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의 학교 및 교육 시스템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이미 주입식 교육과 살인적인 학습 시간에 면역이 되어 있는 한국 처지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교육 선진국’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교사의 권리와 자질,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 교육 행정 및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특히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살펴보면 미국 교육의

ⓒAP Photo대규모 부정행위 사건으로 베벌리 홀(왼쪽 두 번째) 전 애틀랜타 교육감이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이 미국의 효율성과 성과주의에 대한 집착이 불러온 참사였다.

첫 번째로 살펴볼 사건은 ‘애틀랜타 공립학교 성적 조작 사건’이다. 미국 조지아 주에 위치한 애틀랜타라는 도시의 초등 및 중등 공립학교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한 성적 조작 사건인데, 기사가 보도된 후 미국 전역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성적 조작을 주도한 이들이 교장·교감·교사·교직원 등 학교 관계자였고, 관련자가 180여 명에 달했으며, 56개 학교 중 무려 44개가 연루된 대규모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정행위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부정행위에 가담한 관계자들은 학생들의 오답을 지우개로 지워 정답으로 바꾸거나, 의도적으로 오답을 정답 처리하는 식으로 10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조작했다. 2009년 학생들의 터무니없는 성적 향상에 의문을 제기한 어느 일간지 보도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난 이 사건은 이후 주 당국의 수사를 거쳐 2015년에 마무리되었다. 혐의가 인정된 교육 관계자 대부분이 징역형과 벌금형 그리고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두 번째는 지난해 봄, 뉴욕의 공립학교 지닌 워럴브리든 교장이 자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티처스 칼리지 커뮤니티 스쿨(Teachers College Community School· TCCS)은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신설 공립학교로, 인근 컬럼비아 대학 교육대학원과의 협업 때문에 주목받았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3~4세(프리스쿨)부터 8세(초등학교 3학년)로 꽤 어리지만, 학업 성취에 대한 압박이 컸다. 현재 미국은 매년 초등학교 3학년부터 8학년까지 영어와 수학 과목에 대한 공통 교과과정 시험을 보게 되는데, 이 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의 영어시험지에 워럴브리든 교장이 대신 정답을 써줬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물론 사생활 및 일련의 다른 사건들도 그녀의 극단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지만 교장의 시험 부정 행위는 사실로 드러났고, 그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Google 갈무리티처스 칼리지 커뮤니티 스쿨의 지닌 워럴브리든 교장(위)은 지난해 봄 부정행위가 발각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의 두 사건은 한국의 일반적인 교육 관련 사건들과 명확한 차이가 하나 있다. 사건 당사자가 주로 학생이 아닌 교사(또는 학교 관계자)라는 점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미국 교육의 전반적인 역사 및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위해서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지만, 위의 두 사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특정한 교육정책에 국한해 살펴보면, 본래 미국은 연방 정부이기 때문에 각 주가 갖는 권한이 크다. 교육 역시 각 주의 교육부와 학교들이 학년에 맞는 학습 기준 및 교육 관련 법안을 입법해 실시한다. 이를테면 뉴욕 주에서 유치원(Kindergarten) 나이 학생에게 요구하는 학습 성취 기준이 타 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에게 요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제기된 미국 공교육에 대한 의문,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의 부진한 성적 등으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낀 미국 정부는 2001년 교육 법안을 공표한다. 바로 조지 W. 부시 정부의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이다.

ⓒUFT티처스 칼리지 커뮤니티 스쿨
낙오학생방지법 때문에 교사 214명 해고되기도

낙오학생방지법의 기본적인 골자는 이름 그대로 ‘학교에서 낙오되는 학생이 없게 하자’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이 정책은 오류로 점철되어 있다. ‘낙오되는 학생’은 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낙오한 학생을 의미했고, 낙오자로 낙인찍는 역할을 하는 시험은 단편적이고 협소한 범주의 인구, 즉 백인 중산층에게만 유리한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많은 학생이 본인과 무관한 백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해야 했고 이를 충분히 안다고 평가되지 못할 때 낙오자가 되었다. 나아가 낙오되는 학생들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교사와 학교가 짊어져야 했다. 학생들의 시험 점수 향상에 대한 교사 및 학교의 수행 능력, 즉 시험 점수 결과에 따라 학교의 재정과 교사들의 연봉 및 승진이 결정되었다. 학생들의 시험 성적이 부진할 경우 교사들은 감봉 처분을 받았고, 심할 경우 해고되기도 했다.

한때 국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미국 워싱턴 D.C. 전 교육감 미셸 리 역시 학생들의 저조한 시험 성적을 빌미로 교사 214명을 해고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의 성적이 하위 13%에서 상위 10%로 올라갔다는 본인의 성공신화를 무기로 낙오학생방지법을 따르는 교육 개혁을 강행했다. 그런데 그녀가 가르친 학생들의 성적 향상률을 뒷받침할 통계자료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그 성공신화가 낭설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어찌됐든 그녀도 실적과 성과에 집착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쯤 되면 교육계 관계자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미국은 연방 정부여서 중앙집권적인 한국처럼 일방적으로 법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낙오학생방지법의 경우 주에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이 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반강압적이었다고 보인다.

미국 정부가 이런 법을 제정하게 된 데에는 더 큰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야말로 뼛속까지 자본주의 국가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효율성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투자가 있으면 성과가 있어야 하고, 시간과 자본이 효율적으로 작용할 때 더욱 빛을 본다. 효율성은 분명 중요한 가치이다. 더군다나 학교, 경제, 또는 국가와 같은 커다란 시스템을 구동시키기에 효율성만큼 매력적인 메커니즘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 성과가 따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찰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교육하는 학교라는 공간마저 효율성과 성과주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순간, 많은 문제가 따른다. 이 효율성의 가치가 인간다울 권리보다 우선할 때, 학생과 교사는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교육 현장에서는 성적을 조작하고 교사들은 실적과 성과에 몰두한다. 그 점에서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에서 효율성과 성과라는 목적을 위해 학생을, 교사를, 학교를 부품으로 소모한다면 성적 조작 등 교육 참사는 계속 일어날 것이다.

기자명 김혜영 (컬럼비아 대학 교육대학원 박사과정)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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