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홍세화 외 지음·철수와영희 펴냄
이 책은 월간 〈작은책〉이 창간 12주년, 19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작은책 스타’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던 강좌 내용을 엮은 것이다. 안건모·박준성·이임하·홍세화·하종강·정태인 등이 강사로 나섰다. 이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80%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노동자 의식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20%의 소수에게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반노동자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지배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상류층이 될 수 있다는 가짜 희망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노엄 촘스키가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화한 존재로 만드는 데 있다. 19세기 미국의 위대한 수필가이자 철학자였던 랠프 왈도 에머슨도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민중이 우리 멱살을 잡지 않도록 민중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민중을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의 강조점과 일맥상통한다. 민중을 소극적이고, 무지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기득권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세뇌시키고 있으며,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기 때문에 구어체 문장으로 술술 읽힌다. 입말로 ‘노동자로서 세상 보기’를 강조한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한국 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이 없다고 하는데요. 사실은 반만 진실입니다. 오히려 반노동자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론과 교육과정을 통해서 의식적으로 반노동자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교육이나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개념은 좌파의 요구가 아니라 공화국이 요구하는 것, 우리나라의 정체성이 요구하는 것’이고,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이 열성을 부리는 것만큼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열성을 부려야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시사IN 윤무영60일 넘게 단식 농성을 벌이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 해고 노동자(위).
그리고 강연자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경계하지 않으면 그나마 한국 사회에 있는 건강보험 같은 안전망마저도 없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깨어 있지 않으면, 모르면 당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거둔 성과는 자국 내의 불평등을 현저히 악화시킨 것밖에 없다”라는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중에서).

얼마 전 기륭전자를 다녀왔다. 60일 넘게 단식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보면서 너무나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에서 읽은 역사학자 이임하(한성대 연구교수)의 말을 떠올렸다. “폐업에 반대하면서 기숙사에서 농성하던 YH 여성 노동자들은 8월9일 신민당사로 농성장을 옮겼습니다. 그러나 8월12일 새벽 2000여 명의 경찰력에게 180명의 18세에서 23세에 이르는 나이 어린 노동자들은 강제로 끌려 내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농성장에서 강제로 끌려 나왔지만 이러한 폭력은 곧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김경숙이라는 이름은 기억되지 못하고 점점 잊혀가지만, 그녀는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렸다. 지금 우리가 외면한 비정규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도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제발.

기자명 지승호 (독립 인터뷰어)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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