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6월18일 방북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과 함께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북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태도에는 초지일관한 흐름이 있다. 갑·을 관계의 확립, 즉 아쉬운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무릎 꿇고 오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오락가락한 경향이 없지는 않다. 정권 지지율에 따라 좀더 온건한 화법이 동원될 때도 있었고, 부처별로 시각 차이가 있기도 하다. 대체로 통일부·국정원, 그리고 외교통상부 일부 세력이 온건파로 분류된다. 외통부의 또 다른 세력과 청와대는 강경파이다. 대통령이 정부 부처와 회의하고 난 직후에는 온건론이었다가, 돌아서면 강경론이어서 헷갈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어쨌거나,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청와대가 강경론이면, 그것이 정부 시각을 대변한다고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강경론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가능할까. 지난 5월의 상황을 되짚어보면, 현 국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당시에도 정부의 대북 기조는 바로 ‘북한이 무릎 꿇고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청와대의 일부 당국자가 “곧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희망을 피력하고 다녔다는 얘기도 들렸다.

당시의 판단 근거는 북한의 식량난이었다. 식량 대란에 휩싸인 북한, 상식적으로는 굶어죽지 않으려면 남쪽에 손을 벌려야 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당시에는 5월이 대망의 시기였다면 지금은 9월로 바뀌었을 뿐이다. “9월이 되면 북한이 무릎 꿇고 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라는 얘기가 다시 떠돌기 시작했다. 그때는 식량난이었다면 지금은 ‘외교적 봉쇄’ 쯤이 될 것 같다. 우리가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총력을 기울여 막음으로써 북·미 관계 진전을 차단하면, 결국은 북한이 우리한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다. 8월11일 테러지원국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북한이 미·중을 상대로 펼쳐왔던 등거리 외교가 벽에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올림픽 이후 중국이 대대적으로 대북 압박에 나설 텐데, 북한이 대미 관계라는 지렛대를 갖지 못할 경우, 외통수에 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냉전 시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최근 북한이 남쪽에 대해 일부 유화 제스처를 보였던 것도 바로 이런 점을 의식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얼마 전 동해에서 발생한 선박 충돌 사건에 대해 북한이 이례적일 만큼 신속하게 처리해줬는데, 주변국과의 교섭에 앞서 남북 관계라는 지렛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런 이유로 일부 유화 제스처를 폈다고 해서, 그것이 백기 투항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기대하는 것은 비약이 될 공산이 높다. 그럴 가능성을 두고 내기를 하자면, 승률 4분의 1 이하의 도박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이 미국·중국·일본과 벌이고 있는 밀고 당기기 과정을 냉정히 분석해보면, 여전히 북한의 선택에 따라서 상황이 반전될 여지가 많다. 이들과의 관계가 지금 뻑뻑한 것은, 북한이 나름의 고집과 자존심을 꺾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선의 상황은 남북 대화를 복원해 대외 교섭력을 높이는 것일 테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얼마든지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다. 미·중·일 3국 중 한 곳을 택해 교섭의 문턱을 낮춤으로써 돌파구를 열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또다시 정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다. 지금 한반도 무대 위에는 남한과 북한만 있는 것이 아니건만, 우리 사회 집권 세력은 여전히 냉전 시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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