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촛불집회 이후 어느 날, 우리 지역 선생님에게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벌어진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수업을 마치고 알림장을 쓰는데 한 아이가 “알림장은 왜 써요?”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담임은 그 아이가 알림장을 쓰기 싫은 속셈에서 하는 말로 생각하고 애써 달랬다. 그 아이는 알림장을 억지로 쓰면서 “선생님, 수행평가는 왜 해요?”라며 또 투덜거렸다. 그 아이는 아마 평가가 무척 귀찮고 힘들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느닷없이 “박근혜 퇴진!”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담임이 깜짝 놀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아이는 수행평가를 대통령이 시켜서 하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집에서 부모님의 대화나 뉴스를 들었거나 아니면 광화문광장에 다녀온 아이일지도 모른다. 사태가 이쯤 되니 담임은 어떻게 설명하고 수습해야 할지 난감했다. 못 들은 척하고 넘어가려 하는데 투덜거리던 그 아이가 또다시 “박근혜는 왜 물러나지 않는 거예요?”라며 짜증을 부렸다. 담임선생님은 갈수록 태산이어서 그저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김보경 그림

초등학생이지만 이처럼 교실에서 우리 사회의 민감한 문제를 질문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경우 대다수 교사들은 당혹감을 느낀다.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에게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사람들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교실에서 다루면 곤란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반공 이데올로기가 주입한 학습 결과로서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교실에서 ‘왜?’라는 질문은 교과서 범위를 벗어날 경우 불온한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교사가 꼭 대답을, 그것도 정답을 얘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사실 정답이 없는 문제가 많기도 하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하고 되묻는 것으로 충분하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민주시민 양성’

독일 초·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시민교육인 ‘정치교육’의 원칙인 보이텔스바흐 협약을 보자. 보이텔스바흐 협약의 주요 내용은 ‘일방적인 주입식 교화 교육을 금지하며(강제 또는 교화의 금지), 학문과 정치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교육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논쟁성에 대한 요청), 학생들이 정치적 상황과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행위 능력을 기르도록(분석 능력 및 학생의 이해관계 중심)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사회의 논쟁적인 문제를 교실에서 지도하는 것을 불온시한다. 지도할 경우 법적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우리 교육기본법에서는 교육 이념으로 ‘민주시민’을 기른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브레히트의 산문 ‘코이너 씨의 이야기’ 가운데 ‘상어와 물고기’에 관한 우화가 있다. 일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어가 학교를 만들어서 작은 물고기들이 상어 아가리로 들어가는 법을 가르치고, 복종과 순응하는 법도 가르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 수련을 통해 상어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게 아름다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상어들이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할 때는 그 말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 가르친다. 또 물고기들이 상어들에게 복종할 때만 이러한 미래가 보장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물고기들은 상어가 지향하는 가치·사상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혹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즉시 상어들에게 신고하도록 가르친다는 이야기다.

이 우화는 학교가 가르치는 것은 기득권 혹은 특권층의 이데올로기라고 풍자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을 규정한 것은 성장 이데올로기와 반공 이데올로기 이 두 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모두 정당한가를 물어봐야 한다. 정치나 경제, 사회, 교육 할 것 없이 모든 분야에 걸쳐 새삼 ‘왜?’라는 질문을 요구하고 있다. 그 대답이 촛불 너머 우리 미래를 그리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기자명 이중현 (남양주시 조안초등학교 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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