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려 못쓰게 된 심장과 간을 건강한 장기로 바꿔주는 수술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내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려면 꺼려진다. 더욱이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 아니라 통증만 있다거나 근육 힘이 살짝 떨어지는 정도인데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꼭 해야 하는 것인지,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2차 의견을 듣기 위해 필자를 찾아온 두 명의 실제 사례를 보자.

ⓒ시사IN 신선영정선근 교수가 매킨지 신전 동작을 통해 목 디스크 탈출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사례 1은 37세 전직 권투선수였다. 한 달 전 기계체조를 하다가 목 통증이 시작되었고 왼쪽 어깻죽지, 팔을 타고 내려가는 방사통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3주간은 매일 밤 자다가 깰 정도로 아팠으나 요즘은 좀 나았다. 팔로 미는 힘이 다소 약해졌다. 다른 병원에서 MRI를 찍고 수술을 권유받았다. 가지고 온 MRI를 보니 5, 6번 경추 디스크와 6, 7번 디스크의 탈출이 꽤 컸다(오른쪽 〈그림 1〉 위 참조). 사례 2는 35세 펀드매니저였다. 10개월 전 목이 아프고 양쪽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저렸다. 한 달 전 자고 일어났더니 양쪽 다리 힘이 조금 약해진 것을 느꼈다. 대소변 조절에는 문제없고 걷는 데도 지장은 없었다. 수술 권유를 받았다. MRI상 여러 개의 디스크 탈출이 있으나 5, 6번 경추 디스크가 가장 심한 상태였다(오른쪽 〈그림 1〉 아래 참조).

하버드 의대 믹스터와 바 박사가 세계 최초로 허리 디스크 탈출을 수술로 제거하여 좌골신경통을 해결했던 것이 1934년이었다(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저서 〈백년 허리〉에서 소개했다). 그때부터 탈출된 디스크는 수술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정설에 따르면 사례 1의 전직 권투선수는 수술로 디스크 탈출을 제거하는 것이 당연한 판단이다. 목 디스크 탈출이 크고, 그것으로 인한 심한 방사통 때문에 잠을 못 자고 팔 힘도 약해졌다. 그런데 왜 수술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일까?

기계체조를 하다가 방사통이 발생한 37세 남자(맨 위·사례 1)와 양쪽 다리 힘이 약해진 35세 남자(위·사례 2), 노란 화살표들이 디스크 탈출을 나타냄. 왼쪽 사진의 붉은 선은 오른쪽 영상을 얻은 단면을 표시.

목 디스크를 포함하는 경추에 수술을 하는 이유는 신경을 압박하는 구조물을 제거하거나 변형시켜 통증이나 마비를 낫게 하려는 것이다. 구조물이란 튀어나온 디스크, 두꺼워진 인대나 관절 등을 말한다. 확률은 낮지만 피치 못할 부작용이 생기거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수술 과정에서 척추뼈 사이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척추뼈를 서로 고정(유합술)하거나 인공 디스크를 넣기도 한다. 고정하면 목을 움직이는 데 약간 장애가 생기고 몇 년 지나면서 수술 부위 바로 옆 디스크가 손상되는 현상도 종종 관찰된다(오른쪽 〈그림 2〉 참조).

수술로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도 있으므로 양쪽을 잘 저울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자병법〉에 ‘전쟁을 하지 않고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듯이 수술을 하지 않고 병이 낫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탈출된 목 디스크를 제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했던 사람들이 있다. 1994년 프랑스 정형내과·류머티스과 의사 메이그니는 목 디스크 탈출증 환자 21명이 통증에서 회복된 지 1개월부터 길게는 30개월까지 CT로 추적 검사해 “참가자 모두 디스크 탈출 크기가 줄어들었으며, 10명은 75~100%까지 축소되었고 탈출이 크면 클수록 더 잘 줄어들더라”고 보고했다.

