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된 부동산 시장에 경고음이 울린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10월20일 부동산 전문 사이트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16년 10월 현재 3.3㎡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877만원에 이른다. 지난 1월 평균 1622만원에서 올라가는 추세다. 서울에서 중산층·서민 수요가 많은 80㎡(약 24평)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평균 4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서울 노른자위 단지 청약 경쟁률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작은 아파트’일수록 경쟁률이 치열하다. 과열 현상은 수도권으로도 이어진다. 경기도 광명·안양·과천·하남시 아파트 청약 경쟁률도 30대1 이상이다.

과열의 가장 큰 원인은 투기 수요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약 자격과 전매제한이 완화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도권은 1년, 지방은 6개월마다 청약 1순위 자격을 확보할 수 있다. 투기 목적을 가진 사람이 지방 광역시를 돌아가며 6개월마다 분양에 나설 수 있다. 수도권의 경우 분양권을 되팔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기간, 즉 전매제한 기간도 2014년 6월 기존 1년(민간 주택 기준)에서 6개월로 줄었다. 지방은 전매제한도 없다. 치고 빠지기식 투기가 가능하다.

ⓒ연합뉴스정부는 이른바 ‘8·25 대책’을 통해 신규 주택 공급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분양 물량이 감소한다는 신호가 울리자 투기성 수요가 폭증했다.
국정감사에서도 박근혜 정부 기간 분양권 전매 거래가 논란이 되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이 9월2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3년7개월간 발생한 전국 아파트 전매 차익이 총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현아 새누리당 의원도 10월14일 국토교통부 감사에서 아파트 전매가 지난해 약 15만 건, 올해는 7월까지 10만5885건이 거래되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부동산 과열 조짐이 더욱 눈길을 끈 이유는 청약 시장 과열이 전체 주택 수요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청약 시장과 전체 주택 시장의 매매 동향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주택 시장이 불황기일 때는 오히려 ‘새 주택’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에 청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투기 열기가 높을 때는 청약 아파트보다 재건축 연한이 가까워진 구형 주택이 인기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약에 몰린 실수요가 흘러나가 다른 주택 시장을 동반 상승시키고 있다. 서울은 지난 9개월 사이에 3.3㎡당 평균 실거래가가 255만원이나 올랐다. 지방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이 10월21일 발표한 주택시장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4월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대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8월25일 이른바 ‘8·25 대책’을 통해 과도한 가계부채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선언했다. 신규 분양 공급을 줄이고, 집단대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발표가 오히려 시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급 물량 감소다. 향후 분양 물량이 줄어든다는 신호가 울리자, 투기성 수요가 폭증했다는 분석이다. 당장 살 집을 찾는 실수요자도 은행 빚으로 무리하게 주택 구매에 뛰어들고 있다.

ⓒ연합뉴스유일호 경제부총리(오른쪽)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8·25 대책에) 문제가 있다면 DTI 하향 조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해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부동산 폭탄은 다음 정권의 민생 숙제로

이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투기 환경 자체를 옥죄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전매제한과 청약 조건을 강화하자는 주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0월20일 성명을 통해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고, 공공주택의 실수요자가 일정 기간 의무 거주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7월에 추진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 정책도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수요를 갑자기 냉각시킬 경우, 전국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침체를 겪어 실물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실물경제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점도 당국의 ‘결단’을 어렵게 한다. 자칫 전체 경제 성적표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건설투자 부문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약 51.5%다. 한국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건설경기가 책임지는 구조에서 이를 제외하면 경제성장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당초 전매제한 등 고강도 정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던 지난 8·25 대책 역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양극화와 가계부채 논란이 불거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2분기 기준, 총 가계부채(가계신용 잔액)는 1257조원을 넘어섰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665조원에서 두 배 가까이 상승한 폭이다. 정부는 8·25 대책이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하지만, 2016년 9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전월 대비 6조원 이상 늘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 유지와 가계부채 해소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다 보니, 정책 당국자들 사이에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월13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국회 기재위 국정감사에서 “(8·25 대책에) 문제가 있다면 DTI 하향 조정 등 모든 것을 포함해 검토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10월18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집단대출 관리를 위해 여러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DTI 문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엇박자를 낸 것이다.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강남구 등 일부 과열 지역만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10월17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그 지역(강남)에 한해서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려 한다”라며 투기과열지구 지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특정 지역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할 경우, 투기 수요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므로 단기 처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 후반기, 대선을 앞둔 상태에서 시장에 충격요법을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 폭탄은 결국 다음 정권의 첫 번째 민생 숙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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