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이긴 사람들〉하워드 진 지음문강형준 옮김·난장 펴냄
“헌법이 소수의 부유하고 힘 있는 집단(노예 소유주·상인·땅 투기꾼)에 의해 만들어졌던 건국 초기부터 정부는 거의 언제나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왔고, 보통의 미국인보다 대기업에 우호적인 법을 통과시켜왔습니다.” 이 정도의 ‘반미 성향’이면 대한민국 국방부의 불온도서 목록에 오를 만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권력을 이긴 사람들〉(난장 펴냄)에서 전해주는 미국사의 진실은 훨씬 더 참혹하며 부도덕하다. 물론 그의 대표작 〈미국 민중사〉(1980)를 접해본 독자라면 그의 새로운 에세이를 ‘부록’이나 ‘에피소드’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프렌들리’한 독자라면 책을 읽는 일이 적잖이 곤욕스러울 듯싶다.

사실 저자가 겨냥하는 것도 미국과 미국사에 대해 순진한 인식, 혹은 잘못된 이해를 가진 독자층이다. 이것은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가령 미국이 역사적으로 세계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온화하고 관대했다는 믿음이나 미국을 좋은 일만 하는 나라로 생각하는 오해를 저자는 교정하고자 한다. 하워드 진은 그런 일이 역사적 시각의 결여와 ‘국가적 기억상실증’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부시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미국 국민이 이 부도덕한 전쟁을 지지한다거나 이라크가 미군에 의해 해방된 나라가 아니라 점령된 나라라는 사실을 푹신하게 망각하는 것이 비근한 사례이다.
그러니 역사를 좀 알 필요가 있다. 하워드 진에 따르면, 역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꿀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기에 그렇다. 권력의 시각이 아닌 민중의 시각,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하는 그가 보기에 미국사는 노예 소유주, 채권자, 인디언 학살자, 군국주의자, 땅 투기꾼, 거대기업 등 주로 부유한 백인을 위한 역사였다. 동시에 정부가 숱한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배신해온 역사였다. 정부의 입법은 언제나 계급적인 입법이어서 부자의 사회 지배를 공고하게 하는 데 이바지했다. 관세는 제조업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보조금은 철도회사나 석유회사 따위 대기업을 위한 것이었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 수시로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미국사가 이러한 목록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절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역사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민중이 저항하고 함께 모이고, 그래서 때로 승리했던 과거의 숨은 사건들”이 그가 품은 희망의 근거이다. 한편으로 이 책에서 복원하고 또 기리고자 하는 것도 정부의 거짓말과 역사의 거짓 영웅에 맞서 투쟁해온 미국 국민의 역사이고 숨은 영웅들이다. 책의 원제를 빌리면, 그들이야말로 ‘어떤 정부도 억누르지 못하는 힘’이다. 저자는 미국을 건설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고 믿는다. 그에게 국민은, 혹은 미국사의 진정한 영웅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인물이 아니라 간호사·의사·교사·사회사업가·지역운동가·병원 잡역부·건설노동자 등이다. 이들이 정부의 잘못에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전쟁에 반대하는 조직을 꾸리고 총파업에 나섰다. 패배로 점철됐지만 승리의 순간도 있었다. 하워드 진은 그러한 역사적 운동을 돌이켜보면서 어두운 시대에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EPA하워드 진은 미국을 건설한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라 믿는다. 위는 이라크 전쟁 반대 시위.
“역사 모르는 국민은 권력의 먹이가 된다”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커다란 칼을 보유한 육식성 정치인·지식인·언론인을 위해 제공된 먹기 좋은 고기가 된다”라고 하워드 진은 말한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이 다른가? 미국을 미국 정부와 동일시하고 미국 대통령이 오면 구청 직원까지 거리에 동원되어 성조기를 흔드는 나라에서 국민은 ‘먹기 좋은 고기’이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미국의 선물’이라고 우쭐거릴 때 국민은 ‘먹기 좋은 고기’이다. 촛불시위 참가자를 마구잡이로 체포하고 언론소비자 주권운동에 공권력이 재갈을 물리려고 할 때 국민은 ‘먹기 좋은 고기’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이 서로 뭉쳐서 우리의 수가 충분히 커질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 힘은 정부가 억누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시켜주는 도리밖에 없겠다.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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