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명한 관점이란 예컨대 맥아더 장군에 관한 글에서 엿볼 수 있다. “노근리 학살을 거론하고, 맥아더의 동상에 시비를 거는 게 배은망덕이라고? 입장을 바꾸어 북한이 만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더화이의 동상을 세웠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문민 우위 원칙에 도전하면서 대통령도 무시할 정도의 제왕주의적 태도와 국제 정세에 대한 빈약한 판단력 때문에 강제 전역된 맥아더를 신화화해온 건 우리나라뿐이다.
만주 폭격을 주장하며 원자폭탄 투하 목표지점을 1차로 26곳이나 선정한 맥아더다. 전쟁 수행 과정에서 자기 판단 착오를 원자폭탄 투하로 무마시키려 한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맥아더의 뜻이 만에 하나 관철됐더라면, 한반도는 제3차 세계대전의 화마에 휩싸여버렸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진보라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 책만으로 판단할 때 한 교수는 진보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다.
그는 다만 한 사람의 역사학자로서 우리 역사를 둘러싼 개념과 판단의 혼란을 교통정리하고 있다. 그는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이렇게 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로서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이 맹목적으로 전통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녕 지켜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 버릴 것을 버릴 줄 알고, 개혁을 주장하고 최소한 포용하는 사람들이다.”
친일파 청산 문제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친일파 탓으로만 돌리는 데 반대하며, 친일파의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한 교수는 물론 친일파 청산이 좌절된 것이 통분하지만, 친일파 청산이 꼭 가혹한 처벌을 의미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부가 택한 친일파 청산 방식인 탄백(坦白), 즉 자신의 과거와 자신이 범한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한 교수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합리적인 상식 이상도 이하도 아닌지 모른다. 우리 현대사에 관해 합리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고 심하게 굴절·왜곡돼 있는 현실이야말로, 이 책을 별다르게 만들어주는 요인이다. 허울 좋은 ‘뉴라이트’가 아니라 진정한 뉴라이트가 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부터 읽기를!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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