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차은택의 손길은 과연 어디까지 뻗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의혹이 한식 세계화 사업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한식 세계화는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가 한식재단을 통해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이다.

의혹의 중심에 미르재단이 있다. 미르재단은 올해 4월22일 프랑스 ‘에콜 페랑디’와 합의각서(MOA)를 체결하고 프랑스식과 한식을 융합한 요리 전문학교(페랑디-미르)를 한국 내에 설립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되었다. 에콜 페랑디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요리학교다.

문제는 그동안 에콜 페랑디 사업을 추진해왔던 곳이 정부기관인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였다는 점이다. AT는 2013년부터 에콜 페랑디 정규 수업 과정에 한식을 넣는 방안을 협의하는 등 이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다 올 들어 느닷없이 미르재단이 에콜 페랑디 사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AT가 이 사업을 미르재단에 ‘상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AT 사장이었던 김재수씨가 농식품부 장관으로 발탁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은 “에콜 페랑디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최순실·차은택이다”라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미르재단 홈페이지4월22일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왼쪽)이 에콜 페랑디와 한국에 요리 전문학교를 설립하기로 하는 합의각서(MOA)를 체결한 뒤 장폴 베르메스 프랑스 상공회의소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 10월31일 “AT의 한식 사업이 2012년부터 한식재단으로 단계적으로 일원화했다. 한식재단은 단기 홍보 행사 중심의 협력 사업을 중단함에 따라 동 사업(에콜 페랑디 등)을 추진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이와 함께 “미르재단과 에콜 페랑디의 협력은 민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한 것이다”라고 못 박았다. 에콜 페랑디 사업을 이관받은 한식재단이 스스로 사업을 중단했고, 그사이에 미르재단이 독자적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 설명이다.

이 해명은 사실일까. 한식재단 측에 문의한 결과 뜻밖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AT가 한식재단으로 관련 사업을 이관할 때 에콜 페랑디 항목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관된 내용이 없으므로 한식재단이 사업을 중단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측은 해명자료와 엇갈리는 이야기를 내놓았다. 2015년 5월 기획재정부가 주재한 관계부처 회의 때 이미 에콜 페랑디 사업 등 해외 한식강좌 사업을 중단키로 했기 때문에 한식재단으로 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농식품부는 애당초 10월31일자 해명자료에 이를 적시하면 그만이었다. 굳이 한식재단을 끌어들여 해명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해명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시사IN〉이 AT 측 자료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2015년 말 AT에서 한식재단으로 사업이 이관될 때 ‘해외 한식강좌 현황’ 목록에 에콜 페랑디는 없었다. 처음부터 에콜 페랑디 사업만 쏙 빼놓고 한식재단에 이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2015년 5월 관계부처 회의에서 AT 사업을 중단키로 한 이유도 의심스럽다. 농식품부는 1회성 홍보 행사를 지양한 결과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AT는 2013년부터 에콜 페랑디 내에 한식 강좌 개설을 추진해왔다. 한식 정규 강좌를 ‘1회성 행사’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더욱이 이 시기는 미르재단 설립을 앞두고 여러 조직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다.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수상쩍다.

박근혜 대통령도 움직였다. 박 대통령은 3월24일 프랑스 미식주간 행사에 참석해 “프랑스 명문 요리학교인 에콜 페랑디가 한국에 요리학교를 세우고 한식 과정을 만드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미르재단과 에콜 페랑디가 정식 MOA를 체결하기 한 달 전 일이다. 박 대통령이 이미 미르의 사업 진행 상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공교로운 일은 또 있다. 미르와 에콜 페랑디의 MOA 체결 보름 전인 4월7일 한식재단 새 이사장으로 윤숙자씨(한국전통음식연구소 소장)가 취임한다. 윤 이사장은 차은택씨와 함께 문화융성위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한식재단 안팎에서는 이때 이미 차은택씨와 윤 이사장의 관계에 대해 말들이 나왔다. 윤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한식아카데미 설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 역시 이즈음 한식아카데미 설립을 강조하는 발언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한식아카데미를 한국 내 ‘페랑디-미르’의 거점으로 삼으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한다. 이 모두가 미르와 에콜 페랑디의 MOA 체결을 눈앞에 두고 벌어진 일이다.

여기까지는 ‘고공전’이다. 바닥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시사IN〉은 미르재단의 에콜 페랑디 유치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알 만한 관계자·전문가 등을 취재했다. 그 결과 공통된 인물이 등장했다. 미르재단 팀장인 장 아무개씨다. 장씨는 지난해 10월 미르재단이 설립되자마자 들어온 인물이다. 한 달 뒤인 지난해 11월 미르가 에콜 페랑디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올 4월 MOA를 체결할 때까지 일사천리로 실무를 진행한 인물이다.

최순실 게이트 불거지자 부랴부랴 입단속

장씨는 지난해 10월 재단에 입사하자마자 에콜 페랑디 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다. 농식품부 해명대로라면 에콜 페랑디 사업이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시기였다. 장씨는 국내 음식업계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자문했다. 대학교수, 정부기관 관계자, 심지어 유명 셰프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씨를 만난 이들은 처음에는 다들 대단하다고 여겼다. 콧대 높은 프랑스 요리학교가 다른 나라의 요리 교육과정을 도입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연합뉴스3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이 프랑스 미식주간 마스터 클래스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장씨의 팀원은 고작 한 명이었다. 직원 둘이서 이런 큰일을 성사시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둘 다 음식업계에 전문성이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래도 대기업들이 수백억원을 출자해 만든 재단인 만큼 움직이는 게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씨는 “우리 재단은 돈에 관한 한 문제가 없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고 난 뒤에야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가 떠올랐다. 음식 조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장씨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기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미르 사람을 만난 적 있나? 앞으로 미르에 대해서는 무조건 함구하라”는 주의를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입단속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장씨는 공식 행사에도 등장한다.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한 ‘한식 문화의 현황과 진단, 모색’ 토론회에서 장씨는 ‘한식기능장 제도의 발전 방안-프랑스 최고 장인을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발제자로 나선다. 장씨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며 미르재단에 들어간 이후 8개월 동안 에콜 페랑디 유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이 전부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장씨가 정부기관이 주관하는 행사의 발제자로 나선 것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전문지식이 있는 분으로 검증되어 섭외한 것으로 안다”라고 해명했다.

음식업계는 불난 집이다. 미르가 한식 세계화 사업에도 손을 댔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미르재단 관계자와 자주 접촉한 한 유명 셰프는 “아무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며 곤혹스러움을 나타냈다. 한 대학교수는 “자본금이 튼튼해 보여서 조언해줬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장씨에게 월 2~3회 조언해주고 미르재단 명함까지 들고 다녔던 디저트 전문가 김 아무개씨도 구설에 올랐다. 그는 “자문 1회당 30만원씩 받았고, 재단에서 명함을 파주기에 한동안 들고 다녔을 뿐이다. 지금 와서 보면 날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과 배우 송중기씨가 참석한 한식문화관 개관 행사에서 약과 제조 등을 맡았다가 미르재단의 입김으로 이 행사에 참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미르재단과 관련한 사업을 추적하는 일은 퍼즐 맞추기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다 보니 한식 세계화 사업 의혹은 이슈에서 한발 비켜나 있다. 미르재단이 어디까지 손을 뻗쳤는지, 미르재단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던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이제 막 증언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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