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한다, 잘한다, 환호하며 2주일 내내 거의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스쳤다. ‘근데 나 지금 뭐에 박수치는 거지?’ 그러게 말이다. 과연 올림픽의 무엇이 우리에게 그렇게나 큰 감동과 환희를 안겨주는 걸까. 금메달? 물론 기쁘다. 따오기만 한다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올림픽 순위 집계상 메달 개수 하나가 더 추가된 것뿐이다. 가뜩이나 1, 2, 3위 다툼에 금·은·동 개수 집계가 너무 전근대적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마당이고, 더불어 메달만 생각해 “메달 따라, 메달 따라” 한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메달 욕심쟁이로 만드는 꼴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금메달이 대수가 아니면 또 뭐가 있을까? 시상식에서 태극기 올라가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감동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물론 전세계 많은 사람이 올림픽을 경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올림픽이란 단지 그것만을 위해 열리는 행사는 아니다. 어떤 면에서 국가 대 국가의 애국심 싸움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고, 또한 개인 대 개인의 경쟁보다 더 중요한 건 한 개인의 경쟁, 곧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게 올림픽 본연의 정신이다. 돌아보니 정치색 짙었던 올림픽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올해 베이징 올림픽의 중국 응원단처럼 과열된 애국심도 문제가 되었으니 국가 간 경쟁의 장으로 올림픽을 바라보는 건 그리 추천할 바가 못된다.
자, 그럼 우리에게 감동과 환희를 안겨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답이 나온 셈이다. 유도의 최민호, 그가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감동의 순간은 그토록 냉정했던 다섯 번 경기의 무표정을 풀고 마지막 한판승 직후 그동안의 한과 슬픔과 기쁨을 단 한 번의 오열로 뿜어내던 순간이었고, 양궁팀 선수가 관객을 홀린 건 메달이 확정되던 시점이 아니라 그들의 화살이 정확히 10점 타깃 안에 꽂혀 들어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올림픽이란 세계 기록을 향한 의지의 장도, 국가 간 경쟁의 장도 아니다. 그보다 더 위대한 순간은 참가한 선수의 마지막 에너지와 최종 희열이 순식간에 폭발하는 0.001초의 순간이다. 그들 앞에 놓인 적수는 상대 선수도 다른 무엇도 아닌 그들 자신, 곧 가장 결백한 최후의 상대다. 상대가 순결할 때 승부도 멋스러워지고 대결은 가장 순백한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그 정점에서는 올림픽 각 종목 간 대결과 선수 개개인의 삶이 하나로 완성되고, 그런 희열은 다만 보고만 있을 뿐이었던 관중에게도 여지없이 전달된다. 올해 올림픽이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 또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승부의 색깔은 아마도 이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