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하루 여덟 끼씩 먹다가 당뇨가 왔다. 홍콩 취재 경비가 2000만원이었는데 1300만원을 식비로 썼다. 동료 여행작가인 아내는 인도 취재 중 간에 병을 얻어 큰 수술까지 해야 했다. 어떤 나라의 지도는 GPS를 들고 아예 직접 제작했다. 여행국의 시사 주간지, 신문은 늘 꼼꼼히 챙겨 보았다. 논문도 읽었다. 없어서 못 찾을 뿐, 그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빠뜨리지 않고 공부한다.

이 사람은 여행작가다. 여행작가 중에서도 가장 노동강도가 세다는 가이드북 작가다. 〈인도 100배 즐기기〉 〈상하이 100배 즐기기〉 〈프렌즈 홍콩〉 〈프렌즈 오키나와〉 같은 책을 썼다. SNS상에서는 본명인 전명윤(44)보다 필명인 ‘환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타파하겠다’라는 뜻이다. 그가 타파하려는 건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 오키나와는 그저 아름다운 휴양지라는 무지 따위다.

그가 여행지의 시사 문제에 관심을 두는 건 그 나라의 세상 돌아가는 형편과 여행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그는 최근 타이 국왕의 죽음 이후, 타이의 왕실모독죄로 얼마나 많은 여행자가 처벌당했는지 그 실상을 알리는 트윗을 줄기차게 올렸다. 타이 여행은 아예 안 해도 좋다는 태도였다. 몇 해 전에는 현지에서 여행업을 하는 한 인도 남성의 한국인 여성 대상 성폭행 사건을 공론화했다가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가이드북에도 그 지역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싣기 위해 몸부림친다.  

ⓒ시사IN 윤무영

그렇다고 여행을 엄숙한 무엇으로 채우려는 것에도 반대한다. 먹고 노는 쾌감, 새로운 곳에서의 자극이야말로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어느 진보 성향 단체의 일본 여행 프로그램을 봤는데 여정 전체를 오키나와의 비극을 들쑤시고 다니는 걸로 채운 거예요. 그런 여행이 오히려 오키나와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지 않을까요?”

지금이야 국내에서 손꼽히는 여행작가가 됐지만, 그는 20대에 필화 사건에 휘말린 장본인이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때 공안정국 조성을 비판하는 글을 PC통신에 썼다가 〈조선일보〉가 이를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국가보안법 제4조 고무·찬양 혐의로 재판까지 받았다. 1심에서 무죄를 받고 그는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은 뒤 아슈람 공동체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7년 뒤인 2003년 그가 펴낸 인도 여행 가이드북이 매년 1만 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는 전업 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와의 인터뷰를 빙자해서 여섯 시간쯤 함께 놀았다. 지면에는 옮기지 못할 포복절도 여행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헤어질 때쯤 그가 “여행작가로서 가장 행복한 게 뭔지 아세요? 끊임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게다가 무척 재미있는 공부죠”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여행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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