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수능시험을 봤다.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아작 났”단다. 예년보다 문제가 어려웠다고 한다. 시험 시간이 내내 “지옥 같았다”라고 말했다. 식구들은 늦둥이 동생을 종종 “아기”라고 칭한다. 지옥에 다녀온 아기를 두고 가족은 애달파했다.

ⓒ시사IN 양한모

수능 시험에 얽힌 안타까운 기사가 많았다. 도시락 가방에서 어머니 휴대전화가 울려 강제 퇴실된 재수생이 있다고 한다. 고사장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가 준 코트 속에 휴대전화가 있어 시험을 못 본 학생 이야기도 나왔다. 시험 종료 후 마킹을 해 답안지를 압수당한 수험생도 몇 명 있었다. 이들이 느꼈을 좌절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연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정윤회·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정씨가 지원한 2015학년도 이화여대 수시 전형 체육특기자 부문은 수능을 반영하지 않았다. 당락은 면접이 갈랐다. 이화여대는 정씨를 합격시키기 위해 다른 학생들을 떨어트렸다. 면접위원들은 정씨보다 서류평가 점수가 더 높은 2명을 불합격시키고, 대신 정씨를 뽑았다. 입학 이후에도 정유라씨는 수업에 출석하지도 않고 높은 학점을 받았다.

‘최순실의 딸’만 그랬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입시 부정은 잦다. 대학뿐만 아니라 국제중·자사고 입학 과정에서도 잊을 만하면 잡음이 터져 나온다. 정량 점수 비중이 줄고 정성 평가가 확대되면서 ‘부모의 영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정유라씨는 본인 SNS에 “돈도 능력이야. 네 부모를 탓해”라고 썼다. ‘능력 있는’ 부모는 뒤에서 어떤 수를 쓰든 아이를 명문 대학에 보낸다. 출생이라는 제비뽑기에서 좋은 패를 뽑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유라씨는 또래보다 쉽게 살아왔다. 홀로 면해왔던 ‘지옥’이 그녀에게도 닥칠 예정이다. 대학 입학이 취소될 전망이고, 고교 때 받은 특혜도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정유라씨가 얻은 것을 빼앗는 일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정 소지를 낮추도록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한다. ‘개구멍’을 없애야 제2의 정유라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생과 11월19일 촛불집회에 나갔다. 앞으로 집회가 계속된다면 고등학생들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나와서 자랑했으면 한다. 독재자의 딸과 친분이 없는, 떳떳한 부모를.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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