IS에 합류했다. IS가 제공한 군사훈련을 마친 그가 테러 혐의로 수배된 것은 한 영상 때문이다. 아바우드는 이 영상에서 시신 여러 구를 차량에 매달아 끌고 다녔다. 이 영상이 공개되자 벨기에 당국은 아바우드가 자국민임을 확인했다. 아바우드는 수배 도중 유럽 정보 당국에 들키지 않고 유럽을 들락날락했다. 위조 여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당국은 아바우드가 국내로 들어온 사실을 파리 테러가 발생하고 나서야 알았다.

ⓒAP Photo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의 IS 총책으로 알려진 압델하미드 아바우드.
유럽에서 시리아로 간 IS 대원의 신원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가족이나 지인이 신고하지 않는 한 정부가 알기 어렵다. 시리아로 가기 전 여러 나라를 거치거나 터키에서 육로로만 이동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 시리아 국경은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다. 문제가 되면 터키 여행을 했다고 우기면 그만이다. 아바우드처럼 영상에 나와서 빼도 박도 못하고 수배당한 경우에만 위조 여권을 사용해 유럽으로 와야 한다. 터키에 머문 기록밖에 없는 IS 대원은 자기 여권을 들고 당당히 유럽 땅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9·11 테러를 겪은 미국과 달리 유럽은 그동안 테러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2014년 5월 벨기에 브뤼셀 유대인 박물관에서 프랑스 출신의 메디 네무슈가 총기를 난사한 뒤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당시 벨기에 수사 당국은 테러를 벌이기 한 달 전 네무슈가 파리 연쇄 테러의 IS 총책 압델하미드 아바우드와 24분간 통화한 기록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사건 담당 검사는 “네무슈는 혼자 테러를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라며 IS와의 연관성을 살펴보지 않았다. 만약 그때 제대로 수사했다면 파리 테러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 당국은 파리 테러 때 최다 희생자가 나온 바타클랑 극장 밖에 버려진 휴대전화에서 아바우드 관련 단서를 입수했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경찰 관계자는 이 휴대전화에 테러범들이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문자 메시지와 검거작전 중 자폭한 아바우드의 사촌 아스나 아이트불라센(26)의 연락처가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결국 그녀의 근거지를 탐문해 아바우드의 위치를 파악했던 것이다. 만약 그때 휴대전화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바우드는 지금도 유럽 어딘가에서 새로운 테러를 기획하고 있을지 모른다.

ⓒEPA지난 7월18일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통근열차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인 17세 소년이 도끼를 휘둘러 승객 5명이 다쳤다.
아바우드는 독실한 이슬람교도 같지도 않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테러 다음 날 아바우드로 보이는 인물이 생드니의 아파트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웃 주민의 증언을 실었다. 최근 폭로된 IS의 내부 문건도 IS 대원들이 얼마나 이슬람에 무지한지 잘 보여준다. 2016년 8월 시리아 뉴스 사이트 〈자만 알와슬〉은 IS 입대 문서 4000여 건을 공개했다. 이 문서에는 2013∼2014년에 가담한 신병의 신상이 명시되어 있다. IS 대원들의 70%는 자신의 샤리아(이슬람 원리주의 율법) 지식수준이 초급이라고 밝혔다. 고급 수준이라고 밝힌 사람은 5%에 불과했다. 쿠란을 암송할 수 있다고 밝힌 사람은 5명뿐이었다. 2014년 테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영국 버밍엄 출신의 모하메드 아흐메드(22)와 유서프 샤르바르(22)는 시리아로 떠나기 전 아마존에서 〈완전 초보를 위한 쿠란〉 〈완전 초보를 위한 이슬람〉이라는 책을 샀다. 이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보다는 테러에 더 끌린 것이다. IS 대원이 되기 위해 시리아로 갔다가 기소된 한 유럽 남성(32)은 “나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싸우는 반군을 돕는 줄 알았다”라고 재판 중에 밝히기도 했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패트릭 스키너는 서방 출신 IS 대원 대부분이 소속감이나 악명, 흥분을 즐기려고 IS에 가담한다고 말했다.

19세 소년 두 명이 80대 신부를 참수

2014년 중반까지만 해도 유럽 수사 당국은 테러가 정신질환과 같은 개인적 문제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오판이 유럽에 테러를 깃들게 했다. 수사 당국의 생각이 틀렸음이 밝혀진 것은 2014년 6월, 유럽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계획했던 프랑스 국적의 파이즈 부슈란이 체포되면서부터다. 당시 부슈란은 자신에게 테러를 지시한 사람이 IS의 대변인인 아부무함마드 아드나니라고 자백했다. IS가 유럽에 테러 지시를 내린 사실이 최초로 밝혀진 것이다. 반테러리즘 전문가인 마이클 스미스 씨는 “그동안 여러 징조가 있었지만 2014년 중반까지 유럽 수사 당국은 테러와 IS 간의 연관 관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각국 수사기관이 모두 방심한 사이에 유럽에는 IS 테러 기운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AP Photo지난 10월19일 IS로부터 모술을 탈환하기 위해 진군하고 있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원들.
최근 유럽에서는 IS를 추종하는 10대 테러가 잇따랐다. 지난 7월에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한 통근열차에서 도끼를 휘둘러 5명에게 부상을 입힌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의 17세 소년이 잡혔다. 소년은 당초 IS로부터 차량을 몰고 군중 속으로 돌격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운전면허증이 없던 소년이 택한 무기는 도끼였다. 같은 달에 프랑스 북서부 생테티엔의 성당에서 80대 신부를 참수해 프랑스 국민을 놀라게 한 범인 역시 두 명의 19세 소년이다. 10대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능해 IS의 표적이 되기 쉽다.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부모와 사이가 벌어진 사춘기 아이들에게 IS는 위험한 친구이다.

