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아시아의 강대국 일본은 맹활약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남자 수영 종목 6개 가운데 5개 금메달을 휩쓸고 육상 높이뛰기에서도 금메달을 땄어. 그런데 또 하나의 금메달은 의외의 종목에서 나왔지. 바로 승마, 마장마술 종목이었다. 금메달리스트는 니시 다케이치 중위.

그는 남작 작위를 가진 귀족이자 일본의 기병 장교였어. 1930년 니시는 기병 장교 훈련차 이탈리아에 들렀다가 마음에 꼭 드는 말 한 마리와 조우하게 돼. 니시는 우라누스, 즉 천왕성이라고 이름을 붙인 그 말과 짝을 이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된단다. 금메달을 딴 뒤 그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영어로 대답했다고 해. “We won.” 즉 우라누스와 자신이 함께 이긴 것이라는 뜻이었지.

그로부터 9년 뒤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어. 한때 오스트레일리아와 인도까지 위협하던 일본군은 몇 번의 괴멸적인 패전을 경험한 뒤 점점 힘을 잃었고, 연합군은 일본 본토를 향해 한 발 한 발 죄어 들어갔지. 이오지마는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해서 반드시 점령해야 하는 섬이었고, 일본군은 결사적으로 방어에 나서게 돼. 기병대가 없어지면서 기갑부대 지휘관이 된 니시 남작도 이때 중령 계급장을 달고 이오지마에 주둔하고 있었지.

ⓒGoogle 갈무리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승마 금메달리스트 니시 다케이치 남작과 그의 말 우라누스.
니시 남작은 여느 일본군 장교들처럼 부하들의 등을 떠밀어 자살 돌격을 감행시키는 무모한 군인이 아니었어. 보통 일본군 장교들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도망쳐온 병사들에게 비겁하다고 거품을 물거나 심하면 죽이기까지 했지만 니시는 그들에게 “살아와서 잘했다”라고 격려했다고 하니까. 또 어떤 일본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부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미군 포로들에게 의약품을 건넬 만큼 신사였다고 해(사실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미군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영웅이자 명예 로스앤젤레스 시민증까지 받았던 니시 남작이 이오지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와 안면이 있던 미군 장교가 나서서 “니시 남작! 당신을 잃는 것은 인류의 손실이다”라고 항복을 호소했지만 그는 끝내 항복하지 않고 죽음을 맞았다.

물론 니시 남작이 참전한 일본군의 전쟁 도발은 당시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를 비탄에 빠트린 악한 행위였고, 수많은 한국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일본 제국의 군인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이오지마에 지하 요새를 짓느라 뼈가 빠지고 전쟁통에 처참하게 죽어간 한국인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미군조차 아쉬워했듯 니시 남작은 말 달리는 기수였을 때 가장 빛나던 사람이었어. 니시의 애마가 되기 전, 우라누스는 원래의 주인조차 두 손을 들어버린 거친 성격의 말이었다. 하지만 니시는 그 말의 비범함을 알아보았고 일본 육군이 구입을 거절하자 개인 돈을 들여 자신의 말로 삼았다.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당시 우라누스는 다리를 굽히지도 않고 점프해 다리를 쭉 뻗은 채로 장애물을 넘는 묘기를 보여주었어. 겁 많은 말의 특성상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었다는구나. 니시와 우라누스는 그렇게 혼연일체가 돼 있었던 거야. 이오지마에서도 니시는 우라누스의 갈기와 재갈, 채찍을 몸에서 떼지 않았고, 미군이 이오지마에 상륙하고 엿새 뒤 도쿄의 목장에 있던 우라누스는 숨을 거둬. 어쩌면 우라누스가 죽은 날이 이오지마에서 니시가 전사한 그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다루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말은 의외로 사람과의 교감이 어마어마한 동물이라고 해.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몽골 사람들은 공산주의 동지였던 북베트남을 돕기 위해 몽골 말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말 중 한 마리가 베트남에서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몽골로 돌아와 몽골 사람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어. 우리나라 최초의 승마역학 박사인 남병곤씨에 따르면 말들은 그 마지막 순간도 매우 특별하다는구나. “어떤 말은 주인이 올 때까지 눈을 감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주인이 도착하면 그때서야 눈을 감는 경우도 있다. (중략) 그런가 하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평소 말을 경제적 산물로만 평가하면서 사랑이 없는 사료를 건네준 주인을 말이 꿰뚫어봤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말을 고르지만 말 역시 사람을 알아본다는 뜻일 거야.

