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다른 사람들의 탐욕을 이용해 뒤통수를 때리고 재물을 가로채는 범죄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전에 자신부터 철저히 속이는 별종 사기꾼도 있어. 이런 사기꾼들은 자신의 욕망에 다른 색깔을 덧칠하곤 하지. 나라와 민족의 영광이라는 금빛 찬란한 물감을 사용해서 말이야.

1992년 8월 한국 해군 충무공 유적발굴단은 삼도수군통제영(이순신이 초대 통제사였다) 자리인 한산도 앞바다에서 별황자총통(조선 후기에 사용된 대형 총통) 하나를 건져 올린다. 이 총통에는 거북선을 뜻하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어. 온 나라가 환호했지. 거북선에서 사용된 무기가 최초로 발견된 것이었으니까. 이 총통은 초스피드로 국보로 지정됐다. 발굴단장 황 아무개 대령은 당당히 훈장을 받았지. 해군은 이 총통을 모델로 새로운 총통을 만들어 시범 사격까지 하며 감격에 젖었다.

그런데 4년 뒤 황망한 일이 벌어져. 그 총통이 가짜라는 소문이 돌더니,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어처구니없는 진상을 밝혀내고 만 거야. 황 발굴단장이 옛 총통 하나에 글자를 새겨 바다에 던진 뒤 다시 건져내서 환호하는 ‘쇼’를 연출했다는 것이었지. 너희들 용어로 더욱 ‘웃픈’ 일은, 문화재연구소(유물의 진품 여부를 감별하고 판정하는 기관)가 발굴 직후 해당 화포의 금속 성분 분석을 통해 충무공 당시의 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는데도 “출토지가 명확하고 발굴 기관이 국가여서” 진품으로 판정했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하는 일이니 애매하게 시비 걸었다가는 본전도 못 찾는다’는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보신 욕구, 그리고 ‘어떻게든 나라와 국민이 흡족해할 발견으로 훈장과 별을 달아보겠다’는 해군 대령의 욕망이 함께 빚어 만든, 어디 가서 말도 못할 창피한 해프닝이었지.

찰스 도슨이 벌인 필트다운인 사기극은 40년이 지나서야 밝혀졌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만 벌어진 것은 아니야. 1912년 영국의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생물학자인 찰스 도슨은 잉글랜드 이스트서식스 주의 필트다운이라는 곳에서 옛 인류의 두개골을 발견했다고 밝혀. 고생물학자인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는 분석 작업을 마친 뒤, 이 두개골을 ‘원숭이와 인간의 특징을 골고루 지닌 미싱 링크(Missing Link: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진화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라고 판정했다. 결국 그 두개골에는 필트다운인(人)이라는 이름이 엄숙하게 부여됐다. 호모 필트다우네시스(Homo Piltdownensis)라는 근사한 학명도 붙었어.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구석도 많았다. 필트다운인이 발견된 지역 부근에서 나온 동물들의 뼈가 아프리카에서 출토되는 동물 뼈들과 성분(과 함량) 측면에서 너무 비슷했거든. 한편 해당 두개골의 턱뼈와 송곳니가 침팬지의 그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심지어 두개골의 이빨에 줄로 간 흔적이 보인다는 폭로까지 나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트다운인은 ‘대발견’의 지위를 한동안 유지했다. 필트다운인이 침팬지와 인간의 두개골을 정교하게 갖다 붙인 가짜로 밝혀진 것은 무려 40여 년이 지난 1950년대 초였어. 한 세대가 넘도록 ‘필트다운인’을 교육받아온 영국인들은 느닷없이 드러난 사기극에 크게 당황했다. 일부 하원 의원들이 ‘필트다운인을 가짜로 선언한 대영박물관에 대해 불신임안을 내자’며 팔소매를 걷어붙일 정도였지. 그러나 이후 제시된 과학적 증거들 앞에선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지.

