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몬트 주 벌링턴 시의 위누스키 원(Winooski One) 수력발전소 직원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댐 하류에서 물고기를 잡는다. 잡은 물고기는 트럭에 실어 댐 상류에 풀어준다. 산란기에 강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를 위해서다. 2014년 이 발전소를 사들인 벌링턴 시는 100%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달성했다. 미국 최초다.

벌링턴 시는 미국 북동부에 있다. 버몬트 주에서는 가장 큰 도시인데도 인구는 4만2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버몬트 주립대학, IBM 지사가 있지만 미국 내 다른 대도시에 비하면 유동인구가 확연히 적다. 시청이 있는 벌링턴 도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5층에 불과하다. 외지인이 벌링턴에 찾아오는 것은 주로 자연환경 때문이다. 기온이 빨리 떨어져 단풍이 유명하고, 10월 말부터는 스키 관광객도 몰린다. 서쪽으로는 미국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인 챔플레인 호를 맞대고 있어 절경을 이룬다.

미국 내 첫 100% 신·재생 에너지 도시가 버몬트 주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친환경은 이 지방의 오래된 기치다. ‘버몬트(Vermont)’라는 이름부터 녹색(vert) 산(mont)이란 프랑스어에서 비롯했다. 버몬트 주는 총면적 85% 이상이 산림이다. ‘녹색 산의 주(Green Mountain State)’라는 별칭답게 벌링턴 시 어디에서나 사방을 둘러싼 산맥을 볼 수 있다. 평생 버몬트 주에서 살아온 데이비드 블리터스도프 올어스 리뉴어블스(AllEarth Renewa bles) 회장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어떤 상황에서도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그게 버몬트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블리터스도프 회장은 직접 풍차와 태양광발전 기구를 발명해 벌링턴 시의 신·재생 에너지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버몬트 주에 위치한 풍력발전소. 풍력발전은 벌링턴 시 사용 전력량의 22%를 책임진다.
100% 신·재생 에너지 달성의 화룡점정인 위누스키 원 수력발전소는 벌링턴 전력의 7.5%를 생산한다. 1992년 개인사업자가 설립할 당시 버몬트 주정부는 그에게 이색 설립인가 조건을 내걸었다. ‘발전소 건설로 피해를 볼 위누스키 강 물고기의 생태 보호 대책’이었다. 고심 끝에 발전소 측이 내놓은 해법이 ‘물고기 승강기(fish lift)’와 ‘댐 하류 산소 공급’이었다.

존 클록 발전소장은 직접 물고기 승강기를 작동해 보였다. 가로·세로 2m 정도인 검은색 철판이 물 위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클록 발전소장은 승강기 활용 방식을 설명했다. “철판 네 방향 중 하류 쪽 입구만 열어둔 뒤, 그쪽으로 물살을 내보낸다. 연어는 (물살을 거스르는) 특성상 계속 승강기 위에서만 헤엄을 친다. 이 물고기를 승강기로 끌어올려 트럭으로 이동시킨다. 댐 상류에 풀어주기 전 전자장치를 해둔다. 방류한 물고기들이 댐 상류에서 무사히 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강 아래에는 터빈 3개를 비롯한 발전장치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원격조종이 가능하다.

벌링턴 에너지 정책의 ‘정신’을 보여주는 곳이 위누스키 원 발전소라면, 실제로 기여가 가장 큰 곳은 맥닐 발전소다. 1984년부터 가동된 맥닐 발전소는 벌링턴 전력의 44%를 홀로 생산한다. 맥닐 발전소는 화력발전소이지만 일반 화력발전소와는 다르다. 석탄이 아니라 ‘우드칩(나무조각)’을 쓰는 ‘바이오매스’ 방식이다. 우드칩은 석탄보다 대기오염을 적게 발생시키지만, 발전 효율이 낮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목재가 많이 필요하다. 발전소 설립 전 지역 환경단체들은 “맥닐 발전소가 버몬트 주의 산림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발전소는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켰다. 먼저 맥닐 발전소의 우드칩은 산업·가정 폐기물에서 나온다. 우드칩 95%를 벌목 잔여물, 불량 원목 제품에서 구하고 있다. 말하자면 화력발전만을 위한 용도로 벌목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버릴 나무를 쓴다는 뜻이다. 개인이 버리는 나무 제품도 우드칩의 재료다. 우드칩이 산처럼 쌓여 있는 발전소 앞마당 야적장 한쪽에는 시민들이 버린 각종 가구가 모여 있었다. 맥닐 발전소를 열면서 벌링턴 시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영구 폐쇄했다.

