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차은택 게이트에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그리고 최순실씨가 설립한 회사들도 여럿 등장한다. 좀처럼 큰 그림을 파악하기 어려운 ‘최순실·차은택 게이트’를 핵심 쟁점별로 정리했다.

1. 기업이 자발적으로 모금한 것 아닌가?

2015년 10월 미르, 2016년 1월 K스포츠라는 이름의 재단이 각각 설립되었다. 두 재단은 설립 목적만 봐도 ‘쌍둥이 재단’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미르재단은 ‘문화’, K스포츠재단은 ‘체육’을 매개로 “‘국민행복은 국가발전’을 목표로 창조문화와 창조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는 문구가 똑같이 실려 있다. 주소도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걸어서 10분 거리다.

이 미르재단에 삼성·현대·SK·LG 등 16개 그룹이 486억원을 냈다. K스포츠재단에도 19개 그룹이 288억원을 냈다. 합치면 774억원, 약 800억원에 달하는 돈이다. 모금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했다. 두 재단의 이사 명단에 전경련 출신은 없었다.
 

ⓒ연합뉴스10월12일 국정감사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신생 ‘쌍둥이 재단’에 대기업들이 거액을 출연한 이유는 ‘정부’ 때문이었다. 기업들은 전경련은 모금 창구이고, 정부에서 하는 재단으로 알고 돈을 냈다고 언론에 말했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지난해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의에서 “전경련을 통해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모금 활동에 관여한 사람도 구체적으로 지목됐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현 청와대 정책조정 수석)이다. 이에 청와대와 전경련은 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해명했다. 안종범 수석은 10월2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순수한 자발적 모금이었다”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더구나 안종범 수석은 미르재단 인사 개입 의혹도 받고 있다. 4월4일 미르재단 이 아무개 전 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현직 청와대 수석이 민간 재단 인사에게 전화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다. 안종범 수석은 “통화한 것은 맞지만 인사 관련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10월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두 재단이 “재계 주도로 설립된 재단”이라면서도 자신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구상을 두 재단과 연결 짓고, 재단이 진행한 사업의 성과를 치켜세웠다. 박 대통령은 “(문화·체육 투자 확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까지 기업인들과 소통하면서 논의 과정을 거쳤다. 지난해 2월 기업인들을 모신 자리에서 문화 체육에 대한 투자 확대를 부탁드렸다. 전경련이 나서고 기업들이 이에 동의해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라고도 말했다. 대통령 뜻으로 설립된 재단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발언이다. 두 재단 모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신청 하루 만에 설립 허가를 받았는데, 이 역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 좋은 취지이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

설령 정부 뜻에 따라 기업이 모금해 설립된 재단이더라도, ‘한국문화예술 브랜드 확산’ ‘체육을 통한 국위 선양’ 같은 사업의 구체적 목적에 기업들이 동참했다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사람이다. 두 재단의 이사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이름과 만난다. 최순실씨다.

최순실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영애 시절’부터 가까웠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박 대통령 보좌관 출신인 정윤회씨의 전처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 앞에는 ‘비선 실세’라는 말이 붙는다. ‘몰래 어떤 단체 또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실제 세력을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된 박관천 전 경정은 2015년 1월 검찰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그간 비선 실세 논란은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에서 보듯 정윤회씨가 중심이었다. 이번엔 최순실씨가 의혹의 중심에 섰다. 두 재단을 실질적으로 움직인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지난 5월 K스포츠재단 2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정동춘씨는 최순실씨가 단골로 다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운동기능회복센터 센터장이라고 9월20일 〈한겨레〉가 보도했다.
 

ⓒ연합뉴스10월20일 박근혜 대통령은 “민간이 앞장서고 정부는 지원하는 방식으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만들어졌다고 해명했다.

최순실씨가 재단 운영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9월20일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일방적인 추측성 기사여서 전혀 언급할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최씨 모녀 소유의 ‘비덱’과 K스포츠 커넥션이 불거지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이 최순실씨 개인 이익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더블루케이가 한국관광공사 자회사인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일감을 따낸 데는 문화체육관광부의 ‘협조 공문’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더블루케이 설립 3개월 전인 지난해 9월 “장애인 체육팀 창단에 에이전트를 활성화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내려보냈고, 이에 장애인 펜싱 선수팀 창단을 준비하던 GKL이 올해 5월 설립 5개월도 지나지 않은 더블루케이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었다. 전직 펜싱 선수인 더블루케이 고영태 이사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크다.

최순실씨 개입 의혹이 이는 건 K스포츠재단뿐 아니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2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두 재단에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며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취임식 당시 대통령께서 입었던 340만원짜리 한복을 미르재단 김영석 이사에게 직접 주문해 대통령에게 전해준 당사자”라고 주장했다. 〈JTBC〉는 10월18일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의 말을 빌려 최순실씨가 미르재단에서 ‘회장님’으로 불렸고, 이 재단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였다고 보도했다.

3. 차은택 감독은 능력 있어서 쓴 것 아닌가?

