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병원 찍나 보네.” 최순실씨 단골 성형의원이 있는 서울 논현동 빌딩 외관을 촬영하자 지나가던 시민이 말했다. 이 빌딩 7층 김영재 의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실내가 드러났다. 지키고 있던 간호사 한 명이 어딘가로 전화하더니 ‘언론 대응 담당자’가 나타났다. 이 담당자는 “서류 준비로 바쁘다. 특검 조사 등 공적 루트를 통해 대응하겠다”라고 말했다. 의원 아래층에 있는 김영재 원장 가족회사 사무실로 한 직원이 노트북을 든 채 바삐 걸어 들어갔다.

최순실 의혹이 의료계로 확산된 초기만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의혹 일부가 점차 사실로 확인됐고, 보건당국이 대리처방 정황을 확인해 수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박영수 특검이 최순실씨뿐 아니라 청와대와 긴밀히 얽힌 이른바 ‘의료 농단’의 진실을 밝혀낼지 관심이 모인다. 관련자들의 해명에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의혹을 꼽아봤다.
 

ⓒ연합뉴스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비선 진료’ 어디까지?

비선 진료 의혹의 핵심은 김상만 전 녹십자아이메드 원장이다. 2013년 8월 김상만 당시 차움의원 의사가 대통령 자문의로 위촉됐다. 통상은 대통령 주치의가 자문의단을 꾸리는데, 당시 대통령 주치의였던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은 자신이 추천하기 전에 김상만 전 원장이 이미 명단에 들어와 있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김 전 원장은 최순실·순득 자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수년간 주사제를 처방한 인물이다. 그는 최근 언론에 자신을 청와대로 부른 이는 안봉근 당시 제2부속비서관이었다고 밝혔다. 안봉근 비서관은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뿐 아니라 취임한 이후에도 최순실·순득 자매 이름으로 김상만 전 원장한테 주사제를 대리처방 받았다. 김 전 원장은 최순득씨 이름으로 주사제를 처방한 뒤 직접 청와대로 가져갔다. 정맥주사인 경우 간호장교가 주사하고, 피하주사인 경우 김 전 원장 본인이 직접 놓았다고 보건당국 조사에서 밝혔다. 이런 진료는 공적 프로세스를 우회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14년 9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대통령 주치의를 지낸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11월26일 기자회견에서, “다른 자문의 치료와 달리 김상만 전 원장의 경우는 주치의를 통하지 않고 의무실장이 직접 연락을 한다”라고 말했다. 또 서 병원장은 의무실장 연락으로 김상만 전 원장과 셋이 진료에 들어간 적은 있지만, 태반·백옥주사 등에 대해 “요청받은 적이 없다. 적어도 내 컨트롤하에서는 알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초대 대통령 주치의였던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이 “대통령이 태반주사 등 영양주사를 먼저 요구했지만 완곡하게 거절했다”라고 밝힌 점을 고려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주치의를 통하지 않고 직접 김상만 전 원장에게 각종 주사를 요청해 맞았을 수도 있다.

김상만 전 원장은 또 2013년 9월 박근혜 대통령 혈액을 최순실씨 이름으로 검사했으며 혈액은 간호장교가 채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간호장교 두 명 중 한 명인 신 아무개씨는 그를 아예 본 적이 없고 혈액 채취도 한 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명인 조 아무개씨는 혈액 채취 관련 질문에 대해 답한 바 없다. 김상만 전 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때 피를 가져온 건 간호장교가 아니고 행정관이었다더라”고 말을 바꿨다. 그는 대통령 혈액을 가져온 인물로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을 지목했다고 채널A가 보도했다.

 

 

 

 


김상만 전 원장이 “청와대 의무실 또는 관저 파우더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진료했다”라고 밝힌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의무실이 아닌 공간에서 대통령이 진료를 받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청와대 제2부속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 인사는 “침실 안쪽 욕실 옆에 작은 드레스룸이 있는데 그곳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간이침대 정도나 놓을 수 있을까, 그렇게 큰 공간은 아니었다. 영부인이 머리를 다듬는 공간이거나, 제3의 공간일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미용주사 누가, 왜 주문했나?

청와대가 2014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이른바 태반주사 200개, 감초주사 100개, 백옥주사 60개, 마늘주사 50개 등 영양·미용주사를 구입하는 과정에도 김상만 전 원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의약품 구입은 의무실장이 관여하며 주치의는 결재 라인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문의인 김 전 원장은 당초 대리처방 의혹을 부인하면서 “대통령이 밖으로 못 나오니까 내가 필요할 때마다 청와대 의무실에 주문을 넣어두면 의무실에서 다 구비해뒀다”라고 언론에 해명했다. 그러면서 감초주사 등 각종 영양주사를 예로 들었다. 그가 직접 주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비아그라·팔팔정 등 발기부전 치료제 구입에 대한 해명도 말이 엇갈려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선우 청와대 의무실장은 서면을 통해 비아그라 구매에 대해 “주치의 자문을 요청해 처방을 권고받아 고산병 치료용으로 구매했다”라고 밝혔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약품 구입은 의무실장 소관으로 주치의는 결재 라인에 없다”라며 “(다른)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한 것으로 안다. 그 사람의 요청으로 알고 있고 나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당일 진료받았나?