10년 전 인공 디스크 수술을 받은 5, 6번 경추 디스크 바로 아래 분절인 6, 7번 경추 디스크 탈출이 심해져서 척수를 압박했던 52세 남자 환자. 척수증으로 다리에 힘이 빠져 재수술을 받았다.

영국의 정형외과 의사 부시는 CT보다 정밀한 MRI를 이용해 좀 더 자세한 보고를 한다. 목 디스크 탈출이 심해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팔 힘도 약해졌던 환자 13명을 비수술적 치료를 하면서 평균 12개월 후에 다시 MRI를 찍어 확인했다. 13명 중 12명에게서 디스크 탈출의 크기가 저절로 줄었고, 줄어든 사람들은 평균 6개월(짧게는 2개월부터 길게는 12개월)쯤에 통증과 마비에서 회복이 되었다. 줄어들지 않았던 1명도 가벼운 증상만 남아 있더라고 보고했다.

사실 탈출된 디스크가 자연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진료실에서도 흔히 보는 일이다(54쪽 〈그림 3〉 참조). 건강하던 디스크가 찢어져서 속에 있던 내용물이 터져 나와도 가만히 기다리면 다시 회복된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수천년간 인류가 앓아왔던 좌골신경통의 원인이 디스크 탈출 때문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치료를 처음 고안한 믹스터와 바도 대단한 선각자이지만, 디스크 탈출이 저절로 회복된다는 것을 발견한 메이그니나 부시도 마찬가지다.

사례 1의 전직 권투선수로 돌아가 보자. 한 달 전에는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아팠지만 며칠 전부터 호전되는 추세이고 팔의 근력 약화도 경미해졌다. 부시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좀 더 기다려볼 만하지 않은가? MRI를 보니 탈출도 상당히 커서 더 잘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다. 실제로 이 환자는 매킨지 신전동작(〈시사IN〉 제480호 ‘이 동작만 알면 목 수술 필요 없다’ 기사 참조)을 하면서 기다렸고, 2개월 후에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목 디스크 탈출 때문에 생기는 통증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디스크 탈출이 줄어드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디스크 탈출로 생긴 염증이 점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염증이 기계적인 덩어리보다 더 빨리 줄어들기 때문에, 탈출된 덩어리는 그대로 있어도 통증은 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통증이 주된 문제이면 통증을 관리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팔 힘이 약간 약해져도 대부분 정상으로 회복된다는 보고가 많다. 증상을 관찰하면서 기다려도 된다.

4년 만에 다시 촬영한 MRI에 과거 있었던 4, 5번 경추 디스크 탈출 (노란색 화살표)의 크기가 확연히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수술은 운동신경이 마비될 정도일 때

판단이 어려운 경우는 다음과 같은 사례이다. 사례 3은 38세 남자다. 2개월 전 왼쪽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3~4일 지나면서 왼쪽 팔에 힘이 빠져 팔을 들 수가 없었다. 다른 병원에서 MRI상 4, 5번 경추 디스크가 탈출되었고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런데 2주 전부터 힘이 약간씩 좋아지고 있었다. 염증이 가라앉아 통증은 빨리 사라졌는데, 탈출된 덩어리에 의해 신경이 압박되어 마비가 심해진 경우였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더 지체하면 회복이 안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례 3에서 눈여겨볼 것은 ‘2주 전부터 팔 힘이 약간씩 좋아지고 있다’는 대목이다. 척추 수술의 대가들은 “운동신경의 마비가 중대할 정도로 ‘진행’될 때 수술을 하라”고 권장한다. 마비가 ‘진행’된다는 것은 점점 더 힘이 약해진다는 뜻이다. 팔을 들지 못했던 38세 남자는 마비가 ‘진행’되지 않고 ‘회복’되는 상황이었다. 첫 진료 후 방문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힘이 좋아지더니 3개월 후 정상 근력을 되찾았다. 전쟁을 하지 않고 승리했던 운 좋은 경우다. 그러나 이 환자와 달리 근력 약화가 점점 심해진다면 빨리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을 치러야만 승리할 수 있다.

