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초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제네바에서 이란과 핵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설 때 공화당 상원의원 47명이 오바마 대통령과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앞으로 충격적인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란과의 핵 협상을 승인할 수 없다’며 ‘미국 의회의 승인 없는 협정은 단순한 행정협약에 불과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다음 대통령이 그 행정협약을 철회할 수도 있다’고 협박하고 나섰다.

그뿐 아니라 미국 행정부가 강력히 반대하는데도 공화당 상·하원 의원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초청해, 이란과의 핵 협상에 반대하는 의회 연설을 하도록 주선했다. 이 모든 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대(對)이란 협상에 쐐기를 박기 위한 정치적 술수였다.

이쯤 되면 반애국적 ‘막가파식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오바마의 대응은 달랐다. 이러한 공화당의 공세에 전례 없는 대국민 설득으로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적 타결이냐 전쟁이냐’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미국 30여 개 일간지에 기고하는 한편, 대중 연설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섰다. 그리고 민주·공화 상원의원들을 대상으로 각개격파에도 나섰다. 결국 그는 국내의 지지를 확보하고 이란과의 역사적 협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사례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최근 사드 문제와 관련한 정부·여당의 태도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그렇다. 지난 8월 초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이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 내부 동향을 파악하고 한·중 관계 악화를 막기 위한 대안을 모색한다는 이유로 방중했다. 정부·여당과 일부 보수 언론 매체들은 이를 두고 “주변국 입장을 옹호하는 친사대주의적 매국 행위”로 매도하는가 하면, 한 보수지의 언론인은 이들의 방중을 “중국에 고자질”하거나 그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으로 폄훼하기도 했다.

 

ⓒ연합뉴스보수단체 회원들이 10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의 사드 관련 중국 방문 귀국을 앞두고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2016.8.10

 


더 한심한 것은 정세균 의장의 국회 개원 연설을 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인 행태다. 정 의장 연설은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떠나서 우리 내부에서의 소통이 전혀 없었다”라고 지적하면서 “주변국과의 관계 변화를 고려하는 동시에 제재 이외의 다른 대안도 모색해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내용의 발언을 두고 의사일정을 보이콧하고, 의장실에 난입해 거칠게 항의하는가 하면 정 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정부·여당 그리고 일부 보수 언론의 이러한 태도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들의 ‘국익 훼손’ 행위를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6명의 초선 야당 의원 방중을 사대·매국 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중국을 사실상 적대시하자는 것 아닌가. 이는 엄청난 패착이다. 중국은 우리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다. 게다가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다. 이를 간과하고 중국을 적대시 또는 준적대시하는 것은 국익 면에서 자해행위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초선 의원들이 사드 배치에 반대 의견을 갖고 있더라도 이들을 만나 설득하고 대중 외교의 우회적 통로로 활용하는 지혜가 있어야 했다. 미국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애국’이고, 중국에 대한 합리적 접근은 ‘사대 매국’이라는 해괴한 이분법을 수긍하기 어렵다. 솔직히 중국을 적대시해서 우리가 얻을 게 뭔가 자문해봐야 한다.

사드에 반대하면 ‘종북 좌편향’, 중국과 대화하면 ‘사대 매국’?

이번 사태를 보면서 민주주의의 위기 또한 절감하게 된다. 대의민주제 국가에서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리해 법을 만들고 행정부 전체를 감독하라고 선출된 이들이다. 안보에서 민생 문제에 이르기까지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드 배치에 우려를 표하는 국민들의 뜻을 반영해 정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회의원 고유의 임무다. 또한 사드 관련 절차적 하자가 있으니 더 심사숙고하고 소통하라는 국회의장의 발언을 두고 ‘중립 의무’를 내팽개치고 야당에 편향된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은 더더욱 온당치 못하다. 이는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다.

통합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이번 사례만 보더라도 보수 진영에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이들을 ‘종북 좌편향’ 세력, 그리고 중국과 대화·설득에 나서는 이들을 ‘사대 매국’ 세력으로 매도하고 나섰다. 여기서 우리는 매카시즘이라는 악령의 부활을 본다. 안보를 위해 국민 통합을 해야 한다고 목청 높이는 자들이 정작 국민 분열에 앞장서는 꼴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기자명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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