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이나 다음 학년에 한 걸음 가까워진 학생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박사 할 거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하라고 재촉하세요. 경영이나 경제를 전공해도 취업이 어려운데, 문과는 취업하기엔 애매해서 석사학위 받아봤자 도움 될 게 없다는 거죠. 틀린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학 4학년 Y는 부모의 압박에 요즘 어깨가 무겁다. 그는 대입 커트라인과 성적에 맞춰 사회계열 전공을 선택했지만 조금씩 전공에 흥미를 갖게 됐고, 석사까지는 해볼 만하겠다 싶어 일찌감치 학·석사 연계과정을 신청했다. 7학기 조기 졸업에 대학원 학점을 미리 이수할 수 있고, 열심히만 하면 입학 5년 만에 석사학위를 손에 쥘 수도 있다. 석사과정 내내 장학금도 보장된다.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막상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가 되자 Y는 다시 갈등하고 있다. “박사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실 공부에 완전히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김보경 그림

나는 학생들에게 “헷갈릴수록 자기중심을 잡는 일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갈림길에 서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결심은 흔들린다. 그럴수록 남의 울타리 너머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이는 법이다. 물리를 전공한 4학년 K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1~2년 일해보고 싶다”라며 요즘 경제 주간지를 뒤적이고 있다. 일이 힘들어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금전적 보상이 큰 직종이라는 점에 끌렸다고 한다. 전공을 살려서 계속 공부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석사와 박사, 박사 후 연구원 생활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니 막막했다.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은데 “이력서에 쓸 말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말을 들으니 준비 없이 무모하게 진로를 바꾸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된다. K는 금융이나 회계, 마케팅 같은 경영 분야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고 관련 동아리 활동이나 외부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원론적으로 그리고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이에 관계없이 진로와 인생 계획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대학에서의 계열과 전공에 어울리는 분야로만 진출하라는 법도 없다. 융합이나 통섭 같은 단어가 유행하는 시대, 전공의 벽을 허물고 다양한 역량과 경험을 쌓는 일이 강조되고 있다.

꽃을 피우려면 뿌리가 버텨주어야 하건만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어느 특정 시점에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어떤 제도 아래서든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간 발휘되어야 하는 자기 주도권과 책임감이다.

대학에서 두 번째 학기를 맞은 1학년에게는 더욱 그렇다. ‘자유전공’ ‘기초’ ‘교양’ 따위 단어가 붙은 교육 단위에 속해 있는 대학 새내기들은 이번 학기가 끝날 무렵 세부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큰 변화가 없다면 이때 선택하는 전공이 남은 대학 생활은 물론 평생 따라붙는 꼬리표가 된다. 적성에 맞지 않지만 병역특례 가능성을 보고 이공계로 왔다거나, 수학을 못해서 문과를 택했다는 식의 답변이 차라리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어찌됐든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선택의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학생들에게 문과·이과의 결정이나 대학 전공 선택의 이유를 물어보면 ‘유체이탈 화법’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글쎄요, 어쩌다 보니…”라거나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마치 자기가 결정한 일이 아니라는 듯 무기력한 답변을 내놓는다. “그냥 물 흐르듯 여기까지 온 것 같다”라며 남 이야기하듯 말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

흔들려도 꽃을 피우려면 뿌리가 땅에서 버텨주어야 한다. 중요한 결정의 시기, 인생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훗날 지금을 돌아볼 때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할 자신이 없다면, 생각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보는 게 맞다.

기자명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