이른바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진료 내지는 시술을 받았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관저에 있었던 사실이 공개되면서 관저에서 모종의 진료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이 쏠렸다. 참사 당시 간호장교로 근무한 신 아무개씨와 조 아무개씨가 연이어 해명에 나섰다. 신 아무개씨는 “세월호 당일 오전 관저에 가서 부속실에 가글을 전달했다. 당일 대통령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가글 전달 시각은 오전 10시쯤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첫 서면 보고를 받던 시점이다. 앞서의 제2부속실 근무 경험자는 “의약품은 간호장교가 갖다 주는 게 맞다. 필요한 게 있으면 보통 의무실장을 통해서 요청한다. VIP 취향에 따라 달라지므로 가글 상시 비치 여부는 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장교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 아무개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진료가 없었고, 대통령을 보지 못했으며, 관저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이나 청와대 직원에게 정맥주사나 피하주사를 놓은 적은 있지만, 백옥·태반·마늘주사나 프로포폴 등 성분에 대해서는 의료법상 비밀누설 금지 조항에 위반된다며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김상만 전 원장이 진료할 때 본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두 간호장교 인터뷰는 청와대와 사전 조율을 거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연합뉴스6월3일 프랑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김영재 원장의 처남이 운영하는 존제이콥스 홍보 부스에 들렀다.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행적에 대한 말을 바꾼 의사도 있다. 김영재 원장이다. 서울 논현동에 있는 김영재 의원은 최순실씨의 단골 성형의원이다. 김영재 의원 측은 당초 참사 당일인 수요일은 정기 휴진일이어서 김 원장이 인천에서 골프를 쳤다며 고속도로 하이패스와 골프 영수증을 공개했다. 하지만 김영재 의원의 프로포폴 관리대장에 2014년 4월16일 프로포폴 15㎖를 사용한 게 발견되자 김영재 의원 측은 “당일 오전 9시께 장모에게 노화방지용 자가혈소판풍부혈장(PRP) 시술을 10~20분 했다”라고 말을 바꿨다. 김영재 의원 측 한 관계자는 “‘휴진’은 언론에서 만든 얘기다. 예약제라 솔직히 휴진이라는 개념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프로포폴을 외부로 반출한 적 없고, 파쇄한 문서는 최순실씨와 관련 없다”라고 해명했다.

청와대가 왜 소규모 성형의원을 도왔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제쳐두고라도, 김영재 원장은 수사 대상이다. 각종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김영재 의원은 의사 한 명에 간호사 두 명이 있는 소규모 의료기관이며, 김영재 원장은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다. 김 원장 부인 박채윤씨가 대표로 있는 의료기기 회사 와이제이콥스메디칼(2011년 설립), 처남이 대표로 있는 화장품 회사 존제이콥스(2004년 설립)는 규모도 작고 매출 등 실적이 뚜렷하지 않았다.

현 정부 들어서는 달랐다.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중남미(4월)와 중국(9월), 올해 프랑스(5월) 순방에, 존제이콥스는 프랑스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다. 박 대통령이 이 화장품 회사 부스를 직접 방문했다. 이 회사는 2월 청와대에 명절 선물용 화장품을 납품했다. 그 뒤 5월 신세계면세점, 7월 신라면세점에 입점했다.

청와대가 김영재 의원 가족 회사를 직접 지원한 정황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수술용 봉합실 연구에 15억원을 지원한 것에 대해 주형환 산자부 장관은 “BH(청와대) 비서관실에서 R&D 저희 소관과에 요청한 것이라고 보고받았다”라고 말했다. 앞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부인은 “박 대통령 지시로 김영재 의원과 회사의 중동 진출을 도와줄 컨설팅 회사를 연결해줬다”라고 언론에 밝혔다. 조 전 수석은 이 해외 진출을 성사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질되었고, 컨설팅을 담당했던 업체는 세무조사를 받았다. 와이제이콥스메디칼에 특혜를 준 것으로 지목된 인물은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다. 서창석 원장은 대통령 주치의 시절이던 2016년 1월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기능성 봉합실 개발 사업계획서에 참여자로 이름을 올렸다. 보건복지부 출신 한 관계자는 “대학병원 교수가, 더구나 서울대병원이 다른 소규모 민간 업체의 개발 사업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윗선이 없다면 절대로 안 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창석 원장은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대표를 2014년 봄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서창석 원장이 지난 5월 서울대병원장에 오른 과정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 출신 한 관계자는 “분당 서울대병원 출신이 다시 본원으로 오는 경우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라고 말했다. 서창석 원장은 임명 직후 김영재 원장의 봉합실을 서울대병원 의료재료로 등록하라고 압박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실은 지난 7월 실제로 도입됐다.

서창석 원장이 지난 7월 일반의인 김영재 원장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교수로 위촉했다가 2주일 뒤 해촉한 것도 명백한 특혜이자 규정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창석 원장은 “중국인 VVIP가 우리 병원을 이용해 김영재 원장 시술을 받는데, 아무 타이틀도 없이 하게 하는 건 불법이라고 생각했다”라고 해명했다. 일련의 특혜 의혹에 대해 김영재 원장 측은 “전문의냐 아니냐는 성형외과협회에서 만들어낸 프레임이다. 저희가 아는 한 최순실씨에게 받은 도움은 전혀 없다”라고 알려왔다.

 

 

 

 

ⓒ시사IN 전혜원최순실씨의 단골 성형외과인 김영재 의원(위)은 박근혜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사IN 전혜원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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