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도 작가는 과감하게 유년의 기억을 고백적으로, 미추(美醜)를 초월한 장엄한 바다의 율동에 가깝게 표현한다. 현기영의 소설을 꼼꼼하게 읽지 않은 독자는 흔히 간과하는 것인데, 그는 매우 예리한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 예리한 스타일리스트가 역사적 비극인 4·3항쟁의 고통을 무의식 깊숙이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물론 개인적 고통을 넘어서는 일이지만, 그러한 역사의 운명조차도 그는 이 소설에서 풍요로운 기억의 육체 안에 풍부하게 용해시키고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고백하고 있는 유년은 분광기를 통과한 태양빛이 그렇듯 매우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가장 어두운 부분은 4·3항쟁과 한국전쟁이라는 엄혹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죽고, 쫓기고, 두려움에 떨며 절규하는 제주인에 대한 고통스러운 장면들이다. 그 고통스러운 장면의 앞뒤에는 무능한 바람둥이 가장이자 헌병 중사로부터 육군 대위로 진급하지만, 결국 중년의 몰락기로 접
어든 아버지에 대한 사춘기 소년 특유의 날카로운 반발감과 뾰족한 대결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시종일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그것을 투명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중년의 성숙한 유머를 상기시킨다. 실제로 이 소설을 거듭 읽다보면, 유머는 성숙한 자의 미덕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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