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기기는 충전이 필수다. 인류는 수많은 스마트 전자 기기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 기기들은 사람들이 머리를 너무 많이 쓰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 보답으로 하루를 마치면서 매일 잊지 않고 충전 단자에 선을 꽂아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작은 성의마저 점차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왜 꽂아야만 충전이 되는가? 이런 물음에서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무선 충전, 즉 무선 전력 전송이다.

최근 출시되는 전자 제품들에는 이런 무선 충전이 폭넓게 적용되는 추세다. 특히 스마트폰 분야에서 활발하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는 최근 무선 충전 기능을 기본으로 탑재하고, 신규 구매자에게 전용 고속 무선 충전기를 할인 판매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LG전자는 이보다 한발 빨랐다. 스마트폰 커버를 교체해 무선 충전을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이 이미 많이 나왔다. 팬택은 스피커에 무선 충전 기능을 결합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나이키에서는 무선 충전으로 자동 신발끈 조임이 되는 운동화를 곧 출시할 예정이다. 시장조사 기관인 IHS 마르키트는 이미 무선 충전을 사용해본 소비자가 전체의 2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연합뉴스서울대공원 입구에서 운행 중인 코끼리열차는 무선으로 배터리를 충전한다.
무선 충전의 확산은 표준화 덕이 크다. 2009년 세계 여러 전자회사들이 무선 충전 표준규격을 만들었다. 해당 규격을 준수하여 인증을 받은 제품끼리는 모두 호환된다. 표준화 협회는 이 규격에 ‘Qi’라는 이름을 붙였다. ‘치’라고 발음하는 ‘Qi’는 기(氣)의 중국어식 표기이다. 만화·무협지에는 손바닥에 기를 모아 장풍을 쏘는 장면이 나오는데, 힘이 빠진 동료(스마트폰)의 등에 기를 불어넣는다고 상상해보면 적절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널리 쓰이는 무선 충전 방식은 ‘자기유도식’이다. 이 방식의 무선 충전 원리는 역사가 꽤 길다. 1831년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를 발견한 이후 전류의 흐름과 자기장의 변화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를 무선 전력 전송에 최초로 이용한 사람은 니콜라 테슬라였다. 테슬라는 1894년 뉴욕의 실험실에서 멀리 있는 전등을 켜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때 사용한 방식이 현재 쓰이는 자기유도 방식의 무선 충전과 마찬가지이다. 전선 코일 두 개를 만들고 한쪽에 교류 전기를 가하면 다른 코일에도 전류가 흐르게 된다.

ⓒNASANASA의 우주 태양광발전 개념도. 우주에서 만든 전력을 무선으로 지구에 보낸다.
이런 무선 충전이 가장 먼저 적용된 분야는 인체삽입형 의료 기기였다. 인공 심장이나 불안정한 심박을 조절하기 위한 보조기인 페이스메이커의 경우 1960년대에 이미 자기유도 방식의 무선 충전이 사용됐다. 일상에도 무선 충전 기술이 많이 퍼져 있다. 전동 칫솔이 그 사례다. 충전식 전동 칫솔은 물기가 많은 욕실에 두기 때문에 전극이 노출되어 있으면 위험하다. 정확한 위치에 꽂아야 하지만 체결 부위는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고 충전은 무선으로 이뤄진다. 교통카드도 무선 충전 원리를 이용한다. 카드 안에 얇은 구리선으로 코일을 넣어두고 일시적으로 카드 인식기에 의해 충전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기유도식 무선 충전에 대한 사용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무선 충전의 편리함을 인정하는 사용자도 있지만 실망했다는 사람도 많다. 정해진 위치에 올려두어야 하고 몇㎝만 떨어져도 작동하지 않으니 진정한 ‘무선’ 충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봤자 접촉식 충전, 거치식 충전에 그칠 뿐이라는 의미다. 배터리 용량이 점점 커지고 고속 유선 충전이 인기를 끌면서 상대적인 매력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팬택의 신형 스마트폰 ‘스카이 IM-100’는 무선 충전 기능을 갖추고 있다(왼쪽). 나이키의 자동 끈 조임 러닝화(오른쪽).
이런 자기유도식 무선 충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아이디어는 2007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나왔다. 두 개의 코일과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공명 주파수를 변형해 비교적 먼 거리에서도 전송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다. 보통 ‘자기공명식 무선 충전’이라고 부른다. 1m 거리에서 90%, 2m 거리에서도 40%의 충전 효율을 낼 수 있다는 결과에 많은 연구자들이 주목했다. 먼 거리에서 자유롭게 충전하는 기술은 아직 상용화가 어렵지만, 넓은 충전 패드 아무 곳에나 기기를 대충 올려놓아도 충전이 되는 무선 충전 기술은 비교적 가까이 왔다. 실제로 전기자동차 충전에 이런 무선 충전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무선 충전기에 ‘거치’하는 것처럼 차량을 무선 충전 주차장에 주차하거나, 무선 충전 도로를 운행하기만 해도 충전이 되는 것이다. 버스처럼 일정한 노선을 운행하는 경우 정류장에서 무선 충전이 된다면 배터리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여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전기차 총 무게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테슬라 모델 S의 경우 25%가 넘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서울대공원의 코끼리열차를 시작으로 구미시, 세종시에서 무선 충전 버스를 도입해 운행 중이다.

충전기와 멀리 떨어져서 의식하지 않아도 충전할 수 있는, 자기유도 방식과 완전히 다른 기술들도 개발되고 있다. 전자기파(RF)를 이용한 충전 방식은 무선 통신을 위해 쓰는 것과 동일한 전자기파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아주 적은 전력이 필요하다면 무선 랜(Wi-Fi) 공유기와 같은 전자기파 방출 기기들에게서 에너지를 모을 수도 있다. 다만 아직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고, 고출력의 전자기파를 이용할 경우 인체 유해성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빛을 이용한 충전 방식도 있다. 한쪽에서 에너지를 레이저로 만들어 보내면 다른 쪽에서 이를 받아 다시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다.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은 또 현실이 된다

전자기파나 빛을 이용한 전력 전송 방법들은 전자제품 무선 충전뿐 아니라 우주 개발에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주 상공의 인공위성이나 달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를 상상할 수 있다. 지상에서는 대기의 반사·흡수, 긴 밤, 공간의 제약 등으로 태양광발전의 효율이 낮지만 인공위성이나 달에서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 있다. 인공위성이나 달에서 만든 전력을 무선으로 우리 지구인들이 공급받을 수 있다면? 1941년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에 처음 등장했던 이런 아이디어는 지금 실제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일본의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는 태양광발전 위성을 2030년까지 우주에 띄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 우주공간기술연구원도 30조원 이상의 예산이 드는 유사한 계획을 밝혔다.

무선 충전 기술은 충전을 넘어 전선도 없고 배터리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기술적 제약은 아직 높다. 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무선 충전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무선 통신도 과거에는 공상 과학기술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현실이 되었다. 언젠가 무선 전력 전송이 일상화되면 충전이라는 단어도 사라질지 모른다.

기자명 김응창 (SK텔레콤 디바이스 테크랩 매니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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