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오른쪽 어깨가 욱신거린다고 진료실을 찾아온 할머니. 자세히 보니 아픈 부위가 팔이나 어깨가 아니라 목과 어깨 사이, 즉 어깻죽지였다.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지속되는 양상이라 어깨보다는 목 디스크 문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팔과 목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목 디스크 탈출증의 전형적인 양상이었다.
“할머니, 목에 디스크라는 물렁뼈가 있는데요. 거기 문제가 좀 생긴 거 같습니다.” “뭐? 이 나이에 무슨 목 디스크라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할머니, 목 디스크 이상은 꼭 힘든 일을 해야 생기는 게 아닙니다. 혹시 컴퓨터 많이 하시지 않습니까?”
“정년퇴직한 지 오래돼서 요즘은 안 해.”
“텔레비전은요? 텔레비전을 벽에 기대서 보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봐도 목 디스크 손상이 잘 생겨요.” “원래 별로 안 보는데.”
이 정도 대화가 진행되고 ‘뭐 그럴 만한 일이 있겠지’ 하고 넘어가면 제대로 된 치료는 물 건너간다. 진료실에 비치한 비장의 무기 ‘목 디스크를 손상시키는 나쁜 자세’라는 시트를 꺼내 할머니 코앞에 들이대고 하나하나 다시 따지고 든다. 할머니의 동공이 커지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이었다. 이제 치료는 다 끝난 거나 다름없다.
1994년 미국 미네소타 주 로체스터 시 주민의 모든 진료 기록지를 조사한 경추신경뿌리병 역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경추신경뿌리병이란 목에서 시작해 어깻죽지와 팔로 가는 신경의 뿌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이 어깻죽지 혹은 팔로 뻗쳐나가는 ‘방사통’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목 디스크 탈출증이 대표적인 발병 원인이다. 로체스터의 경추신경뿌리병 환자 중 명확히 원인을 찾을 수 있는 경우는 15%뿐이었다고 한다. 여름에는 골프, 겨울에는 눈 치우기 때문이었다는데 나머지 85%는 왜 생긴 걸까?
목 디스크는 목뼈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격을 완화하는 충격 흡수 장치다. 다른 기계 부품과 마찬가지로 세 가지 손상 기전이 있다. 첫째, 한 번의 강한 충격으로 손상될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직장 상사가 반갑다고 목덜미를 손으로 세게 때리자 팔다리에 번개 치듯 저린 감각을 느낀 후 발생한 목 디스크 손상, 자동차 트렁크가 반파될 정도로 추돌 사고가 난 후 낫지 않는 목 통증 등이 실제 사례다.
둘째, 약하지만 여러 번의 반복적 충격으로도 목 디스크가 손상된다. 마흔이 넘어 시작한 골프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루에 500타씩 연습구를 치다가 눈물 나게 아픈 목 디스크 탈출증을 겪은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은근한 힘도 목 디스크를 손상시킨다. 좁은 아파트 경비실에서 한쪽에 놓인 TV를 계속 보다가 목 디스크 탈출증이 생긴 경비원,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하던 할머니, 노트북으로 밤낮 없이 기사를 쓰다가 목 디스크가 손상된 기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목 디스크를 해치는 지속적이고도 은근한 힘은 무엇인가? 머리 무게 자체와 머리를 특정 위치에 두기 위해 작용하는 목 근육의 힘을 합친 것이다. 머리 자체의 무게보다 목 근육 힘이 디스크를 더 압박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목뼈들이 일렬로 서 있는 경추의 꼭대기에는 5㎏ 정도 무게의 머리가 달려 있다. 경추가 꼿꼿이 안정적으로 서 있고 그 위에 머리가 살짝 놓여 있으면 5, 6번 목 디스크는 머리 무게만 감당하면 된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머리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니 목뒤 근육이 강하게 수축할 수밖에 없다. 물이 가득 찬 물동이를 이고 갈 때, 고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있으면 편하지만 고개를 숙이면 훨씬 버티기 힘든 것과 같은 이치다.