최순실씨 외에 미르재단을 움직인 현 정부 비선 실세로 지목된 이가 바로 차은택 CF 감독이다. 차은택 감독은 이승환·이효리·싸이·빅뱅·2NE1·티아라 등 뮤직비디오 200여 편, 한·일 월드컵 때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이 나오는 SK텔레콤 ‘붉은 악마’ 시리즈 등 CF 800여 편을 찍었다.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문화융성과 관련된 일에 기여한 것이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9월20일 미르재단이 입주한 건물의 관리인이 취재진의 출입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하지만 일련의 의혹을 보면, 적어도 ‘문화융성’에 관한 한 차은택 감독의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미르재단의 등기부등본 어디에도 그가 이사로 이름을 올린 바 없다. 재단 공식 직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재단의 초대 이사장과 이사 전원이 차은택 감독과 잘 알거나 함께 일한 사람들로 채워졌다. 김형수 미르재단 초대 이사장은 그의 연세대 대학원 스승이다. 이 재단 장순각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학과 교수, 이한선 전 HS애드 국장, 이성한 전 사무총장도 차 감독이 추천했다. 차 감독은 〈매일경제〉에 “뜻도, 사업 방향도 좋았고, 존경하는 분이 이사장님(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이 되셔서 일할 수 있는 몇 분을 추천해드린 게 일이 크게 번졌다”라고 해명했다.

그의 해명대로 선의의 추천이 괜한 오해를 산 걸까? 미르재단 사무실 계약은 2015년 10월24일 차 감독의 절친한 후배 김성현씨가 했다. 사흘 뒤인 10월27일 미르재단이 설립되었다. 김성현씨는 당시 자신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광고회사 ‘모스코스’(후에 유라이크커뮤니케이션즈로 이름을 바꿈)를 미르재단 설립 사흘 뒤인 2015년 10월30일 해산했다. 이 회사는 대통령이 임기 후반 3년 동안 국민 1000명을 만나 소통한다는 계획이 담긴 ‘국민을 향한 천 번의 걸음-천인보’라는 기획안을 만들기도 했다.

이 모스코스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은 김홍탁씨는 2015년 1월 세워진 광고회사 더플레이그라운드의 대표이사로 2015년 3월 취임한다. 그런데 김홍탁씨가 차은택 감독을 통해 회사 대표를 맡게 되었다며 “돈을 대줄 물주는 있는 거지. 재단, 재단이래 재단”이라고 2015년 3월 말했다는 녹취가 있다고 JTBC가 보도했다. 이로부터 7개월 뒤 미르재단이 설립됐다. 이후 더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순방 당시 K스포츠재단의 태권도 시범단 행사를 담당해 특혜 의혹이 일기도 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면, 미르재단 설립과 운영의 배후에 차 감독이 있었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시사IN 이명익10월19일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특혜 입학과 성적 부정처리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에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 3000여 명이 참여했다.

2014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시연한 늘품체조도 차 감독이 정 아무개 헬스트레이너를 김종 문체부 2차관에게 소개해준 것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문체부 상황을 잘 아는 한 고위 관계자는 “그때 ‘차은택이 봐주면 (윗선에) 통과된다’는 소문이 막 돌았다”라고 〈시사IN〉에 말했다. 이후 차 감독은 창조경제추진단장 및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을 맡았다. K스포츠재단 고영태 이사가 차 감독과 최순실씨의 연결고리라는 의혹까지 불거진 상태여서, 단순히 능력 있는 인재를 기용한 정도에서 문제가 끝날 가능성은 적다.

4.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는 금메달을 땄으니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정유라씨는 국가대표 승마 선수다. 2014년 9월20일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정씨가 지원한 이화여대 체육특기생 마감일은 9월16일이다. 당시 이화여대 수시모집 요강은 “원서접수 마감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로 입상 실적을 제한했다. 정씨가 금메달을 딴 것은 마감일 4일 뒤였고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이었다. 평가에 참여한 한 교수는 “당시 입학처장이 평가자들에게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결국 모집요강에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합격했다. 2013년 5월 이화여대 체육과학부 교수회의에서 특기자 종목을 확대하기로 결정해, 2014년 7월 체육특기생 종목에 승마가 포함된 이후 첫 합격생이자 개교 이래 첫 승마 특기생이다.

합격 후에도 정씨는 교수들한테 특별대우를 받았다. “구보는 3절 운동이다. 마음속에 메트로놈(음악의 박자를 나타내는 기구) 하나 놓고 달그닥. 훅 하면 된다”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 새끼들에게 쓰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추천하지 않음. 맞춤법은 원문 그대로)” 따위 표현이 포함된 8장짜리 리포트를 이메일로 제출하고 B학점을 획득했다. 지난해 ‘체육과학부 실기우수자 학생들에게 대회 실적이나 과제물 등을 참고해 최소 B학점 이상을 주라’는 지침을 새로 만든 덕이었다. 여름 계절학기 과목에서 특혜를 받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사퇴했지만 “특혜는 없었다”라고 주장하며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5. 개인 비리가 있었다면 수사해 처벌하면 되지 않나?

박근혜 대통령은 10월20일 “만약 어느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 자금 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못 비장한 말투였지만 불법행위가 드러나면 처벌받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의혹이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재단 운영 개입’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 뜻에 따라 대기업 모금으로 설립된 재단이,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한 사인의 이익 추구에 이용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최순실씨와 관련된 증언에는 청와대가 있다. 최씨가 재단 핵심 관계자들에게 “VIP의 관심 사항”이라고 하면서, 더블루케이의 ‘블루’는 청와대를 의미한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최순실씨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일이라는 주장까지 보도됐다.

이런 주장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주장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 리더십 스타일과 관련이 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고리 삼인방’ ‘정윤회 파동’ 등 비선 실세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유명 헬스트레이너 윤전추씨의 청와대 행정관 기용에도 최순실씨가 개입했다는 의혹 역시 맥을 같이한다.

10월20일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 다음 날 검찰은 수사팀을 5명으로 늘렸다. 언론은 ‘수사 확대’ ‘급물살’ 따위 제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그동안 비선 실세 의혹 논란이 검찰에 가서 처리된 과정을 보면 이번에도 수사 전망은 밝지 않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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