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이 얼마나 신나는 2주일이었던가. 올림픽이 개막하자마자 한국 선수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족족 메달을 가져왔다. 개막 다음 날 남자 유도 60kg급 최민호가 다섯 번의 기가 막힌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거머쥐더니, 그 이튿날 박태환은 수영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보란 듯이 금메달을 따냈다. 최민호, 박태환, 역도 사재혁, 배드민턴 이용대 등이 순식간에 ‘올림픽 훈남’으로 떠오르고, 장미란 언니가 역도 여자 무제한급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그뿐이랴, 여자 핸드볼 팀은 비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4년 전 아테네에서와 마찬가지로 최강의 ‘아줌마 파워’를 보여주었고, 야구 대표팀은 파죽지세의 8연승을 거두며 결승에 진출했으니(8월22일 기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더 바랄 게 있으랴.

잘한다, 잘한다, 환호하며 2주일 내내 거의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근데 나 지금 뭐에 박수치는 거지?’ 그러게 말이다. 과연 올림픽의 무엇이 우리에게 그렇게나 큰 감동과 환희를 안겨주는 걸까. 금메달? 물론 기쁘다. 따오기만 한다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올림픽 순위 집계상 메달 개수 하나가 더 추가된 것뿐이다. 가뜩이나 1, 2, 3위 다툼에 금·은·동 개수 집계가 너무 전근대적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마당이고, 더불어 메달만 생각해 “메달 따라, 메달 따라”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메달 욕심쟁이로 만드는 꼴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금메달이 대수가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 시상식에서 태극기 올라가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감동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물론 전세계 많은 사람이 올림픽을 경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올림픽이란 단지 그것만을 위해 열리는 행사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국가 대 국가의 애국심 싸움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고, 또한 개인 대 개인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건 한 개인의 경쟁,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게 올림픽 본연의 정신이다. 돌아보니 정치색 짙었던 올림픽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올해 베이징 올림픽의 중국 응원단처럼 과열된 애국심도 문제가 되었으니 국가 간 경쟁의 장으로 올림픽을 바라보는 건 그리 추천할 바가 못된다.

ⓒ난나 그림
올림픽의 본령은 국가 간 경쟁 아닌 ‘자기와의 싸움’

자, 그럼 우리에게 감동과 환희를 안겨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답이 나온 셈이다. 유도의 최민호, 그가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감동의 순간은 그토록 냉정했던 다섯 번 경기의 무표정을 풀고 마지막 한판승 직후 그동안의 한과 슬픔과 기쁨을 단 한 번의 오열로 뿜어내던 순간이었고, 양궁팀 선수가 관객을 홀린 건 메달이 확정되던 시점이 아니라 그들의 화살이 정확히 10점 타깃 안에 꽂혀 들어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올림픽이란 세계 기록을 향한 의지의 장도, 국가 간 경쟁의 장도 아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순간은 참가한 선수의 마지막 에너지와 최종 희열이 순식간에 폭발하는 0.001초의 순간이다. 그들 앞에 놓인 적수는 상대 선수도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 곧 가장 결백한 최후의 상대다. 상대가 순결할 때 승부도 멋스러워지고 대결은 가장 순백한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 정점에서는 올림픽 각 종목 간 대결과 선수 개개인의 삶이 하나로 완성되고, 그런 희열은 다만 보고만 있을 뿐이었던 관중에게도 여지없이 전달된다. 올해 올림픽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 또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승부의 색깔은 아마도 이것일 게다.

기자명 이지훈 (FILM2.0 편집위원·영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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