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과연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인가. 사드가 불러온 국익과 동맹의 충돌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냉전 시절 서독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서독도 국익과 동맹의 충돌을 경험한 바 있다.

이인석 전 인천대 석좌교수는 1993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동베를린 무역관장 시절부터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DJ에게 대북정책과 관련한 숨은 조언자 노릇도 했다. 그에게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시사IN 조남진이인석 서울대 독어독문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동베를린·프랑크푸르트 무역관장. 청와대 건설교통비서관. 인천발전연구원장. 인천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이 워싱턴발로 나오고 있다.최근 눈에 띄는 게 미국 언론의 여론조사다. 북한 핵을 위협으로 느끼는 비율이 60%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5% 상승했다. 매년 위협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 핵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건가?북핵은 이미 미국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평양이든 어디든 미국 본토로부터 1만5000㎞ 떨어진 곳에서 북한의 핵미사일이 날아올 수 있다는 점을 가상하고 있다. 바다 건너로부터 미국 본토가 침공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느끼는 두 번째 위기감이다.

첫 번째 위기는 언제였나?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첫 번째다. 1962년 10월16일부터 28일까지 13일간 사태가 전개됐는데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미소가 극적 타결을 했다. 미국 최대의 위기였고 전 세계를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미국인들은 이 쿠바 위기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또 1970년대 후반 옛 소련이 동유럽에 배치했던 중거리 미사일을 핵미사일로 교체하면서 유럽 전체 위기가 고조되었는데, 당시 미국 본토는 공격 대상이 아니었다. 대신 유럽이 전장이었고, 독일이 당사자였다. 반면 이번 북한 핵은 미국이 당사자다.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을까?국제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상대방의 핵미사일 사용이 임박할 경우 자위권적 차원에서 허용이 된다. 동맹과 사전 협의가 필요 없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걸린다. 선제공격은 작전 수행상의 문제이지 협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한·미 동맹은 대북 억지를 통한 한국 보호를 명분으로 하는 것 아닌가?지금까지는 그렇다. 주한미군 주둔도 그렇고 사드 배치 명분도 그렇다. 선제공격론이 나오면서 미국 본토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자국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미국의 본심이 드러난 것이다.

동맹인데 일방적으로 선제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는데?안보 문제와 관련한 미국의 일방주의는 백번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까지 우방들이 제일 불만인 게 그 점이다. 미국은 안보만은 철저하게 일방주의이다. 유럽도 겪었고 아시아에서도 겪었고, 현재 우리도 겪고 있다.

결국 한국의 국익과 동맹의 이익이 늘 같지는 않다는 사실로 귀결하는 듯하다.사드 문제에서도 드러났지만 워싱턴발 선제공격론에서도 국익과 동맹의 이익이 충돌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보와 경제 번영, 분단 극복(통일)을 국익의 3대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국익이 모두 미국과 중국에 의존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비대칭적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분단 극복과 통일은 미국·중국,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국익 간에 충돌도 벌어지는 것 같다.

미국과 안보동맹이 강화될수록 통일은 멀어진다. 또 경제와 부딪친다. 동맹의 패러독스다. 국내에서는 미국 중심의 동맹을 강화하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여기지만 대북정책에서는 분단을 심화시킨다. 이런 점이 사드 논쟁에서도 아주 여과 없이 드러났다.

ⓒAP Photo1961년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빈에서 핵실험 정지 협상을 했다.
사드 배치 과정에서 나타난 국익과 동맹 이익 간 충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선제공격론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미국을 방어만 하고, 안전은 미국이 우선이다. 즉 생각은 미국이 하고 한국은 손발 노릇만 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동맹 내 균열이 일어나기에 충분하다. 이 점은 미국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까?북한과 미국이 정면충돌하고 중국이 한국과 대립하게 된 것은 북핵과 그에 대응한 사드 배치 때문이다. 북핵과 사드가 한국의 운명을 결정한다. 결국 이 문제들이 풀려나가는 과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선제공격론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미국은 진짜 선제공격으로 북핵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일까?

선제공격론에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인가?1994년 클린턴 정부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 그때는 북핵이 개발되기 전이다. 지금은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응 보복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과연 선제공격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론이 나오는 이유는 돌파구를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일 것이다. 미국 내 강경론을 진압하기 위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미국은 핵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난 나라다. 1960년대 쿠바 미사일 위기, 1970년대 후반 유럽 미사일 위기, 그리고 최근의 이란 핵 위기까지 다양한 핵 위기를 경험했다. 핵 위기는 미국한테는 생소한 일이 아니다. 핵 위기를 겪으면서 평화 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쿠바 위기를 통해 핵무기 감축 협정이 시작되어 1963년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인 모스크바 조약을 체결했다. 유럽 미사일 위기는 1987년 워싱턴에서 중거리 핵미사일 폐기 조약(INF) 체결로 막을 내렸다. 그런 지혜를 이번에도 분명히 짜낼 것이라고 본다.

ⓒAP Photo1987년 백악관에서 레이건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핵미사일 폐기 조약에 서명했다.
지난 20여 년간 북핵 협상을 보면 미국이 한마디로 성의가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까?과거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핵은 이미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즉 현실을 인정한 전제 위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북한이 동의할 수 있는 안을 내야 한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대통령이 했던 방식을 참고할 수도 있다. 당시도 군은 선제공격 등 강경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봉쇄하면서 퇴로를 열어줬다. 그때 케네디 대통령은 공산주의가 동의할 수 있는 협상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을 배치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소련의 요구를 받아들여 터키에 있는 미국 미사일 기지를 철수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지금 제재와 선제공격 두 가지 옵션이 나와 있다. 제재는 퇴로를 찾는 과정이다. 지금 워싱턴과 베이징, 평양 삼자 간에도 끊임없이 뭔가가 오가고 있을 것이다.