10대는 어려서부터 〈배트맨〉이나 〈스파이더맨〉 혹은 닌자 영화의 복면을 쓴 주인공을 영웅으로 생각해왔다. 지난해 1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범인들은 모두 검은색 복면을 했으며 검은색 복장과 차량을 이용했다. 보통 범죄자들은 도주한 뒤에 얼굴과 신원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가면을 쓰지만 이들은 달랐다. 대형 테러를 저지르면서 달아날 생각이 없는데도 굳이 복면을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멋있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16세 소녀가 IS 선전용 채팅방 관리자

시리아에 한 번도 가지 않은 평범한 유럽인이 IS에 포섭되는 경우도 생겼다. 2016년 8월에는 파리에 거주하는 16세 소녀가 IS를 추종해 모바일 메신저로 테러를 선동한 혐의(테러 예비 행위)로 기소되었다. 미성년이어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 소녀는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 개설된 IS 선전용 채팅방 관리자로 활동했다. 유럽 토박이인 소녀가 이런 중책을 맡았다는 데 프랑스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IS는 초기에 정기간행물 발행과 육성 녹음 공개 중심의 선전전을 폈으나 이제는 SNS를 통한 글과 사진, 동영상의 전송에 집중한다. IS의 대표 선전 매체는 ‘아마크 뉴스통신’이다. 이 통신은 지난 7월 84명이 숨진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 사건을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영문 잡지 〈다비크〉, 공식 라디오 ‘알바얀’의 영향력도 무시하지 못 한다. IS는 꾸준히 테러 방법을 전파하고 대원을 모집하면서 유럽에 공포를 퍼뜨린다. 딕 쇼프 네덜란드 대테러조정관은 IS가 유럽을 공격하기 위해 이미 조직원 60~80명을 유럽에 심었다고 밝혔다. 그는 IS가 ‘이슬람 전사 지망자들은 시리아나 이라크로 오지 말고 유럽에서 공격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쇼프 조정관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벌이는 IS 격퇴전이 IS 조직원과 지지자들을 흩어놓아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의 안보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젊은이 294명이 IS 대원이 되기 위해 이라크와 시리아로 갔다. 이들 중 190명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거나 위조 여권으로 인해 귀국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IS 대원(800여 명)을 배출한 프랑스 역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S 코스프레’는 최근 새롭게 나타난 테러 경향이다. 지난 6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총격 사건이 그것이다. 한 게이 나이트클럽에서 오마르 마틴(29)이 총기를 난사해 약 20명이 숨지고 42명이 다쳤다. 범인은 IS의 테러에서 영감을 얻은 자생 극단주의자였다. 이런 경우는 적발하거나 예방하기가 더욱 어렵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대니얼 바이먼 연구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올랜도 공격을 저지른 오마르 마틴을 ‘외로운 늑대’라고 규정했다. 그는 “개인이 가진 동기가 ‘IS 브랜드’와 융합한 것으로 보인다”라고도 말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앤서니 코즈먼 연구원도 IS와 외로운 늑대가 어떻게 서로 만나지 않고도 접점을 만드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0월부터 벌어진 이라크 정부의 ‘모술 탈환전’은 유럽 각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만약 모술에 있던 IS 대원들이 이라크 난민을 따라 유럽으로 들어온다면 이들이 유럽 곳곳에서 테러를 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줄리언 킹 유럽연합(EU) 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독일 일간 〈디벨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이라크와 시리아 등 분쟁지역에 남아서 활동하는 유럽 출신 IS 대원을 약 2500명으로 추정했다. 익명의 프랑스 보안 당국 소식통은 “연합군이 IS 대원을 모술에 몰아넣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IS 주둔지에 공습을 퍼붓고, IS 지도부를 사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지만, IS 대원들이 번지는 풍선효과를 일으키고 말았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IS 관련 2017년 예산을 올해보다 50% 증액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폭격만으로 IS를 이길 수는 없다.

IS형 테러는 전 세계 어디서나 맞닥뜨릴 수 있는 공포가 되었다. 한번 테러로 최대한 많은 살상을 할 수 있는 곳, 각계각층의 외국인이 모이는 곳을 IS는 좋아한다. 최근 IS가 집중적으로 노리는 곳은 ‘소프트 타깃’, 즉 민간인들이 밀집한 장소이다. 무고한 민간인을 무차별 묻지마 식으로 공격한다. 이제 전 세계에 테러 안전지대는 없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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