ⓒ시사IN 조남진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승마 선수 선발전 편파 판정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교수와 재벌이 받들어 모시는 학생이라니…

1989년 고려대학교는 시끄러웠다. 학생들이 신임 총장 취임에 반대했기 때문이야. 그 근거 중의 하나로 학생들은 터무니없는 부정 입학 사례를 들었지. 한 학생이 승마 특기자로 학교에 들어왔어. 성은 전씨였어. 너도 잘 아는, 가진 돈이라곤 29만원이 전부라는 전두환의 조카였어. 단군 이래 최대의 도적이라 불리는 집안이었으니 승마 특기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 안타까운 점은 그의 체중이 95㎏에 달했다는 사실이야. 승마 선수에게는 체중 제한이 있단다. 헤비급 선수를 태우고는 적토마인들 벽돌 한 장 높이를 뛰어넘을 수 있겠니. 그런데 95㎏의 무제한급 기수가 승마 ‘특기’로 대학에 들어온 거야.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한 교수는 역사에 남을 명언을 남기지. “대학 들어와서 술 마시고 고기 먹으면 30㎏ 금방 쪄.”

최근 또 한 명의 기수가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화여대에 승마 특기자로 입학한 한 학생이야. 아시안 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긴 했지만 그 선발전 과정에서 턱없는 편파 판정으로 말썽이 있었지. 그녀와 관련된 문제를 조사했다 해서 대통령이 몸소 나섰다. 대통령이 수첩을 들여다보며 문체부 공무원들을 꼭 집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좌천시키는 일도 벌어졌지(이 공무원들 끝내 옷을 벗었다는구나).

대학에 들어가서는 도무지 수업에 나타나지 않아 교수가 제적 경고를 하자 엄마인 최순실씨가 학교에 출두하여 교수 방을 박차고 들어가 호령을 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그 특기자는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이라는 명문장을 수업 리포트로 내고, 교수는 ‘잘하셨습니다. 앗 파일 첨부가 안 되었네요’ 하며 공손히 화답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제는 독일로 날아가 수행원 10여 명을 거느리고 다니며 승마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데 그 비용을 한국 기업들이 후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최씨는 재벌들 돈을 단번에 수백억원 끌어모은 정체 모를 재단의 ‘회장님’이라 불렸다고 한다.

말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 값을 치를 때 아낌이 없었으며,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도 애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몸에 지녔던 기수, “당신을 잃는 것은 인류의 손실”이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택한 일본의 귀족 니시가 체중 95㎏의 헤비급 ‘승마 특기자’를 만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또 니시와 호흡을 맞춰 올림픽 금메달은 물론 자동차를 뛰어넘는 묘기로 미국인들을 놀라게 했던 명마 우라누스, 늙어서 은퇴한 뒤에도 니시가 방문하면 뺨을 비비며 반가워했고 주인이 전사하던 때에 맞춰 마지막 숨을 몰아쉰 우라누스의 눈에 최순실씨와 그 딸이 어떻게 비칠까도 궁금하다.

최순실 모녀의 소재와 현황에 대해 온 나라가 답답해하고 있지만 그들은 도무지 소식이 없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 문제의 승마 특기자가 타고 다닌다는 천하의 명마가 히히힝 거리며 최순실씨에게 외칠지도 모른다. “뭐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일이 다 있나. 말도 웃을 일이네. 말 그만 타고 당신들 나라로 돌아가. 니시의 죽음은 인류의 손실이었다는데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손실이잖아!”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