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정확히는 목을 이루는 척추(경추)-에서 생기는 통증은 대부분 목 디스크 내부 손상, 디스크 탈출증 혹은 후방관절증 때문이다(〈시사IN〉 제474호 ‘목 디스크 손상되니 귓구멍도 아프구나’ 기사 참조). 이런 병이 있을 때 전형적으로 통증이 나타나는 부위는 목덜미, 어깻죽지, 승모근, 윗등 부위 등이다. 목 디스크 손상이 심해져 디스크 내부 손상이 디스크 탈출증으로 진행되면 수핵이 흘러나와 팔로 가는 신경뿌리에 묻어 염증을 일으킨다. 이러면 마치 팔에서 통증이 오는 느낌이 든다. 팔의 근육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뼛속이 곪는 것 같기도 하고 피부를 바늘로 찌르거나 감전된 것같이 느껴진다.
통증의 원인이 어깨 때문인지 목 때문인지 알려면 어깨와 목을 움직여보면 된다. 손을 뻗거나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과 같이 어깨를 움직일 때 통증이 심해진다면 어깨의 병이고 목을 돌릴 때 아파지면 목의 병이다. 목을 뒤로 젖히면서 어깨가 아픈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어깻죽지 통증이 심해지는 양상을 스펄링 증후(Spurling sign)라고 하여 목 디스크 탈출증의 전형적인 양상으로 꼽힌다.
왼쪽 사진과 같이 목을 뒤로 젖히고 아픈 쪽으로 돌리면 탈출된 목 디스크가 옆과 뒤쪽으로 밀리면서 염증이 생긴 신경뿌리가 지나가는 신경구멍을 좁게 만든다. 이러면 신경뿌리가 눌리면서 통증이 더 심해진다. 스펄링 증후는 민감도는 낮고 특이도는 높다. 스펄링 증후가 보이면 목 디스크 탈출증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증후가 안 보인다고 해서 목 디스크 탈출증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목 디스크 탈출증이 있어도 스펄링 증후가 안 나올 때가 많다. 이 스펄링 증후는 다음 회에서 설명할 매킨지 신전 동작과 연관이 높기 때문에 잘 숙지해두는 것이 좋다.
이렇게 다른 점이 많은데 왜 헷갈린 걸까? 어깨병과 목병의 전형적인 통증 양상만 보면 혼란스러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어깨 바로 아래가 집중적으로 아프면 어깨병이고 어깻죽지, 팔 전체, 손까지 아프면 목병이라는 것이다. 딱 부러지는 차이가 보이는데도 왜 목병인데 어깨 수술을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일까? 사실은 진료실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어깨병과 목병을 감별하는 것이다. 다음 네 가지 때문이다.
첫째, 비전형적인 임상 양상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깨병일 때 아래팔, 손, 어깻죽지 통증이 드물기는 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유착성 관절낭염이나 석회성 건염이 매우 심할 때는 통증이 어깨 바로 아래를 벗어나 팔꿈치를 지나 아래팔까지, 심지어는 손가락까지도 아프다. 견갑골 쪽이 아픈 석회성 건염도 드물지 않게 본다. 한 유착성 관절낭염 환자가 그린 통증 그림은 얼핏 보면 목 디스크 탈출증으로 오인하기 십상일 정도로 통증 부위가 넓게 퍼져 있었다. 이 환자는 목과 어깨를 움직여봐서 어깨를 움직일 때 통증이 심해지는 것을 확인하여 감별이 가능했다.
그러나 목과 어깨를 움직여 봐도 감별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어깨병이 있는 경우 손을 등 뒤로 돌리는 동작(뒷짐 지는 동작) 때 통증이 심해지는 양상이 많은데, 목 디스크 탈출증이 심해도 같은 양상을 보인다. 염증이 심한 신경뿌리가 당겨지면서 아프기 때문이다. 감별하기 쉽지 않다.
둘째, 어깨병과 목병이 같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목 디스크 병은 정상 성인의 60%가 겪는 병이고 회전근개 힘줄 손상은 50대 이상 정상인의 30~40%가 겪는 병이다. 두 가지 병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결코 낮지 않다. 자동차를 오래 타다 보면 엔진과 미션이 동시에 고장 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이치다.
셋째, 한 병이 다른 병을 불러온다. 주로 목의 병이 어깨병을 잘 일으킨다. 목 디스크 치료를 하고 몇 달 뒤 유착성 관절낭염이나 회전근개 힘줄 손상으로 다시 찾아오는 환자를 흔히 본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으나, 목 디스크 탈출증 때문에 6번 혹은 7번 목신경이 약해지고, 그 신경의 지배를 받는 견갑골 주변 근육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에 비해 어깨병 때문에 목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만약에 생겼다 해도 서로 상관없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목(경추)이 어깨를 관장하는 상급 기관이기 때문이다.
넷째, MRI 때문이다. 목과 어깨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MRI가 오히려 감별을 어렵게 한다? 이런 궤변이 어디 있나? 그렇지만 사실이다. 2006년 영국 세인트마리 병원 정형외과의 레일리 박사는 ‘죽은 사람과 방사선과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Reilly, 2006, ‘Dead men and radiologists don’t lie’). ‘사체 데이터와 방사선과 의사의 판독 결과가 신기하게도 일치하더라’는 의미로 붙인 제목이었다.
그때까지 나와 있던 회전근개 힘줄 손상의 유병률에 대한 보고서들을 종합해보니 ‘어깨 통증이 전혀 없는 정상 성인의 26.2%에서 MRI상 회전근개 힘줄 파열이 있었고 사체 부검(어깨가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는)에서는 30.24%에서 파열이 있었다’는 것이 요점이다. ‘사체 데이터와 방사선과 의사의 판독 결과가 신기하게도 일치하더라’는 의미로 붙인 제목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대다수 사람들은 회전근개 힘줄 파열이 있어도 어깨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고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다.
