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재단지난 7월 부천에서 열린 ‘책 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에 참여한 파키스탄 출신 샤니 씨가 자국어로 편지를 쓰는 모습.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몽골인 부부가 있었다. 어느 날 부인이 월급이 잘못 계산된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술 취한 한국인 사업주로부터 얻어맞았다. 두 사람은 사업주에게 항의하다가 함께 해고당했다.

공장 기숙사에서 쫓겨난 두 사람은 모텔 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이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잘못 계산된 월급과 퇴직금 등 법적으로 보장된 임금을 받기까지는 한 달이 넘게 걸렸다. 그것은 이 부부가 쓰지 않아도 될 돈을 써야 하는 시간이었고, 남편에게는 술 권하는 시간이었다. 
몇 달 뒤, 남편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개최한 몽골인 독후감 대회에 참여했다.

어려서부터 갖은 고생을 겪은 한 몽골 여성이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 꿈을 이룬다는 내용의 몽골 책을 읽고 몽골어로 독후감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사람이 책을 읽고 소감을 쓰는 것이 쉽지는 않아 10명만이 참여했는데, 그의 글이 1등으로 뽑혔다. 남편에게 1등상을 안겨준 그 몽골어 책은, 지난해 아름다운 재단에서 ‘책 날개를 단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캠페인 때 몽골에서 건너온 것이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는 최소한 3년간 체류한다(현재 노동부가 추진 중인 고용허가제 개선안에 따르면 앞으로는 5년이 된다). 짧지 않은 기간 이들은 본국에서 해보지 않았던 노동에 적응하랴, 낯설고 물선 환경에 적응하랴,  그야말로 힘겨운 학습거리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해질 때가 있다. 뭔가 문제가 생겨서, 혹은 우연히 들른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자국어로 쓰인 책을 발견했을 때다. 비록 그 책이 아무런 재미없이 단순 정보만을 제공한다 해도 그렇다. 이주노동자의 자국어 책에 대한 관심은 생각보다 매우 뜨겁다. 장르에 대한 욕구도 다양해서 문학작품은 물론 실용서에 대한 관심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자국어로 된 책을 접할 여건은 아주 열악하다. 그렇다고 본국의 책을 일일이 구입할 형편도 못 된다. 

‘책 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 큰 도움 줘

그러자 몇몇 이주노동자 지원단체가 아예 도서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말이 도서관이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가 시설이며 보유 도서를 그럴싸하게 갖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국어 책 한 권이 아쉬운 이주노동자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우리 단체만 해도 2005년부터 도서관이랍시고 책장에 외국어 책을 채워가는데 책 구입 속도가 대출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우리 도서관의 형편이 핀 것이 바로 ‘책 날개를 단 아시아’ 캠페인 이후부터였다. 해외여행 때 구한 그 나라 책을 기증하거나, 도서구입 대금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을 통해 모인 참여자들의 정성은, 전국 열 군데 도서관에 고루고루 나뉘었다. 이 덕에 고작 400여 권이었던 우리 도서관의 장서 수도 이제 1300여 권으로 확 늘었다. 책이 많고 다양해진 덕분에 책을 대출하러 사무실을 찾아오는 이주노동자가 부쩍 늘었다. 덩달아 그들과의 교류도 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8월 말까지 진행되는 이 캠페인에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이 모이기를 바란다.

기자명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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