폐기물로 연료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우드칩을 연소하면서 대기오염이 발생하지 않을까? 요컨대 우드칩 발전은 재생에너지이되 ‘친환경 에너지’는 아닌 것 아닐까? 그러나 맥닐 발전소는 대기오염 관리에도 공을 들인다. 발전소는 공기 성분을 관리하는 여러 장비를 이용해 대기오염을 버몬트 주 기준치의 10분의 1, 연방 기준치의 100분의 1 수준으로 관리한다. 산림자원이 풍족한 벌링턴에서는 폐목재 또한 많이 발생한다. 데이브 맥도널 발전소 감독관은 “나무는 태우지 않아도 썩으면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태워서 전력을 생산하는 편이 이익이다”라고 설명했다.

목재 운송에 따른 간접적 오염에도 신경 썼다. 맥닐 발전소는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트럭 사용을 최소화하고, 목재의 75%는 철도로 운송한다. 열차는 하루에 단 한 번만 운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발전소 입구에는 1980년대 중반 지역 환경단체들의 맥닐 발전소 건설 반대 포스터가 붙어 있다. 맥도널 감독관은 “이 포스터가 ‘기우’임을 증명했다는 자부심이자 앞으로도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다”라고 밝혔다.

벌링턴의 다음 목표는 ‘넷제로’

미국 최초 100% 신·재생 에너지 달성에 기틀을 마련한 인물들이 있다. 올여름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첫 직함이 벌링턴 시장이었다. 1972년부터 버몬트 주 상원의원, 버몬트 주지사 선거에서 내리 4차례 낙선한 그는, 1981년 10표 차이로 벌링턴 시장이 되었다. 이후 1989년까지 8년간 샌더스 시장은 저소득층과 중소 상인들 친화적인 정책을 펼쳤다. 샌더스 시장의 전력 부문 정책이 친환경 신·재생 에너지 확대였다. 오늘날 벌링턴 전력의 절반 가까이를 생산하는 맥닐 발전소가 다름 아닌 샌더스 시대의 치적이다. 아직도 벌링턴 시청에는, 역대 시장 중 유일하게 넥타이를 매지 않은 샌더스 상원의원의 사진이 걸려 있다.

샌더스가 제시한 방향에 각론을 내놓은 후임자가 피터 클라벨이다. 클라벨은 샌더스 시장 재임 당시 공동체·경제개발 국장으로, 시정 실무를 조언했던 인물이다. 1989년부터 1993년,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총 15년 벌링턴 시장으로 일한 클라벨은 본격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비중 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전력 생산량이 떨어지는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려면 전력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2002년 나온 슬로건이 ‘10%의 도전(10 percent challenge)’이다. 가정과 기업에서 전력 사용을 줄여 각자 온실가스를 최소 10%씩 줄이자는 캠페인이었다. 운동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도록 벌링턴 시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펼쳤다. 시 외곽에 있던 시장을 도심으로 옮겨 자동차를 덜 타도록 했고, 전력 효율이 높은 전구를 시에서 구매해 싼값에 판매했다. 그 결과 16년 동안 버몬트 주 전체 전력 사용량이 15% 증가하는 동안 벌링턴 시는 오히려 1% 떨어졌다.

100% 신·재생 에너지란 성과가 비범한 시장들만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의사가 정책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한 미국 특유의 지방자치제 공이 크다. 핵심 제도는 ‘커미션(commission)’이라는 대의기관이다(왼쪽 상자 기사 참조). 벌링턴 전력 커미션(Electric Commission)은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장이 바뀌더라도 신·재생 에너지 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도록 압박해왔다. 벌링턴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벌링턴 전력국의 닐 런더빌 국장 역시 “(시청이 아니라) 전력 커미션이 100% 신·재생 에너지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계속 이끌었다”라고 말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오늘날의 성과는 지역 특유의 친환경 정서, 깨어 있는 정치인, 주민자치를 보장하는 제도 삼박자의 결과물인 셈이다.

미국 경제지 〈키플링어〉는 2013년 ‘가장 살기 좋은 10대 도시’ 2위에 벌링턴을 꼽았다. 이 매체는 “‘녹색 산의 주’에서 녹색은 중요하다. 시장의 목표는 도시 전체를 재생에너지로 가동하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이미 목표를 달성한 벌링턴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전기뿐만 아니라 열·교통 분야 등을 포괄하는 ‘넷제로(net-zero)’다. 벌링턴의 넷제로 정책은 자연에서 얻은 에너지를 전부 활용해, 쓰는 에너지보다 얻는 에너지가 많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맥닐 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열을 곧장 가정 난방에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미로 웨인버거 벌링턴 시장은 넷제로 목표 시점을 정해두지 않았다. “기한을 정해두고 임기 내에 밀어붙이거나, 시민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언제 달성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달성할지다. 중요한 질문들을 먼저 던진 뒤 분석하고 있는 단계라고만 말하겠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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