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특히 일본의 생존가방이 언론에 소개되고 인터넷에서 판매도 하고 있다. 태풍 차바가 해운대 고층 아파트를 향해 파도를 쏟아붓고, 울산 등 인근 지역의 폭우 피해 상황을 보면서 정말 생존가방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

인간에게 불안감은 보편적이다. 누구나 선택의 순간이나 선택으로 내몰리는 순간에 불안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인이 느끼는 불안은 본인의 선택 여부와 상관없고 외부 환경에 의해 생겨난 ‘외인성’ 불안이다. 유형도 다양하고 정도도 심각하다. 자연재해로부터 느끼는 불안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생존의 불안감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

정치는 정책을 논의하기는커녕 개그 수준의 언쟁을 일삼고 있다. 여당 대표의 느닷없는 단식으로 국정감사 등 국회 일정이 엉클어지더니 슬그머니 끝났다. 밥 먹지 않는 행위가 중요한 정치행위가 되는 수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아 막말까지 주고받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실험, 남한의 사드 배치 등 ‘강 대 강’ 대치가 시민을 불안하게 한 지도 오래되었다. 대통령은 전쟁 가능성을 실제 상황으로 대비하라고까지 하고 있다. 순간적 오판으로 일어난 전쟁도 역사상 많기 때문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갈등은 해소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세월호 문제도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대치 상황만 계속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 등 밝혀야 할 사실이 많지만 세월호 특조위는 활동이 종료되었다. 활동 기한을 연장해주지 않아서 세월호처럼 가라앉고 있다. 백남기씨의 사인을 둘러싼 논쟁, 기어이 부검을 해야겠다고 달려드는 수사기관의 태도를 보면서 도대체 이렇게 몰아붙이는 배경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시사IN 신선영9월29일 오전 7시50분, 새누리당 대표실 ‘비공개’ 단식 농성장.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나흘째 단식 중인 이정현 대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문제도 전경련을 통한 800억원의 모금이 어떻게 며칠 만에 가능했는지, 재단 설립 서류를 서울까지 와서 출장 접수한 문체부의 행태를 대민 친절 활동으로 보아야 하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최순실 등 핵심 인물들의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더구나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던,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의 명단을 작성하여 유형·무형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이게 사실이라면 이 나라가 정상 국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격 제고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행사나 단기적 처방으로 나라의 품격이 높아질 리도 없지만 그래도 국격을 높여야겠다는 생각만은 옳은 방향이었다. 국격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 수준이고 정부의 구실이 가장 중요하다. 각종 게이트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명백하게 밝히지는 않고 “사실무근”이라거나 “언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라는 대응이 청와대나 정부 부처에서 나온다. 국무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유언비어로 처벌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방치하거나 점점 심화시키고, 시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궤변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진실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혼돈 상태다.

밥 먹지 않는 행위가 중요한 정치행위가 되는 수준이라니…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시민은 지배자에게 복종하게 된다. 동서고금의 많은 지배자들이 불안감 조성을 통해 권력을 강화한 이유이다. 불안과 공포 마케팅은 독재자가 가장 선호하는 통치술이기도 하다. 불안은 침묵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든다. 침묵하는 사람들은 순한 양과 같아서 통치하기 쉽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인츠 부데는 〈불안의 사회학〉에서 국가정책은 시민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추락하는 자는 받아줘야 하고, 선천적인 것으로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줘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지국가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교육을 해주고, 과도하게 빚을 진 개인과 가구에 조언을 해주며, 소외 계층 출신의 아이들에게 결핍을 보완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해주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이런 모든 노력은 순전히 가난이나 사회적 소외, 그리고 체계적인 차별의 퇴치만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며, 열에서 제외되거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차별대우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퇴치하려는 것이다.” 우리 정치가 시민들의 삶과 연결되는 이러한 고민을 하는 날이 과연 올까?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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