ⓒ연합뉴스황우석 박사(가운데)는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영국인들이 이런 엉성한 사기극에 집단적으로 홀딱 넘어간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 ‘대영제국에서 진화론의 핵심이 되는 화석이 나왔다’는, 그릇된 자기현시욕이 큰 영향을 미쳤을 거야. 인도네시아의 자바나 중국의 베이징 같은 곳에서도 출토되는 원인(猿人) 화석이, 당시 자타 공인 세계 패권국가인 대영제국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얘기지. 이런 가운데 발견된 필트다운인은 영국인들에게 ‘최초의 잉글랜드인’(영국 학자들이 실제로 이렇게 불렀다)과의 감격적인 만남이었을 거다. 이런 정서에 반하는 모든 주장은 깡그리 무시되어버렸고. “어딜 감히 영국인의 조상을!”

그 결과, 영국인들은 역사상 최대 사기극의 피해자로 전락하고 말았지. 지금도 누가 그 사기극을 조종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찰스 도슨이든 우드워드든 모두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야.

영국인들만큼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대한민국 사람들도 비슷한 이유로 과학적 사기극에 휘말린 적이 있었지. 바로 황우석 박사 사태였어. 세계적 과학 전문 주간지 〈사이언스〉는 2004년, 한국의 황우석 교수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사람 난자를 이용한 체세포 복제와 배아 줄기세포 형성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황우석 교수는 국민적 영웅이 되었지. 난치병 치료의 새 장을 열었다는 환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황우석 교수 스스로도 장애인들에게 ‘당신을 일으켜 세워주겠다’고 단언하는 등 엄청난 쇼맨십을 시현하며 대한민국의 최고 스타 반열에 올랐어.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열광하며 압도적으로 황우석 교수를 지지했어. 황우석 교수가 “과학자에게 애국심은 필수”라며 애국심을 유난히 강조하기도 했고…. 이런 황우석 박사에게 ‘감히’ 의혹을 제기한 시사 고발 프로그램 PD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였단다. 그러나 결국 용기 있는 사람들의 폭로와 추적을 통해 황우석의 연구는 “인위적 실수”(아빠는 이 말처럼 한국어를 모독하는 표현도 드물다고 생각하는데)로 점철된 허위로 드러나고 말았어. 논문은 취소되고 황우석 교수는 파면됐다.

구로구청과 남부교육지원청의 ‘어게인 황우석’?

찰스 도슨이나 우드워드 생전에 필트다운인의 실체가 밝혀졌다면 그들은 어떤 연구도 재개할 수 없었을 거다. 적어도 조작에 가담하거나 묵인한 사람들은 과학자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반납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들이 다시 무슨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떠들어도, 신뢰를 회복하기는 힘들었을 거야. 적어도 영국인들은 ‘필트다운인이 가짜’라는 과학적 증거들 앞에서 이른바 ‘대영제국의 자존심’을 억제할 정도의 합리성은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아빠는 며칠 전 서울 구로구청과 남부교육지원청이 함께 일선 학교에 보낸 공문 하나를 읽고 넋을 잃을 뻔했어.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이라는 곳에서 고등학생 인턴십을 권하는 공문이었지. “인류 희망을 위한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 연구기관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연구원에서 생명공학 분야의 특화된 스펙 활동으로 대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내용인데,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 황우석 박사였거든. ‘인위적 실수’를 저질렀다던 그분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자연과학에 문외한이다. 황우석의 연구가 얼마나 부풀려졌는지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성과로 인정 가능한지 등에 대해서는 정교하게 판단할 수 없어. 그러나 대한민국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이 수암생명공학연구원을 홍보하는 데 사용한 “세계 최고의 생명공학 연구기관” “대입 경쟁력을 강화” 따위 문구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구나. 도대체 누가 ‘세계 최고’를 인정했으며, 자신의 실험을 조작한 과학자의 연구소에서 어떤 대입 경쟁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세계 최초의 한국인 성공’ 신화에 사로잡혀온 나라가 난리굿을 치른 것이 불과 11년 전인데 어떻게 이런 공문이 나돌 수 있는 것인지, 아빠는 도무지 알 길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필트다운 발견 기념비 앞에서 1938년 우드워드는 이렇게 연설했지. “찰스 도슨은 우리의 초기 선구자가 이곳을 지나갔고 우리 역시 이들의 뒤를 이어 진화해왔다는 점을 기억하게 해주었습니다.” 새빨간 거짓말 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의 감탄사였지. 똑같은 일을 대한민국의 행정기관 구로구청과 교육기관 남부교육지원청이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매우 혼란스럽다. 그들은 어느 쪽일까. 새빨간 거짓말일까, 아니면 바보일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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