5, 6번 디스크에는 머리의 무게뿐만 아니라 목뒤 근육의 힘도 같이 작용하면서 강한 압박을 받게 된다. 또한 고개가 앞으로 숙여질 때 5, 6번 뼈가 어긋나려는 힘이 강해지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 나쁜 힘이다(51쪽 사진 참조).
머리를 앞으로 숙이면 숙일수록 목 디스크에는 점점 더 강한 힘이 걸리게 된다. 2014년 뉴욕의 정형외과 의사 한스라지 박사가 짧지만 재미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목을 굽히는 정도에 따라 목에 가해지는 머리의 무게가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한 결과였다. 목을 15°, 30°, 45°, 60°로 구부리면 경추 전만(목의 커브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바른 자세)에 비해 목 디스크에 각각 약 3, 4, 5, 6배에 달하는 무게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 무게를 5㎏으로 가정할 때 고개를 30° 구부리면 20㎏, 60° 기울이면 30㎏의 하중을 겪게 된다는 얘기다. 나쁜 자세를 취하면 힘을 써야 하는 근육이 디스크를 짓이기는 지속적이고 은근한 힘으로 작용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목 디스크(경추간판 장애) 환자가 약 70만명이었는데 2015년도에는 약 87만명으로 24.3% 증가했다. 추세를 자세히 보면 2011년과 2012년에 증가세가 특히 가팔랐다. 2009년 말부터 보급된 스마트폰이 폭넓게 사용된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거북 목은 특히 노트북 사용자에게서 자주 본다. 목을 앞으로 쭉 빼고 머리는 모니터를 향해 치켜드는 자세다. 머리를 치켜들기 위해 목덜미 근육은 더 강한 힘을 써야 하고 그 힘이 고스란히 목 디스크를 압박해 손상이 빨라진다.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일자 목과 거북 목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대로 방치하면 목 디스크 탈출로 번져 눈물 나게 아파진다. 처음에는 목과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욱신거리다가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통증이 팔과 머리까지 올 수 있다. 한번 겪어본 사람들은 그 고통을 오래 기억한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뿐만 아니라 고개를 숙이고 오래 있는 자세는 모두 목 디스크를 손상시킨다. 높은 베개를 베고 눕거나, 머리를 벽에 기대어 목을 구부린 채 TV를 보는 것도 해롭다. 자신의 목덜미 근육이 수축하지는 않지만 외부의 힘이 목을 구부리는 것만으로도 목 디스크는 손상된다. 고개를 숙여서 디스크에 압박을 가하면 경추 전만 자세로 힘을 받을 때보다 반 정도의 힘만 줘도 디스크가 손상된다.
TV·노트북·스마트폰 볼 때는 고개를 들고
일자 목과 거북 목은 목 디스크를 괴롭히는 나쁜 자세이지만, 목 디스크가 손상된 결과로 자세가 나빠진 것일 수도 있다. 상태가 깊어지면 고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경추 전만을 회복하는 좋은 자세는 무엇인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볼 때 허리를 꼿꼿이 하고 화면을 높이 두어 고개를 쳐들고 본다. 허리와 목을 꼿꼿이 하라는 이야기다. ‘전만 형제’, 즉 요추 전만과 경추 전만은 같이 다닌다. 요추 전만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이 기본이다.
높은 베개를 베고 자거나 침대 헤드에 머리를 기대고 TV를 보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 목이 강제로 구부러져서 디스크 탈출이 절로 생기기 때문이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오래 유지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TV나 컴퓨터 화면을 한쪽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연인이나 친구와 오래 대화할 때도 의자 위치를 좌우로 바꿔가면서 하는 것이 좋다. 회식을 할 때 2차, 3차를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다. 한마디로 고개를 과도하게 숙이거나 돌려서 오래 유지하는 것을 피하라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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