MRI가 오히려 감별을 어렵게 하기도
무증상 목 디스크 탈출증에 대해서는 훨씬 더 일찍부터 보고되었다. 1987년 UCLA 의대 방사선과 테레시 교수는 ‘목 관련 통증이 전혀 없는 100명을 MRI로 검사했더니 45~54세에서는 20%, 64세 이상에서는 57%에서 무증상 목 디스크 탈출증이 있더라’ 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 논문의 첫 문장이 인상적이다. “경추부 MRI는 다른 어떤 영상 검사보다 구체적인 해부와 병적 변화를 보여주지만 그것들의 임상적 의미는 알려주지 못한다.” MRI가 개발되어 인류 최초로 살아 있는 사람을 스캔한 것이 1977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로 일찍이 MRI의 한계를 꿰뚫어보았다.
MRI는 관절과 척추의 병변을 아주 자세히 보여주기는 하지만 상처와 흉터를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어깨 통증으로 어깨 MRI를 찍었을 때 어깨병이 보여도, 그것이 정말로 지금의 불편함을 초래한 원인인지 아닌지를 알기가 쉽지 않다. 무증상 파열이 우연히 발견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머리에 소개한 50대 여성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목 MRI도 마찬가지다. MRI에 보이는 목 디스크 탈출이 지금의 통증을 일으키는 상처인지 아니면 과거 모르고 지나간 통증의 흉터인지 알아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듣고 나니 답답해진다. 비싼 돈 주고 찍은 MRI 때문에 더 헷갈리다니! 정답은 임상 증상과 MRI를 잘 종합하는 것이다. 수술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더욱더 그렇다.
목의 문제와 어깨 문제를 감별하는 중요한 증후가 하나 있다. ‘배코디(Bakody) 증후’라는 것이다. 목 디스크 탈출증이 심하여 신경뿌리 염증으로 눈물 나게 아픈 사람들은 진료실에 들어설 때 목덜미를 잡고 온다. 팔을 자연스럽게 내리기만 해도 신경뿌리가 당겨져서 엄청나게 아프기 때문에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손을 들어 뒤통수나 목덜미를 잡게 된다. 어깨병이 있을 때는 이 자세가 오히려 불편하다. 손을 어깨 위로 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어깨가 눈물 나게 아픈데 아픈 쪽 손으로 목덜미나 뒤통수를 잡아서 편해진다면 목 디스크 탈출증이 분명하다. 목을 건강하게 하는 치료에 전념하면 된다는 뜻이다.
-
백년 허리 비결이 백년 목 비결이라네
백년 허리 비결이 백년 목 비결이라네
정선근 (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우리 병원의 젊은 교수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아주 우울한 표정이었다. 오랫동안 허리가 아파서 고생하다가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는데 이번에는 목이 문제인가 보다. MRI를 보니 경추...
-
이 처음 보는 자세가 당신의 목을 지킨다
이 처음 보는 자세가 당신의 목을 지킨다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한 달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린다고 진료실을 찾아온 할머니. 자세히 보니 아픈 부위가 팔이나 어깨가 아니라 목과 어깨 사이, 즉 어깻죽지였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지속되는 ...
-
목 디스크 손상되니 귓구멍도 아프구나
목 디스크 손상되니 귓구멍도 아프구나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우리 병원 외과 전임의가 ‘담이 결렸다’고 진료실을 찾았다. 어제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왼쪽 어깨뼈(견갑골) 근처가 저리고 뻐근했는데 점점 심해져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엄살이 아니었어 디스크 문제였어
엄살이 아니었어 디스크 문제였어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미국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다. 평소와 달리 갑자기 큰 회사 CEO, 고위 경제 관료들이 목 디스크 탈출증으로 잇달아 진료실을 찾았다. 미국 경제가 기...
-
이 동작이면 목 수술 필요 없다
이 동작이면 목 수술 필요 없다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백년 목’ 연재가 5회를 넘겼다. 이쯤에서 목 통증에 대한 올바른 ‘개념 탑재’를 확인하기 위해 독자 퀴즈를 기획해본다. 준비된 상품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말이다. 직장인 K...
-
수술을 왜 하니? 90%가 그냥 낫는데
수술을 왜 하니? 90%가 그냥 낫는데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병에 걸려 못쓰게 된 심장과 간을 건강한 장기로 바꿔주는 수술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내 몸에 칼을 대는 수술을 하려면 꺼려진다. 더욱...
-
수많은 치료법에 수많은 헛수고가
수많은 치료법에 수많은 헛수고가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진료실에서 환자들의 병력을 듣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목 디스크 손상 치료법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짧은 역사의 신대륙인 미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논...
-
뒷목 잡는다고 오해하지 말자
뒷목 잡는다고 오해하지 말자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정지된 차를 다른 차가 뒤에서 추돌하면, 앞차에 타고 있던 사람의 목이 갑자기 뒤로 강하게 젖혀졌다가 다시 앞으로 세게 꺾인다. 이런 움직임이 마치 채찍질하는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
-
디스크 방지하는 ‘척추 위생 8계명’
디스크 방지하는 ‘척추 위생 8계명’
정선근 (서울대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
연재를 마감하며 필자가 겪었던 목 디스크 탈출증 경험을 공개한다. 먼저 당부드릴 게 있다. 의사들 중에 자신이 병을 앓고 치료했던 과정을 대중 앞에 내보이는 경우가 있다. 의학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