북·미 간 물밑 접촉 얘기가 들리긴 한다. 조만간 미국 측에서 특사가 움직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북한 위협론과 선제공격론 같은 것을 언론에 흘리는 것은 미국 국무부나 백악관이 퇴로를 찾는 과정일 수 있다. 출구를 찾는 것이다. 자칫하면 우리가 굉장히 곤란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몇 차례의 핵 협상에서 미국은 모두 상대가 동의할 수 있는 조건으로 협상했다. 이란 협상도 그렇고 소련과 두 차례 한 것도 그렇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밟게 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억지력 증강과 군축이 동시에 가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현재 상황에 접목하면?

요즘 대북 제재의 강도를 아주 높이고 있다. 거기에는 분명 출구가 있을 것이다.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과 직접 접촉하는 경우와 중국을 포함시키는 경우다.

대북 제재가 강화되거나 긴장이 고조되면 협상의 순간이 다가온 것으로 볼 수 있나?

그렇다. 딱 조일 만큼 조이고 그만큼 협상 카드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것이다. 마지막은 협상에서 극대화한다. 결국 핵무기 동결이냐 폐기냐로 끝낼 것이다. 이미 동결 얘기는 나오고 있다. 물론 군사력 증강과 협상에는 시차가 있다. 어느 시점까지는 무력 증강으로 쭉 간다. 그때는 앞이 잘 안 보인다. 실제로는 우리만 그렇고 미국 안에서 많은 일이 벌어진다. 핫라인이 움직인다든가 특사들이 오가고 물밑 접촉이 이뤄지면서 제안과 역제안을 주고받는 일들이 계속 나타난다. 위기가 절정기에 달하면 해소 단계로 넘어간다. 위기의 확대·유지·축소·해결이 국제 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지금 북한에 유엔 제재, 미국 제재, 개별 국가 제재 등 세 가지가 행해지는데 제재에만 몰두하면 대세를 놓칠 위험이 있다. 나라마다 제각각 출구전략을 생각하면서 자국 중심의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건가 고심하고 있을 것이다.

ⓒ시사IN 조남진10월11일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에서 사드 기지 배치 철회 집회를 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대북정책에 관한 한 박근혜 정부는 힘을 내세운 단편적인 정책이었다. 군사력 일변도였다. 그러다 보니 협상의 선로가 없다. 협상이란 대결을 종식시키고 평화로 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것이다. 냉전 시대가 남긴 귀중한 유산은 긴장 완화였다. 이것을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 사드와 북핵 위기에서 한국에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얘기한다면 바로 한반도형 긴장 완화(데탕트)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미 간 북핵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미국과 북한, 또는 미국과 중국·북한 사이에 북핵 협상이 시작되면 한국이 과연 초대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닌 데다 북한이 방해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씨를 뿌려야 한다. 여러 형태가 있을 것이다. 동북아의 비핵국가만을 모아서 동북아 비핵국가 안보회의를 추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6자회담은 북핵을 넘어 지역 집단 안보회의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비핵 안보회의와 6자회담을 한데 묶어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길로 나아가야 될 것이다. 어떤 형태든 한국이 평화의 메시지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 계속 발신해야 한다. 독일은 1970년대 빌리 브란트가 협상 선로를 놓은 것이다. 독일도 처음에는 미국이 다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날 공사 개시 몇 시간 후 미군 패트롤 차 한 대가 나타나 항의도 못하고 가버렸다. 빌리 브란트가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는데 그때 ‘국익에는 동맹이 없다. 우리 스스로 해야 되는 거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미·중의 양극 구도에서 벗어날 길은 없을까?

갈등 구조를 다변화하고 다극화해야 된다. 한국 국익이 미·중에 묶여 있는 양극 체제 탈피가 급선무다. 나아가서는 더 이상 강대국들의 손발 노릇 하는 것을 그쳐야 한다. 강대국들과의 세력균형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동북아 비핵국가 안보회의 같은 것을 한국이 주도하자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남북한을 양자 체제에서 해방시키고 유럽처럼 아시아판 안보협력회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국력이 무엇인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우리는 강대국처럼 정치력이나 군사력은 쓸 수 없다. 경제력 카드를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의 분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과거 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비핵국가로서 동북아 평화의 발신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현재로서는 서울에서 평양으로 바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남북관계가 절연된 상태이다. 남북이 서로 대화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먼저 말을 건네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의 열쇠는 베이징이나 워싱턴이 갖고 있다. 그래서 경제협력과 안보 동맹의 어느 한쪽도 저버려서는 안 된다. 통일에는 지름길도 없고 왕도도 없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국익뿐 아니라 한반도의 이익까지 생각해야 한다. 분단과 대결·대립을 통한 남한만의 협소한 이익이 아니라 분단 극복과 통일에 대비해 지금의 비정상적 한반도 상태를 정상화해야 한다. 북한 사회는 지금 여러 분야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장의 형성, 엘리트들의 의식 변화, 주민들의 자유의식 고양 등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직시하면서 공존을 통한 분단 극복이 대북정책의 근간이 되어야 한다. 힘으로, 군사력으로 북한을 제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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