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김진숙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드디어 김진숙이라는 ‘임자’를 만나 ‘노동’이 ‘날것 그대로’ 제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게 됐구나. 작업복이 젖었다 말랐다 하면서 허옇게 등판에 드러나는 땀자국을 뜻하는 〈소금꽃나무〉를 읽고 든 생각이다. 책은 가난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 노동자의 권리를 찾으며 겪어야 하는 그들의 시련을 다루는 점에서는 여느 노동 관련 수기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김진숙이라는 ‘맑은 영혼’을 통해 형상화한 글은 사뭇 다르다.

내 생각에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한마디로 슬픔이다. ‘노예가 인간의 꿈을 품고 사는’ 노동운동의 길은 더 슬프다. 고귀하고 가치 있는 삶일지라도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사실이 아니다. 이 슬픔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함께 나눌 때야 비로소 인간의 꿈을 가꿔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노라면 저자는 ‘순도 100%의 감수성’으로 이 슬픔을 빨아들여 다시 독자에게 돌려준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보면서 나이 든 주부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실감나게 말이다.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난다. 노동자 인생이 너무 슬프고, 김진숙이 너무 슬프고, 노동열사들이 불쌍하고, 그들의 자식과 아내와 부모는 더 안쓰럽고, 내 인생도 너무 슬퍼진다. 김진숙은 이미 여러 해 동안 같은 내용으로 연설이나 글을 통해 늙은 노동자·간호사·교사·대학생·주부 할 것 없이 수십만명을 울려왔다. 그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며 또 운다. 다 아는 얘기인데도 그렇다. 슬프고 화가 난다. 고문했던 자들에게, 노동자를 탄압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자들에게, 자본의 천국이 된 이 세상에.

ⓒ시사IN 윤무영비정규직 싸움을 하는 이랜드그룹 해고 노동자.
책의 어느 대목에서인가는 ‘더 읽을 수도, 그렇다고 더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참 어려운 심정이 된다. 어린 조카를 집에서는 책상다리에, 중학교 등교해서는 철봉에 기저귀로 묶어 키워야 했고, (내 스스로 가해자가 된 듯한) 10대 여성 노동자들의 공장 기숙사 생활을 했고, 버스 차장과 해운대 아이스크림 장사를 거쳐 운명의 그곳, 노동운동에 다다르는 대한조선공사 처녀 용접공 김진숙의 ‘기억하기 싫은 청춘’을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고 괴롭다. 해고와 출근 투쟁, 고문과 투옥, 그리고 야만의 끝을 보이는 저들. 소설은 분명히 아닌데, 그렇다면 현실인데… ‘불편한 진실’ 앞에서의 머뭇거림… ‘대학생 친구’의 손도 빌리지 않았다. 시인 흉내도 내지 않았다. 시보다 더 몸서리치게 펄떡이는 단어들… 버릴 게 없어 요약을 위해 인용할 단어를 고를 수가 없다.

뒤로 갈수록 책은 어느덧 거울이 되어 독자인 나를 비춘다.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비정규직이 노예의 사슬을 대물림하고 있다. 나는 20년 동안 뭘 한 걸까. 20년 가까이 초지일관 불굴의 신념으로만 버텼겠는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는 것, 그것만큼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리고 가신 임들 영전에서, 전교조 탈퇴자 옥이의 열패감에서, 20년 만에 복직하는 두 동료에게서, 노숙 끝에 변사체로 돌아온 동생의 죽음에서 20년을 묻어둔 ‘부채감’을 꺼내들고 자책하는 김진숙…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쉬이 넘어가지 못하는 책장을 ‘힘내시라… 김진숙’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며 책장을 덮는다.

〈소금꽃나무〉 저자 김진숙씨(위).
책을 덮어도 한 장면은 슬프게 남는다. 20년간 인간의 꿈을 꾼 마흔일곱 살 해고자 김진숙이 어느 날 물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처음 인간의 꿈을 꾼 스물일곱 살 비정규직 신규 해고자가 대답한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널리 읽고 맘껏 울어보자. 그리고 분노하고 성찰하자.
기자명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