사례 2의 35세 펀드매니저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술을 두 달 정도 미루었으나 점점 더 다리의 힘이 약해지고 감각이 떨어졌다. 아직 걷는 데 지장은 없지만 점차 신경학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이라면 굳이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수술을 받았고 수술 후 다리 근력과 감각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경추 퇴행성 척수증일 때는 세심하게 관찰해야

목 디스크가 허리 디스크보다 잘 낫는 편이지만 한 가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경우가 바로 이 환자와 같은 척수증(myelopathy)이다. 탈출된 디스크나 좁아진 신경 통로가 한두 가닥의 신경 뿌리에만 영향을 주면 방사통과 팔 힘이 약화되는 정도의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척수 자체를 누르게 되면 양쪽 다리의 근육 마비가 오거나 대소변 가리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목뼈 속에 있는 척수는 팔, 다리, 몸통의 말초신경을 뇌로 연결하는 아주 중요한 중추신경이다. 목 디스크 탈출이나 척추관이 좁아져 척수가 눌리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이를 경추 퇴행성 척수증이라고 부른다. 다행스럽게도 흔하지는 않다. 연간 10만명 중 1.6명 정도 발생한다. 동양인 남성한테서 좀 더 흔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나쁜 소식이다. 그렇지만 급격히 진행되지는 않고 서서히 나빠지는 양상을 보인다. 심하게 넘어져 목에 강한 충격을 받지 않는 한 갑자기 마비가 진행되지는 않는다. 경추가 퇴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므로 나이가 들면서 심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그렇지만 모두 다 더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척수증이 발생한 사람들 중 20~ 60%에서 심해지고 나머지는 자연적으로 호전되거나 비슷한 정도인 것으로 보고된다.

다리 힘이 약해져 경추 퇴행성 척수증 진단으로 수술을 기다리다가 저절로 호전되었던 59세 남자. 노란 별이 들어 있는 검은 구조물이 팔, 다리, 몸통에 서 오는 말초신경들을 뇌와 연결해주는 척수이다. 사례 2의 MRI와 비교하면 훨씬 더 척추관이 좁아져 있으나 자연경과는 더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양인에게 흔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좋은 연구가 많이 발표되었다. 게이오 의대의 마쓰모토 교수가 전문가인데 경미한 경추 퇴행성 척수증은 저절로 호전될 가능성이 63% 정도라고 했다. 경미한 척수증이란 ‘평지를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척수증으로 수술하려다 다리 힘이 좋아져서 수술을 취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아래 〈그림 4〉 참조). 그렇지만 경미한 척수증도 더 나빠질 가능성이 37%, 셋 중 하나 정도는 되므로 3개월마다 정밀하게 진찰받기를 권하고 있다.

토론토 대학병원의 류머티스과 의사 카레트와 신경외과 의사 펠링스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정리했다. 디스크 탈출 등으로 인한 신경 뿌리병일 경우, 충분한 비수술적 치료를 했음에도 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 혹은 팔의 근력 약화가 중대한 정도로 진행되는 경우에 수술을 권한다. 척수증일 때는 마비가 심하면 수술을 해야 한다. 필자는 이 대가들의 기준에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근육 마비를 볼 때 ‘진행’ 여부에 따라 판단하는 것처럼 심한 통증도 호전되는 추세인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통증은 염증이 가라앉으면 사라지는데, 그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이다.

목 디스크 탈출증의 90%는 가만히 두어도 자연 경과만으로 정상 회복이 된다고 한다. 발병률을 따져보면 목 디스크 탈출증은 연간 10만명당 107.3명에서 발생하고(남성 기준) 경추 퇴행성 척수증은 1.6명이므로 수술이 필요한 경우는 극히 일부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은 비수술적으로 치료가 된다는 뜻이다. 비수술적인 치료는 다음 편에 설명한다.

기자명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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